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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이 흔들리고 있다. 오봉저수지는 바닥을 드러냈고, 수도는 제한적으로만 공급된다. 여름 폭염은 거리를 달구어 시민들을 지치게 하고, 산불의 불길은 매년 동해안을 위협한다. 물과 불, 두 가지 재난이 동시에 강릉을 옥죄고 있는 것이다.

강릉은 2009년부터 공식적으로 '솔향(松香)의 도시'라는 브랜드를 내세워왔다. 소나무 숲의 푸르름과 향기를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고, 시민들에게는 문화적 자긍심을 심어주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지금, 강릉을 덮친 가뭄과 폭염, 산불의 실체를 들여다보면 소나무만을 내세운 도시 정체성이 과연 지속가능한가 하는 물음을 피할 수 없다.

솔향강릉CI 강릉시가 2009년부터 공식적으로 사용해온 도시 브랜드 ‘솔향강릉(PINE CITY Gangneung)’ CI. 소나무 이미지를 활용해 관광과 휴양의 가치를 강조했다.
솔향강릉CI강릉시가 2009년부터 공식적으로 사용해온 도시 브랜드 ‘솔향강릉(PINE CITY Gangneung)’ CI. 소나무 이미지를 활용해 관광과 휴양의 가치를 강조했다. ⓒ 강릉시

그에 따라 도시계획이나 조경계획도 소나무가 자라기 좋은 방향으로 설계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소나무는 원래 척박한 환경에서 잘 버티는 나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소나무가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다 보니 도시 전체가 점점 더 척박해지고, 정작 사람이 살기에는 불리한 조건을 스스로 강화해 온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낳는다. 결국 '소나무 숭배'가 사람과 도시를 힘들게 만든 셈이다.

소나무 숭배 정서의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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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는 오랫동안 한국인의 삶과 정신을 지탱해온 상징이었다. 민주화 시위 현장에서 울려 퍼지던 '상록수',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일송정' 같은 노래들은 늘 푸른 소나무를 지조와 희망의 상징으로 불러냈다. 애국가 가사에도 "남산 위의 저 소나무"가 등장하고, 국가 영상 속에도 늘 소나무가 비추어졌다. 이처럼 소나무는 단순한 나무를 넘어 민족정신과 애국심의 주인공이었다.

제천의 산에는 지금도 오래된 소나무의 밑둥에 V자 모양의 상처가 남아 있는데, 이는 2차 세계대전 말기에 일제가 송진을 수탈한 흔적이다. 임진왜란 때 조선 수군은 소나무로 만든 판옥선을 이용해 일본 배를 압도했다는 기록도 있다. 또 궁궐과 사찰의 전각은 금강송으로 지어야 한다는 전통이 이어져, 금강송 숲은 국가의 보물처럼 여겨졌다.

그리고 소나무 숲 속에서 자라는 송이버섯은 소나무가 주는 또 다른 특별한 선물이다. 송이는 매우 비싸고 귀하여 귀중함의 상징이 되었고, 식도락의 인기 품목으로서 지역 주민들에게는 소중한 소득원이자 삶의 희망이 되었다. 이처럼 소나무 숲은 단지 정신적 상징에 그치지 않고, 경제적 가치와 생활의 희망까지 함께 품어왔다.

이러한 소나무의 의미는 특히 5060 이후 세대에게 깊이 각인되어 있다. 민주화 운동과 국가 발전의 기억 속에서 소나무는 정신적 지주였다. 그러나 오늘날 젊은 세대에게 소나무는 더 이상 민주화의 상징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폭염, 가뭄, 미세먼지 같은 기후위기 현실을 해결할 수 있는 나무인지 여부가 더 중요하다. 결국 소나무 숭배 정서는 세대를 넘어 공유되지 못하고 있으며, 새로운 세대와 함께할 수 있는 미래 지향적 숲의 가치가 필요하다.

소나무 숲의 한계와 기후위기

1. 물 문제: 홍수·가뭄·물부족
소나무는 빗물이 오래 머무르는 환경에서는 잘 자라지 못한다. 그래서 소나무가 번성하려면 빗물이 빠르게 흘러내려 물기가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산은 빗물을 저장하지 못하고 버리게 되어, 비가 많이 올 때는 홍수로 이어지고, 가뭄 시에는 물을 머금지 못해 물부족이 심화된다. 활엽수 숲이 도시의 '수분 저장고'라면, 소나무 숲은 오히려 '빗물 배출로'가 되는 셈이다.

