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기후행진청년기후행진 ⓒ 조혜원
'MZ세대'라는 말은 한동안 미디어와 광고에서 유행처럼 쓰였다. 하지만 그 속뜻은 청년을 '요즘 애들'이라 부르는 다른 이름일 뿐, 소비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이미지로 청년세대를 고정한다. 그러나 기후위기 앞에서 청년들은 새로운 이름을 요구한다. 더 이상 MZ가 아니라 NZ(Net-Zero, 온실가스 순배출량 '0') 세대로 말이다.
청년세대는 기후위기 대응에서 가장 중요한 이해당사자이지만, 실제 정책 과정에서는 목소리가 반영되기 어렵다. 투표권의 제약과 의사결정 구조의 장벽 때문에 배제되기 일쑤다. 그러나 미래세대는 갈수록 악화되는 기후위기로 더욱 큰 피해를 본다. 바로 이 불평등이 세대 간 정의의 문제다. 이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기성세대의 책임이다. 작년 8월 29일, 헌법재판소가 내린 청소년 기후소송 판결은 그 책임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5년 전, 아기와 청소년들은 정부가 만든 법이 기후위기 앞에서 자신들을 보호하지 못한다며 헌법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4년 반 만인 작년 8월, 아시아 최초로 역사적인 헌법불합치 판결을 이끌어냈다. 헌법재판소는 정부가 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감축 목표를 정하지 않은 것이 미래세대의 환경권을 침해한다고 인정했다.
왜 2031년부터 2049년 목표가 비어 있는 것이 문제일까? 그 이유는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탄소 배출량에는 한도가 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1.5도 이내로 억제하려면 인류가 앞으로 얼마나 더 배출할 수 있는지 계산해 왔다. 이 한도를 '탄소예산'이라 부른다. 쉽게 말해 가정에서 쓸 수 있는 생활비처럼, 인류가 쓸 수 있는 탄소 총량도 한정돼 있다. 그런데 이 예산을 무시하고 기성세대가 많이 배출하게 되면, 남은 감축 부담은 고스란히 미래세대가 지게 된다.
세계적인 기후경제학자 스턴은 이미 2006년에 이렇게 말했다. "탄소를 빨리 줄이면 현재세대는 조금 손해를 보지만 미래세대는 혜택을 본다. 반대로 감축을 늦추면 현재세대는 잠시 이득을 볼 수 있지만, 미래세대는 훨씬 더 큰 피해를 감당해야 한다." 최근 한국은행도 같은 경고를 내놨다. 기후위기에 대응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 전체가 큰 타격을 입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지금 탄소를 줄이지 않는 것은 현재세대가 미래세대의 삶을 빼앗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세대가 책임을 다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먼저 한국의 탄소예산을 계산하고, 이를 세대 간 공정하게 나눠야 한다. 기후환경단체 플랜1.5가 헌법재판소 결정 취지에 따라 과학적 사실과 국제적 기준에 근거하여 한국이 쓸 수 있는 몫을 2020년 이후 87억 톤으로 계산했다. 이보다 많이 배출하면 지구 온도는 1.5도 이상 오르게 된다. 그래서 2035년까지는 2018년 총배출량 대비 약 3분의 2를 줄이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필요하다.
앞서 독일에서도 유사한 기후소송이 있었다. 2021년 독일 헌법재판소는 당시의 국가 감축목표가 독일의 탄소예산을 빠르게 소진한다는 정부 자문 기구의 연구를 인용하며 미래세대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판결했다. 이후 국회는 법을 개정해 탄소중립 달성 시점을 2050년에서 2045년으로 5년 앞당겼다. 기성세대가 미래세대의 몫까지 써버릴 수는 없다는 세대 간 정의의 원칙이 반영된 것이다.
판결 후 1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무엇이 달라졌을까? 안타깝게도 아무런 변화도 없다. 정부는 올해 UN에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제출해야 하지만, 아직 탄소예산조차 계산하지 않았고, 관련 논의 과정에 미래세대를 포함하려는 노력도 매우 부족하다.
그래서 청년들이 직접 거리로 나섰다. MZ세대가 아니라 NZ세대가 되고자 하는 이들은 기후소송 1주년을 맞아 '0830 청년기후행진'을 열었다. "탄소예산은 우리의 생존권"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숙대입구역에서 대통령실까지 행진하며 '네 탄소예산을 알라', '더 배출하면 죽고, 덜 배출하면 산다' 등의 메시지가 담긴 깃발을 흔들었다.
헌법재판소가 지적했듯, 미래세대는 기후위기의 직접적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권리를 주장할 제도적 수단이 거의 없다. 그래서 헌법재판소는 그들의 권리 보호를 강조했다. 이제 공은 정부와 국회에 넘어갔다. 국회에서는 탄소예산을 반영한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수립하는 법안이 발의되고 있다. 정부 역시 더는 책임을 미뤄서는 안 된다.
우리는 더 이상 'MZ'로 불리길 원하지 않는다. 기후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NZ(Net-Zero)' 세대다. 그리고 우리의 바람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다음 세대가 'CZ(Carbon-Zero)', 즉 온실가스 총배출량 제로의 시대로 살아가도록 길을 열어야 한다. 오는 9월 27일 기후정의행진은 그 첫걸음이 될 것이다. 작은 발걸음 하나가 미래를 바꿀 수 있다. NZ 세대의 이름으로, 우리와 함께 거리에 나서자.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조혜원씨는 플랜 1.5 정책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