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당역 11-1번 출구 부근 사진네온 빛 전시 바로 옆에 멈춰 선 에스컬레이터 ⓒ 최서영
지난 9월 2일, 신당역의 버려진 지하 공간이 서울시의 기획으로 화려한 패션쇼장으로 바뀌었다.
서울시가 개최한 'SECOND SKIN: 패션과 AI, 그리고 빛' 전시가 신당역 지하 유휴 공간에서 개막했다.
'서울패션로드'라는 이름으로 이어지는 이 프로젝트는 석촌호수, 뚝섬한강공원, 덕수궁길을 거쳐 이번에는 신당역에 도착했다. 일상적인 공간을 패션의 무대로 탈바꿈시킨다는 점에서 도시민에게 새로운 경험을 주는 기획이었다.
신당역의 이 공간은 원래 환승 통로로 계획되었으나 여러 사정으로 개통이 보류되며 오랫동안 비어 있었다. 그런 곳이 화려한 조명과 설치물로 꾸며지고, AI와 패션을 결합한 전시관으로 변신하니 주민으로서는 '버려진 공간이 다시 쓰인다'는 점에서 반가움이 앞섰다.
하지만 전시장을 보며 흐뭇해진 마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전시를 보기 위해 길게 줄 선 관람객들 뒤편, 같은 역 11-1번 출구 앞에 또 다른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굳게 닫힌 출구와 멈춰 선 에스컬레이터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주민들의 줄. '공사 예정'이라는 안내문은 붙은 지 두 달이 넘었지만, 실제 공사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 옆에서는 전시 준비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주민으로서 적잖은 배신감이 들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화려한 전시와 멈춰 선 공공시설 사이의 간극은 돈과 복지의 흐름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단번에 보여주었다.
죄책감을 안고 타는 엘리베이터
11-1번 출구가 닫히면서 나를 비롯한 주민들은 매일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편의시설 같지만 사실 엘리베이터는 교통약자를 위해 우선 보장되어야 할 이동 수단이다. 나는 평소 되도록 이용하지 않으려 했는데 지금은 억지로 그 공간에 발을 들이고 있는 셈이다.
마치 지하철의 임산부석이나 노약자석에 자리를 차지한 것 같은 불편한 마음이 따라붙는다. 내가 이 공간을 잠시라도 차지하는 것이 그들의 이동권을 빼앗는 일처럼 느껴진다. 이 작은 불편이 쌓일수록 결국 가장 취약한 이들이 먼저 복지의 사각지대로 밀려나는 것 아닐까 하는 우려가 생긴다.
이번 전시가 신진 디자이너를 지원하고 패션 산업을 진흥하며, 동시에 방치된 지하 공간을 도시의 문화 무대로 되살렸다는 점은 분명 의미 있는 시도다. 그러나 그 바로 옆, 주민들이 매일 이용해야 할 시설은 고장 난 채 방치되고 있다. 공공시설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 상태에서 아무리 화려한 문화 프로젝트가 들어서도 주민들은 그 미래를 달가워하지 못한다.
화려한 전시가 진정한 활력을 주기 위해서는 먼저, 주민들이 매일 발 딛고 이용하는 기본 인프라가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우리 삶과 분리된, 먼 곳의 이야기일 뿐이다. 전시장을 환히 밝히는 네온 빛은 찬란했지만, 나는 그 빛 속에서 문득 생각했다. 발전되고 있는 미래의 시민에 포함되어 있나? 멈춰 선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느낀 씁쓸함으로 나는 확신에 찬 대답을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