2. 불문제: 산불·폭염·탄소흡수 한계
소나무는 송진이 많아 불이 붙으면 잘 번지고, 단일 수종으로 이뤄진 숲은 작은 불씨 하나가 대형 산불로 확산되기 쉽다. 또한 바늘잎은 증발산량이 적어 기화열로 공기를 식히는 능력이 떨어지므로, 폭염 완화 효과가 활엽수 숲보다 훨씬 약하다. 더구나 잎 면적이 작아 광합성을 통한 탄소 흡수량도 적다. 산불로 인한 탄소 배출까지 고려하면, 소나무 숲은 기후위기 대응에서 이중으로 불리하다.

"솔향강릉"의 짧은 역사

많은 이들이 '솔향강릉'을 전통적인 별칭으로 여기지만, 사실 그 역사는 불과 16년 남짓이다. 2009년, 강릉시는 민선4기 시정의 '리-디자인(Re-Design)' 전략 속에서 도시 이미지를 새롭게 포장하는 과정에서 '솔향강릉(PINE CITY Gangneung)'을 내놓았다. 소나무 이미지를 활용해 평온과 휴식, 관광 휴양의 가치를 표현하려 했고, 마침 한국디자인진흥원의 '굿-디자인(GD)' 인증을 받으면서 공식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이후 강릉시는 앰블럼과 로고를 특허청에 상표 등록하며 브랜드 관리에 나섰다. 그러나 이는 역사적 맥락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시민 정체성이라기보다, 행정이 의도적으로 만든 도시 마케팅의 산물이었다. 결국 '솔향강릉'은 오랜 전통이 아니라, 행정 주도로 최근에 만들어진 브랜드에 불과하다.

솔향 2.0 해법 제안

강릉의 위기는 단순한 재난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숲과 도시를 설계해왔는지 되묻는 신호다. 소나무만을 숭배하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소나무와 활엽수가 어우러지고, 빗물을 모아 저장하며, 폭염을 완화하는 숲과 도시가 필요하다. 나는 이를 '솔향 2.0'이라 부른다. 소나무의 정신은 지키되, 물과 숲의 구조를 새롭게 바꿔, 소나무와 빗물을 머금은 도시 (파인-레인시티)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강릉만의 모델을 만들자는 제안이다. 그리고 그에 맞는 도시계획을 보강하여 적극적으로 현재의 문제를 헤쳐나가나는 것이다.

새로운 도시관광의 길

강릉은 더 이상 '솔향의 도시'라는 이름에 머물 수 없다. 앞으로의 관광은 단순히 소나무 숲을 감상하는 차원을 넘어, 기후위기의 원인을 직시하고 시민이 함께 이를 헤쳐 나가는 경험이어야 한다. 강릉이 솔향 2.0으로 거듭날 때, 관광도시는 곧 기후위기 대응 도시가 되고, 시민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주인공이 될 것이다. 이것이 강릉이 세계에 제시할 수 있는 미래형 기후관광 도시의 길이다.

두 가지 옵션, 시민의 선택

앞으로 강릉이 나아갈 길은 두 가지다.
① 문제 제기형: 오래되지도 않은 브랜드에 도시의 미래를 묶어, 소나무 일변도의 정책을 고집하다 기후위기의 희생양이 될 것인가. "솔향 때문에 강릉이 망가진다"는 비판을 감수할 것인가.

② 제안형: 소나무만의 '솔향'을 넘어 소나무와 빗물이 함께하는 솔향 2.0으로 확장해, 숲과 도시를 재설계하고 기후위기를 기회로 바꿀 것인가.

이제 선택은 시민의 몫이다. 강릉의 내일은 이 선택에 달려 있다.

이 기사는 카드뉴스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link24.kr/GE8e6kn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랜드뉴스에도 실립니다.강릉의 위기는 강릉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산림과 도시 곳곳이 여전히 소나무 일변도의 구조를 갖고 있으며, 기후위기 시대에 그 한계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소나무는 우리 정서 속에 소중한 상징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물과 불의 위기를 막을 수 없다.

이제는 “솔향”을 넘어 “솔과 비의 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작은 물모이를 만들고, 혼합림을 가꾸고, 시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새로운 도시계획이 필요하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것은 거창한 기술이 아니라,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숲과 물을 지키려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강릉이 그 길을 먼저 보여주기를 바란다.


#솔향강릉#기후위기대응도시#파인레인시티#강릉시물사태#폭염과산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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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 물모이

별명: 빗물박사.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명예교수. 빗물의 중요성을 알리고, 다목적 분산형 빗물관리를 통하여 기후위기를 극복할수 있다는 것을 학문적, 실증적으로 국내외에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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