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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들어 기술은 늘 놀라움을 안겨주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인공지능의 발전은 그 속도가 다르다. 단순한 도구 수준을 넘어 인간의 사고와 언어, 창작의 영역을 깊숙이 침범하면서 새로운 질문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것은 "이 지능은 우리에게 축복인가, 재앙인가"라는 원초적인 물음이다.

김대식 교수의 책 <AGI, 천사인가 악마인가>(2025년 8월 출간)는 이 단순하면서도 벗어날 수 없는 질문을 집요하게 따라간다. 저자는 인공지능의 역사와 원리를 설명하면서,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모자이크 모멘트(인터넷의 대중화가 그랬듯, 기술이 본격적으로 일상에 스며드는 전환점)'를 강조한다. 이어 생성형 AI가 열어놓은 가능성과 불안을 나란히 보여주며, 인간이 스스로 만든 존재 앞에서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를 묻는다. 큰 줄기는 이 정도로 압축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책을 읽는 과정에서 독자가 어떤 생각의 심연으로 끌려 들어가느냐에 있다. 읽는 동안 이 책은 과학책이면서 동시에 철학책이었고, 어느 순간에는 SF 소설을 떠올리게 하다가도 문득 저자의 개인적 사유가 묻어나는 에세이처럼 다가왔다.

장르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특성이 오히려 인공지능이라는 주제의 본질을 드러낸다. AI는 과학기술로만 설명할 수 없고, 철학적 성찰 없이는 이해할 수 없으며, SF적 상상력이 없으면 따라잡을 수 없다. 결국 다시 인간의 삶과 감정, 즉 에세이의 언어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AGI, 천사인가 악마인가 과학적으로, 철학적으로, 그리고 국제정치학적으로 AGI가 인류에게 던지는 과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그것이 인류가 해결해야 할 마지막 문제는 아닌지 묻고 있다.
AGI, 천사인가 악마인가과학적으로, 철학적으로, 그리고 국제정치학적으로 AGI가 인류에게 던지는 과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그것이 인류가 해결해야 할 마지막 문제는 아닌지 묻고 있다. ⓒ 교보문고
책이 전하는 감정은 양가적이다. 한편으로는 두려움이 스며든다. 인공지능은 이미 직업 구조, 권력 관계, 사회적 규범을 압도하는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인간이 가진 능력이 언제쯤 무용지물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 공동체가 감당하지 못할 변화를 맞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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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동시에 묘한 해방감도 따라온다. 인간만이 유일한 지적 존재가 아니라는 가정은 역설적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연다. 모든 것을 통제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더 큰 존재와 공존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상상은 낯설지만 신선하다.

책 전반을 꿰뚫는 핵심 개념은 '골든 아워'다. 사고 직후 생명이 갈리는 결정적 시간을 뜻하는 이 개념을 저자는 인류 전체에 적용한다. 아직 AGI(범용인공지능, 인간처럼 스스로 학습하고 사고하는 인공지능)는 완성되지 않았고, 제도와 윤리, 철학적 합의를 준비할 여지는 남아 있다. 그러나 그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금이야말로 질문하고 논쟁해야 할 때라는 목소리는 책장을 덮은 뒤에도 오래 여운을 남긴다.

이 책은 기술을 둘러싼 인간의 태도가 얼마나 양가적인지를 새삼 드러내 준다. 새로운 기술을 환영하면서도 두려워하고, 필요로 하면서도 경계하는 모순적 태도는 늘 반복되어 왔다. 불, 전기, 원자력, 유전자 편집 모두 그러했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이 모든 것을 종합한 듯, 훨씬 더 근본적인 차원의 질문을 던진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사고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어떤 존재로 남고 싶은가. 책은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질문을 독자에게 되돌린다.

'AGI가 천사인가 악마인가'라는 도발적인 제목은 이분법을 강요하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사유하도록 유도하는 장치다. 결국 그것은 인간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메시지다. AGI가 구원자가 될 수도, 파멸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동시에 열려 있으며, 어느 쪽으로 기울일지는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 선택은 과학자와 정책 입안자만의 몫이 아니라, 시민 개개인이 함께 고민해야 할 사회적 과제다.

이 책의 가치는 바로 거기에 있다. 단순한 기술 해설서가 아니라 철학적 사유의 초대로 읽히며, 과학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인간적 성찰로 되돌아오는 흐름이 인상적이다. 낙관하는 이에게는 경각심을, 비관하는 이에게는 균형감을, 무관심한 이에게는 문제의식을 던져 준다. 독자는 책장을 덮고 난 뒤 두 가지 질문을 붙잡게 된다.

개인은 과연 이 변화에 대비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사회는 AGI 시대를 맞아 어떤 기준과 규범을 세울 수 있는가. AGI는 먼 미래가 아니라 이미 시작된 현재의 이야기다. 이 책은 그 현재 속에서 우리가 어떤 인간으로 남을 것인가를 묻는다. 답은 저자에게 있지 않다. 독자 각자의 선택 속에 있다.

AGI, 천사인가 악마인가 - 인간의 마지막 질문

김대식 (지은이), 동아시아(2025)


#AI#AGI#인공지능#김대식#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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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일본 주재원으로 근무하며 역사와 문화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체득한 시선으로 현지의 풍경과 사회적 흐름을 기록하며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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