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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레기더미
쓰레기더미 ⓒ highwaypatrol_x on Unsplash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수많은 물건으로 가득 차 있다. 스마트폰과 노트북, 의류, 가구와 자동차, 일상 속 작은 생활 도구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 만큼이나 사물과도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그러나 이 물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닳고, 때로는 갑작스러운 고장을 맞이하며, 결국 쓸 수 없는 상태가 되곤 한다. 새 물건을 사는 게 그 어느 때보다 쉬워진 시대이기에 사람들은 고장 난 물건을 버리고 새 물건을 사는 길을 택한다.

그러나 새 물건을 소비하는 것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낡거나 고장 난 물건을 고쳐 다시 쓰는 행위, 곧 '사물 수리'는 우리의 삶과 사회가 놓치고 있는 중요한 의미를 품고 있다.

과거의 삶을 떠올려보자. 가구가 망가지면 가구 수리점을 찾고, 전자제품이 망가지면 동네 전파사로 가지고 갔다. 옷이 해지면 기워 입었고, 신발은 밑창을 갈아 신었다. 당시 수리는 생활의 지혜이자 절약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값싼 대량생산 체제와 빠른 소비문화는 고쳐 쓰는 습관을 빠르게 지워버렸다. 수리보다는 새로 구입하는 것이 더 쉽고 때로는 더 저렴하기까지 하니, '수리'라는 선택은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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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이 흐름은 여러 문제를 낳는다. 첫째는 환경적 측면의 문제다. 버려지는 물건들은 산처럼 쌓여 쓰레기가 되고, 그중 특히나 전자제품은 생산부터 폐기까지 희귀 자원을 소모하고 유해물질을 배출하며 자연환경을 파괴한다.

둘째는 경제적 측면의 문제다. 부품 몇 개만 교체하면 다시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 폐기로 이어지고, 소비자는 불필요한 지출을 반복한다.

셋째는 윤리적 측면의 문제다. 쉽게 버리는 사회 안에서는 우리의 생활 태도 또한 변한다. 수리를 포기하는 순간, 우리는 사물을 단순한 소모품으로만 대하며, 물건을 생산하는 데 들어간 노동과 자원의 가치를 잊는다. 전자제품 폐기 과정에는 여성이나 아동 같은 사회적 약자가 유해물질을 막아줄 보호장비도 없이 동원된다는 문제도 있다.

사물을 수리한다는 것은 단순히 물건의 기능을 되살리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과 사물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맺는 과정이다. 낡은 책상을 손질하면 그 책상은 단순한 가구가 아니라, 나의 역사와 기억을 담은 동반자가 된다. 오래된 헤어드라이어를 수리하면 그 속에 새롭게 불어넣은 생명이 함께한다. 물건을 고쳐 쓰는 행위는 사물과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시간을 늘려 주는 일이다.

물론 현대의 첨단 전자제품은 개인이 직접 수리하기 어렵다. 과거에 쓰이던 전자제품에 비해 제품에 쓰이는 부품은 다양하고 정교해졌고 제품의 구조도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기에 더욱 '수리할 권리'가 필요하다. 소비자가 스스로 고칠 자유와 필요한 부품을 구할 권리, 제품 수리에 관한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현재는 이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아 기업이 수리를 독점하고 과도한 비용을 요구하며, 일부러 쉽게 고장 나도록 설계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최근 유럽연합이 수리권을 법제화하고, 미국 여러 주에서도 관련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데, 단순한 개인의 편의를 넘어 전 세계적인 필요에 대응하는 흐름이다.

나는 사물 수리를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하나의 태도라 생각한다. 고쳐 쓰려는 태도는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는 대신 얻을 수 있는 더 큰 가치를 생각하는 선택이다. 그것은 자연환경을 보호하는 길이며, 자원을 소중히 여기는 길이고, 소비하는 삶에서 벗어나 삶의 속도를 늦추어 사물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배우는 길이다. 새 물건이 주는 기쁨은 잠시지만, 수리된 물건이 드러내는 가치는 손길이 닿은 흔적 속에서 더욱 빛난다.

앞으로 우리 사회는 사물 수리를 생활 속으로 다시 불러들여야 한다. 이를 위해 지역마다 수리할 수 있는 공간이 살아나야 하고, 부품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법적 제도와 유통망이 마련되어야 한다. 학교 교육에서도 '고쳐 쓰기'가 단순한 기술 과목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삶의 핵심 가치로 다루어져야 한다. 아이들이 물건을 버리기보다 손수 고쳐 쓰는 경험을 쌓는다면, 이는 한 세대의 습관을 넘어 사회 전체의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 이 글을 읽는 개인으로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거창한 제도 변화나 기업의 정책 전환과는 무관하게 오늘의 일상에서도 가능한 작은 실천이 분명히 존재한다.

첫째, 고장이 났을 때 곧바로 버리기보다 '한번 고쳐보겠다'는 태도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나사 하나를 조이거나 접착제를 이용해 붙이는 단순한 수리만으로도 물건은 충분히 제 역할을 이어갈 수 있다.

둘째, 온라인에는 이미 다양한 자가 수리 매뉴얼과 영상이 공유되고 있다. 조금의 시간과 관심을 투자하면, 휴대전화 배터리 교체나 전기포트의 스위치 수리 같은 간단한 작업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 직접 물건을 살려내는 경험은 수동적인 소비자를 넘어 주체적인 사용자로 바뀌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셋째, 개인이 모든 기술을 익힐 수는 없으므로 지역의 수리점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동네의 작은 수리점은 사라져가는 추세이지만, 우리가 찾아가고 이용해야만 그 존재가 유지된다.

넷째, 새 물건을 살 때도 '고칠 수 있는 물건'을 기준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부품을 교체할 수 있도록 설계된 제품, 제조사가 수리 정보를 공개하는 제품을 선택하는 것은 소비자의 작은 투표이자 시장에 대한 메시지다.

마지막으로, 물건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변화되어야 한다. 수리는 단순한 경제적 절약이 아니다. 수리는 물건과 관계를 이어가려는 윤리적 실천이다. 고쳐 쓰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물건 속에 담긴 노동과 자원의 가치를 되살린다. 나아가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수리를 시도하며 협력과 배움의 경험을 나눌 수도 있다. 이런 작은 실천이 모여 큰 사회적 변화를 이끈다. 사물 수리는 거대한 제도나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이다. 그리고 그것은 충분히 지금 이 자리에서 시작할 수 있는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고은솔 님은 수리권 활동가입니다.

대학생 시절 고장 난 노트북을 직접 고쳐본 경험을 계기로 ‘수리할 권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이후 서울환경연합 자원순환팀에서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수리상점 곰손 등과 협업하며 수리 문화의 확산과 수리할 권리의 중요성을 알리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주로 소형 전자기기, 장난감, 아이폰 등을 직접 수리해보는 워크숍을 진행하며, 고쳐 쓰는 실천이 일상에 자리 잡도록 힘쓰고 있다. 제로웨이스트, 업사이클링, 예술, 기술나눔, 사물돌봄에 관심이 많다.


#수리#수리권#사물돌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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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대학교 생태문명원입니다. 한국의 생태전환과 생태문명사회로의 이행을 꿈꾸며 실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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