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위한탈시설행동연대'는 아동·청소년·장애인·홈리스·노인·이주민·동물 등 집단수용시설에 수용된 존재들의 탈시설 및 지역사회의 주거권과 성원권 보장을 위해 연대해 온 단체다. 대한민국 정부는 지역사회 돌봄이 가능한 정책을 구체화하는 등 여러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여전히 다양한 존재들을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 관련 법령 제정과 접근 가능한 주거를 포함한 지역사회의 자원을 만들기 위한 8화의 연속기고를 기획했다.
시설로 내몰린 아동·청소년
우리 사회에서 아동·청소년에게 제공되는 유일한 주거 대안은 여전히 '시설'이다. 보건복지부 조사에서 2023년 말 기준 1만2806명의 아동이 생활시설에서 지내고 있다. 여성가족부 조사에 따르면 매년 10만 명이 넘는 청소년이 가출을 경험하고 있지만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대부분 청소년 쉼터나 생활시설뿐이다.
아동·청소년 자립정책은 '시설'을 벗어나지 못한다. 안정적 자립을 돕는다며 생활시설 거주기간을 연장하거나, 시설에서 일정 기간 이상 살아야만 주거 지원을 받을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결국 지원은 '시설 입소'를 전제로 한다. 이러한 지원마저도 18세가 되어야 받을 수 있다.
정부에서 '보호 종료 아동'의 자립지원 대상을 15세로 넓혔다고 하지만, 실질적인 지원은 여전히 18세 이후에나 시작된다. 시설퇴소자 공공임대주택 입주자격도 18세 이상인 자로 제한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실질적으로 주거지원을 받는 청소년은 현저히 적다. 2023년 한 해 동안 전국에서 '쉼터 퇴소 청소년' 중 공공임대주택으로 지원 받은 사례는 전국에서 40명에 불과하다. 매년 쉼터를 퇴소하는 순인원이 4천 명인 현실과 비교하면 1%도 되지 않는 수치다.
주거정책에서 아동·청소년은 지원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최근 가정폭력으로 탈가정한 청소년이 경기도 A시 주거복지센터에 긴급주거 신청이 가능한지 문의했지만,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주거 지원은 어렵다. 시설로 가라"는 답변을 받았다. 긴급주거 제공 사유 중 하나로 '가정폭력 피해'가 명시되어 있지만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거절당한 것이다. 서울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청소년 쉼터를 전전하던 한 청소년이 B구 주거복지센터에 긴급주거를 신청했지만, 구청에서는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안 된다며 긴급주거 제공을 거절했다.

▲2022년 5월 16일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전국동시지방선거 청소년 주거 정책 요구 기자회참여자들이 ‘탈시설 지원 정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온
시설 밖으로 나오는 청소년
시설이 집이 될 수 없다고 말하는 청소년들은 "집다운 집에서 살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내 말 안 들을 거면 나가"라는 협박, 매일 잘 곳을 찾아 쉼터와 친구에게 전화를 돌려야 하는 불안, 얹혀사는 이로써 느껴야 하는 눈치, 모르는 사람과 함께 방을 쓰고, 누가 문을 열고 들어올지 몰라 쫓기듯 하는 샤워, 벌점과 강제 퇴소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집을 원한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다.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임대차 계약은 어렵고, 높은 월세와 보증금 또한 큰 장벽이다. 주거불안은 학업중단과 저임금 노동, 생활고, 신체적·정신적 질병으로 이어진다. 잦은 이사와 가난은 관계를 유지할 여유마저 빼앗는다. 주거불안은 언제나 그들의 삶을 뒤흔든다.

