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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9.06 13:00최종 업데이트 25.09.06 13:00

"사랑하는 이들을 향한 한없는 믿음과 그리움이 담겨"

이경주 시조시인 두번째 시조집 <사람의 겨울> 나와

 이경주 시조시인의 새 시조집 <사람의 겨울> 표지.
이경주 시조시인의 새 시조집 <사람의 겨울> 표지. ⓒ 창연출판사

첫사랑

첫눈은 해가 바뀌어도 어김없이 내리네요
남녘의 바닷바람 텃새처럼 불어와서
눈사람 남기지 못하고
사라지며 묻히고

흙먼지 빛을 가려 녹아서 마르기 전
까맣게 잊어왔던 그대를 소환하네요
당신이 처음이에요
나를 다 보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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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고백으로 귓불에 전해지면
수신을 알 수 없는 사랑이 맴도네요
그대를 찾아가네요
하늘에서 땅으로

누구나 있을 '첫사랑'을 '첫눈'처럼 떠올리게 하는 시다. 해가 바뀌어도 '텃새처럼' 가슴에 남아 있을 것 같은 사랑이다. '수신을 알 수 없는 사랑'이라도 그 설레임은 자꾸만 떠올릴 것 같다.

이경주 시인이 산뜻한 "첫사랑"을 비롯해 90편의 시조를 묶은 새 시조집 <사람의 겨울>(창연출판사 간)을 펴냈다. 시조를 '송광사 불일암', '사람의 겨울', '부추', '파도'의 4부로 나누어 실어 놓았다.

이경주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넌, 할 수 있는 게 없어/고도를/ 기다리지만// 난, 마음 자판 위를/ 일하듯 뜀을 뛰며//해야 할/말을 수선해/책 속에다 묻는다"라고 했다.

이경주 시인은 이번 시조를 통해, 자연 사물의 구체성을 통해 '삶'과 '시(詩)'에 대한 가장 근원적인 사유를 수행해가며, 자연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면서 뭇생명들이 어울려 공존하는 지혜를 얻어가는 모습을 나타냈다.

유성호 문학평론가는 "이경주 시인의 시조집은 시인 자신이 겪은 남다른 경험에 대한 예술적 잔상(殘像)에 의해 형성되고 전개된 미학적 결실이다. 그의 시조는 시인의 몸속에 새겨진 수많은 기억을 통해 심층적 감동을 건네면서 선명한 언어적 상(像)을 각인해간다"라고 했다.

유 문학평론가는 "우리는 시인이 충실하고도 고유한 음역(音域)을 통해 삶의 보편적 가치를 전달하는 미학적 진정성을 만나게 되고, 나아가 지난날에 대한 강렬한 기억에 바탕을 둔 시인의 경험적 구체성을 응시하게 된다"라고 했다.

이어 "이경주 시인은 이러한 기억의 과정과 결과를 밝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실현함으로써 어둑한 세상을 밝히는 등불 역할을 적극 수행하고 있다. 그 안에는 뭇 사물이 서로 연결되어 생명을 품어 기르는 과정에 대한 기억이 흐르고 있고, 사랑하는 이들을 향한 한없는 믿음과 그리움이 가득 담겨 있다"라고 덧붙였다.

수의사로 동물병원을 운영하며 경상국립대학교 문화융복합학과 겸임교수(문학박사)이기도 한 이경주 시인은 경상국립대 시조 동아리 '터울' 동인으로 활동했고, 1988년 <시조문학> 초회천, 1991년 <시조와비평> 천료를 받아 문단에 나왔다. 그는 시조집으로 <세상 너머>를 표냈고, 사진전 <마산 너머>를 열기도 했다.

송광사 불일암(佛日庵)

왜 절에 왔냐고 물어보지 않는다
매듭이 얽히고설킨 실타래 한 짐 지고
저무는 햇빛을 캐며
묵묵하게 나선 길

오르막길 같기만 한 무거운 인연들
쉽게 끝내버린 내리막길 인연들
다 잊고 새로워지려
나를 찾아왔는데

여기서 한 달쯤은 지나가는 바람으로
그 바람 일 년쯤은 냇물로 흘려보내면
풍경의 청아한 소리로
맑아질 수 있을까

후박나무 잎이 가린 이끼로 덮은 납골
시간과 공간까지 소거된 이곳에서
아직도 나를 못 버린
내 그림자 흔들거린다

#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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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효 (cjnews) 내방

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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