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만 안 나가도 사는 데 좀 여유가 있겠는데... 월세가 너무 비싸네."
매달 월세를 낼 때마다 자식들의 입에서 푸념처럼 나오는 말이다. 아들딸은 일자리를 찾아서 본가가 있는 부산을 떠나 서울에서 살고 있다. 희망을 품고 서울로 올라가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항상 가장 큰 걱정거리는 주거 문제다. 매달 나가는 임대료, 월세가 만만찮다. 거기에다 관리비까지 주거비가 차지하는 지출이 매년 증가하고 있다. 주거비가 아이들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다. 전세를 구하면 부담이 덜하겠지만, 전세 자금을 마련하기도, 전셋집을 구하기도 힘든 데다, '전세 사기'에 대한 불안감으로 전세는 아예 생각하기가 어렵다. 아들딸은 주거 문제를 해결하면서 서울에서 제대로 정착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희망보다는 우려가 앞서는 게 현실이다.
서울시 '청년안심주택'이 청년불안주택' 된 현실

▲청년들이 청년안심주택 문제에 대해 서울시를 규탄하는 시위 장면, KBS1 TV 추적 60분 화면 캡처. ⓒ KBS
지난 8월 29일 밤 10시, KBS1 TV 추적 60분 1423회는 '<청년 기획> 고장난 사다리 1부, 90년대생의 집을 찾습니다'가 방영됐다. 90년대생 미혼 자녀가 있는 부모로서 방송을 관심 있게 지켜봤다. 방송에서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곤경에 처한 청년들의 녹록지 않은 상황을 보면서 남 일 같지 않아 가슴이 답답하다. 서울시에서 추진한 '청년안심주택'. 서울시가 만 19세에서 39세까지 무주택 청년과 신혼부부에게 주거 안정을 위해 역세권에 시세보다 저렴한 조건으로 공급하는 임대주택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금까지 공급된 청년안심주택은 73곳에 23000가구에 이른다고 한다. 서울시 청년안심주택은 공공임대와 민간임대로 나뉜다. 민간임대는 임대 사업자가 금융과 세제 혜택을 받는 대신 시세보다 낮게 임대주택을 공급하게 되어 있다. 청년안심주택에 대한 청년들의 인기는 하늘로 치솟아 경쟁률이 무려 2000:1이 넘는 곳도 있다고 한다. 서울시에서 추진하는 데다 역세권에 시세보다 낮게 공급하니, 청년들로서는 '전세 사기' 걱정 없는 호조건의 숨통 트이는 주거 정책이라고 반기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서울시 청년안심주택이 청년들을 안심시키는 게 아니라 청년들을 불안에 떨게 하는 일이 벌어졌다. 민간임대 방식의 서울시 청년안심주택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서울 잠실의 한 '청년안심주택'이 강제 경매 절차에 들어갔다고 한다. 임대 사업자가 공사대금을 지불하지 못해 채권단이 건물을 경매로 넘겼다는 것이다. 이 건물 134가구가 보증금 228억 원을 돌려받지 못할 위기에 처했단다. 동작구 사당의 청년안심주택도 35가구가 임대인의 채무로 가압류 상태며, 피해는 더 늘어난다고 한다. 서울시를 믿고 희망에 부풀었던 청년들이 느닷없는 날벼락을 맞은 셈이다.
"서울시 이름을 걸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저는 당연히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죠."
"서울시에서 하는 거니까 보증금을 떼일 일은 전혀 없다고 생각했어요."
"서울시에서 하는 거니까 설마 위험하겠느냐, 서울시니까 믿고 들어가라 해서 들어왔는데, 이렇게 사건이 터져버린 거예요."
청년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서울시를 믿었다고. 하지만 절망에 빠지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아무리 민간임대 방식이라고는 하나, 서울시에서 청년들을 위한 공공지원 사업인데 '청년안심주택'이 '청년불안주택'이 되어서야 되겠는가.
청년 입주자들에게 민간임대이기 때문에 간여하기 어렵다고 한 서울시에서 뒤늦게 피해 구제 대책을 내놓았다고 한다. 선순위 임차인에게는 서울시에서 가용 재원을 활용해 보증금을 우선 지급하고, 후순위 임차인은 국토부 전세 사기 피해자로 인정받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청년들은 여전히 보증금을 제대로 돌려받을 수 있을지 불안해하고 있다. 부디 청년들을 절망의 늪으로 빠뜨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전세는 주거 미끄럼틀, 새로운 주거 사다리 구축을
서울시에서 추진하는 청년안심주택도 이런 상황인데, 민간 임대업자의 전세 임대는 위험성을 더 말해서 뭐 하겠는가. 전세 사기는 서울뿐만이 아니다. 지방도 마찬가지다. 국토부로부터 인정받은 전세 사기 피해자는 3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실제로 피해를 입은 사람은 이보다 더 많을 것이다. 이 중 20~30대 청년 피해자가 75.1%나 된다고 한다. 더 이상 전세는 청년들에게 미래를 향한 희망이 아니다. 오히려 전세 사기에 대한 두려움으로 기피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과거 한창 경제 성장기를 거치면서 전세는 청년과 서민의 주거 사다리 역할을 톡톡히 했던 적이 있었다. 월세-전세-매매로 이어지는 주거 사다리를 통해 내 집 마련의 꿈을 실현한 사람들이 많았다. 60대인 나도 월세에서 살다가 전세금을 모아 전세를 얻고, 전세를 살면서 월세 부담 없이 다시 돈을 더 모아서 내 집을 마련했다. 지금도 내 집을 처음 장만하여 입주했던 그때의 기쁨을 잊을 수가 없다. 우리 세대에서 청년들에게 주거 사다리였던 전세는 이제 그 수명을 다한 듯하다. 전세가 갭투기의 방편이 되면서 무리한 갭투기로, 전세보증금 사고액은 매년 증가해서 2년 연속 4조 원을 넘었다고 한다. 방송에서 보여주듯이 전세라는 주거 사다리에 고장이 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전세는 주거의 사다리가 아니라 주거 미끄럼틀이다."
어느 전세 사기 피해자가 말한 것처럼, 전세가 청년들의 내 집 마련을 더 어렵게 만든다. 전세 사기로 전세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는, 시대적 흐름에 따라 청년들이 많이 거주하는 오피스텔, 빌라, 다세대주택 등 비아파트는 전세가 줄어들고 월세가 대세이다. 그런데 월세는 오르고 전세는 줄어드는 데다 불안하고, 청년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안심할 수 있는 안정된 주거를 마련할 기회나 주어질까? 청년들의 주거 사다리는 망가져 있다. 청년들이 올라갈 사다리는 높아져만 가는데, 고장까지 나 있으니 막막하다. 시대에 맞는 주거 사다리가 제대로 구축되어 내 아들딸을 비롯한 청년들이 안정된 주거 마련의 희망을 품을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이에 대한 정부 당국과 지자체의 더 많은 관심과 성의 있는 대책을 촉구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