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축된 소비심리가 쉽게 회복되지 않고 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공개한 소상공인 시장경기 동향조사에 따르면, 2025년 7월 소상공인 전체 체감 경기지수(BSI)는 61.5로 전월 대비 6.1%, 전통시장은 48.8로 전월 대비 8.7% 포인트나 하락했다. 이는 지난 5월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 추이를 보이는 수치다. 응답자의 대다수가 하락한 이유로 경기 악화를 손꼽았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5년 1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도 다르지 않다. 월평균 소득은 지난해 동기 대비 4.5% 증가하였으나 가구당 월평균 소비지출은 1.4% 포인트 증가하는 데 그쳤다. 닫힌 지갑이 열리지 않아 소비지출은 거의 늘지 않고 있다. 물가는 오르는데 소득은 따라가지 못하고, 가계부채는 증가하는데 고금리로 이자 부담까지 커지는 데다 정치적 격변 등으로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까지 겹치며 돈을 쓸 실질적, 심리적 여유가 없다고 분석한다.
새 정부가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전 국민들에게 지급한 것은, 이 같은 상황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함이었다. 여기에 지역화폐를 지급 수단에 포함한 것은 정책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만일 현금으로 소비쿠폰을 지급하였다면 상당수가 다시 은행의 예금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아니면 이커머스 소비가 크게 늘었을 것으로 예측된다. 돈이 풀리지 않거나 한쪽으로만 크게 흘러갔을 개연성이 높다.

▲경북 청송군이 지역화폐인 청송사랑화폐. ⓒ 청송군
지역화폐는 특정 지역의 특정 업체, 예를 들어 연 매출 30억 원 이하 소상공인 매장에서 사용할 수 있고, 대형마트나 기업형슈퍼마켓(SSM)은 어렵다. 유효기간이 있어 저축도, 온라인쇼핑몰 소비도 이뤄지지 않고 온전히 해당 지역에 풀리는 역내 소비촉진 효과가 크다. 이런 지역화폐는 앞으로도 더 확산할 전망이다.
최근 지역화폐 정부 의무 지원 내용이 담긴 '지역사랑상품권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정부는 그동안 지역화폐가 지자체 고유사무란 이유로 정부 본예산에 지원예산을 편성하지 않았다. 매년 반복하여 국회에서 추경예산이 편성되는 우여곡절을 거쳐왔다. 하지만 앞으로 본예산에 의무 편성되도록 한 것이다. 지난 2020년 지역화폐법이 생겨 시민권을 획득한 지역화폐가 이제야 위상에 걸맞은 또 다른 권리를 얻어 진화한 셈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26년 지역화폐 발행 지원예산을 1조 1500억 원으로 편성하였다. 지역화폐를 관장하는 행정안전부의 내년 증액된 사업비 가운데 절반을 차지하며 역대 최대 규모의 지역화폐 지원이 이뤄지게 된다. 덧붙여 정부는 국비 지원율의 차등을 줄 계획이다. 수도권은 3%, 비수도권 5%, 인구감소지역 7%로 알려졌다. 재정 상황에 따라 지자체별 지역화폐 할인율의 차이가 커 일어났던 형평성 논란에 균형을 맞추겠다는 의도다.
앞서 말한 것처럼 지역화폐는 앞으로 운영의 안정성과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고 더 확대될 전망이다. 하지만 이에 맞춰 무리수도 벌써 활기차다. 예를 들어 많은 지자체에서 지역화폐 사용처 제한을 두고 있는 주유소를 전면 개방하자는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주유소를 지역화폐 가맹점으로 두는 순간, 할인한도가 정해져 있는 지역화폐는 할인 금액만큼 충전해 사용하는 혜택 좋은 주유카드가 될 공산이 크다.
골목상권으로 흘러야 할 지역화폐가 특정 업종으로 쏠리는 현상은 유의 깊게 지켜보며 주의해야 할 부분이다. 지역화폐는 기본적으로 골목상권 소상공인을 위해 만든 정책이다. 모든 곳에서 쓸 수 없는 '불편한 돈'이기 때문에 혈세를 들여 인센티브를 부여한 법정화폐의 보완재이다. 소비자의 편의도 중요하나 방향을 잃는 순간 무너질 수밖에 없는 운명을 거치게 될 것이다.
이참에 지역화폐를 스테이블 코인으로 만들자는 주장도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 크게 회자했다가 어느 순간 기억에서 사라지고 있는 제4차 산업혁명이나 메타버스처럼 스테이블 코인도 큰 변화를 불러올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사실 지역화폐 자체가 법정화폐와 가치교환(태환)되는 대표적인 스테이블 코인이다. 여기에 보안과 범용성, 적은 거래 비용 등 스테이블 코인이 갖춰야 할 기본 조건도 굳이 새로운 개념을 빌리지 않아도 현재 조건에서 실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지역화폐'라는 새로운 바람에 올라탄 풍선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더욱 건설적인 논의는 없을까? 법제화, 정부 지원 의무화 다음 순서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지난 6월 더불어민주당 양부남 의원실에서 '지역사랑상품권과 기금제도 접목 가능성'이란 제목의 정책토론회가 개최됐다. 주최 측은 "불안정한 예산 구조에 의존해 온 지역사랑상품권을 기금 제도로 전환하자는 논의"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 시절 정부 지원이 처음 이뤄진 이후 윤석열 정부 때 지원이 급격히 떨어졌다가 다시 이재명 정부에 부활하는 지원 정책으로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듯 지원 정책의 변화가 이뤄진 게 사실이다. 때문에 지역화폐는 항상 존립의 불안,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면서 지역화폐를 단기 정책이 아닌 장기 정책, 공공 인프라로 전환하자는 기조를 바탕으로 해당 지자체가 관리 운영하는 시민들의 지역화폐 예치금을 전국 기금화하여 이를 통한 운용수익을 지역화폐 할인예산 등으로 재사용하자는 내용이 이날 토론회의 핵심이었다.
한국은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지자체 주도 로컬 커런시(Local Currency, 법정화폐 외 보완화폐) 체계를 전국에 구축했다. 한국의 지역화폐가 더 구체적인 지속가능 전략을 이행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다면 지역화폐 전국 기금화는 매우 적실해 보인다. 언제까지 생으로 예산에만 의존할 순 없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권연대 주간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립니다. 글쓴이 이재환 칼럼니스트는 시청의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으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