▲2024년 2월 20일 서울역 앞에서 열린 홈리스추모제홈리스추모제에서 활동가가 시설에서 살다 돌아가신 청소년을 추모하고 있다. ⓒ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온
이런 현실에서 '주거권은 인간의 보편적 권리'라는 말은 참 무색해진다. 집은 나이, 능력과 무관하게 누구나 안정적으로 점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주거는 재화이자 자산이며, '능력'이 있어야 가질 수 있다. 능력이 없다고 여겨지는 청소년은 사회가 정한 시설에 몸을 의탁할 것을 강제당하고, 그곳을 벗어났을 때의 불안과 빈곤은 개인의 탓으로 돌려진다.
사회는 청소년에게 주거비는 스스로 벌어서 해결해야 자립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정작 안전한 노동환경과 일자리는 마련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청소년의 주거불안과 빈곤은 개인의 미성숙이나 무능력으로 치부한다. 주거라는 기본권마저 개인의 능력이나 조건에 따라 불안정해지는 사회에서, 청소년은 끝내 '무능력한' 자신을 탓하며 스스로를 더 채근할 수밖에 없게 된다.
제도적 공백과 해외 사례
2022년 여성가족부 조사에 따르면 단기·중장기 쉼터 거주 청소년의 34%가 '즉각적인 자립'을 원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문제는 주거정책과 아동·청소년정책 모두에서 이를 보장할 수 있는 정책이 없다는 점이다. 주거기본법, 아동복지법, 청소년복지지원법 어디에도 청소년의 안정적 주거를 보장할 조항은 찾기 어렵다.
해외에서는 어떤 정책을 펼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영국은 홈리스감소법을 통해 16세~17세의 청소년이 보호자로부터 지원을 받기 어렵다고 인정되면 주거지원을 받을 수 있다. 미국은 탈가정 및 홈리스 청소년법, 맥키니-벤토 홈리스 지원법을 통해 홈리스 청소년에게 전환주거·전환생활 프로그램 등 주거지원을 제공한다. 주거위기를 겪는 당사자라면 청소년이라도 국가가 주거 지원을 한다는 관점이다.
아동·청소년 중심의 정책 개선
한국 역시 시설의 이용 여부 관계없이 '주거위기를 겪는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주거·자립 지원 정책을 제공할 수 있도록 재설계해야 한다. 주거정책의 기본 단위 안에 청소년을 포함해야 한다. 단순히 '주택'만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주거를 기반으로 주거유지서비스·생활기술·의료·행정·법률·심리·정서·교육·취업 지원 등 포괄적 지원이 함께 제공되어야 한다.
이 점에서 '청소년 지원주택' 도입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서울시에서는 2019년부터 장애·정신장애·홈리스·노인을 대상으로 지원주택을 운영하며 주거와 서비스를 함께 제공해왔다. 주거취약성이라는 측면에서 아동·청소년 역시 이 대상에 포함되어야 한다.

▲‘청소년 말하기 워크숍’의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발췌한 카드뉴스.2020년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에서 진행한 ‘청소년 말하기 워크숍’ ⓒ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온
현재는 청소년이 주거급여를 신청하기 할 때 가정폭력 신고 이력, 상담 기록, 자필 사유서, 통장 내역 등의 증빙자료를 요구 받는다. 그러나 많은 청소년이 부모를 신고하지 못하거나 증거를 남기지 못한다. 임대차 계약이나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일도 보호자 동의가 없으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러한 현실은 청소년을 위험으로 몰아넣는다.
지원서비스 신청 절차와 증빙 요건을 완화하고, 국가·지자체가 특별 대리인으로서 주거 계약을 지원하거나 신탁 계약을 통해 청소년에게 집을 공급하는 제도 등의 방법을 적극 도입할 필요가 있다. 후견제도의 확대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제도도 아동·청소년의 권리를 제한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들이 안전하고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조력하는 법적 안전망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청소년 이웃과 함께 살아갈 사회
나이가 어리다고, 경험이 적다고 주체성과 자기결정권이 박탈된 채 시설에서 살아야 하거나, 시설을 거부한다고 안전하지 않은 거주지에서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와 함께, 어디서, 어떻게 살지'는 아동·청소년이 스스로 결정할 권리다. 아동·청소년의 탈시설은 아동·청소년이 오롯한 권리를 가진 시민으로 지역사회에 동등하게 포함되어 살아갈 자리를 만드는 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집이 있다고, 제도만 잘 만든다고 모든 고민이 해결되지 않는다. 때론 집만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관계가 필요하다고 청소년들은 말한다. 긴급할 때 연락할 수 있고, 심심할 때 만날 수 있고, 매일 안부를 물을 수 있는 관계 말이다. 상호 돌봄의 감각이 사라지고 있는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청소년의 비빌 언덕, 곁을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가는 탈시설 사회를 함께 고민하는 우리 모두의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