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읽고 쓰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일상을 영위하기에 세상이 결코 만만치 않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어디를 가기 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전화를 거는 등의 일상생활에서 마주치는 모든 일들이 적지 않은 장벽으로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의무교육 제도가 시행되면서 누구나 학교에서 교육을 받을 권리가 주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에는 가정 형편에 따라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누군가는 집안이 가난하다는 사정으로 어려서부터 학교 대신에 공장에서 일을 하며 돈을 벌어야만 했으며, 혹은 형제들이 많은 집에서는 누군가 학교 대신에 가사를 전담해야만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아무리 가정 형편이 어렵더라도 대개의 부모들은 남자 형제들은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했지만, 딸이라는 이유로 학교에 보내지 않는 사례를 과거에는 흔히 볼 수 있었다. 남성중심주의의 문화가 뿌리 깊게 존재하고 있었던 까닭으로 이해된다.

▲글을 몰라 이제야 전하는 편지, 권정자 외, 남해의봄날, 2025.리뷰 도서의 표지 이미지 ⓒ 인터넷 서점 알라
그래서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사회생활을 하는데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으며, 그럼에도 자신이 글을 모른다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심지어 가족들에게조차 그 사실을 감추기도 했었다.
책 <글을 몰라 이제야 전하는 편지>에는 교육을 제때 받지 못해 읽고 쓸 줄 몰랐던 할머니들이 뒤늦게 한글을 배워 평생 가슴속에 품었던 사연들을 편지 형식으로 풀어낸 내용들로 엮어져 있다. 많은 언론에서 '순천 소녀시대 할머니'라고 소개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뒤늦게나마 가족들의 응원과 후원으로 '한글교실'에서 글을 배울 수 있었던 할머니들이 그림도 그리게 되면서 각자의 작품들을 모아 전시회도 열고 책으로 출간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에도 꾸준히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활동을 지속하였고,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사연을 담은 편지와 그림들을 엮어 두 번째로 출간한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가슴으로 꾹꾹 눌러쓴 순천 할머니들의 그림 편지'라는 부제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그동안 말로 풀어내지 못했던 각자의 사연을 누군가에게 편지로 전하고자 하는 내용이라고 하겠다. 첫 번째 책을 출간할 당시 20명의 할머니들이 참여했지만, 어느덧 시간이 흘러 할머니들에게 나름의 사정이 생겨 이번 책에는 14명만 참여하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첫 책을 출간할 당시 활동했던 일부 "어르신들 건강이 점점 나빠져서 병원 신세도 지고 가족 도움 없이 바깥출입이 어려운 분"도 생겨나면서, 두 번째 책에 참여한 할머니들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던 사연이 소개되어 있다. 그럼에도 할머니들이 "한 점 한 점 그린 그림들, 마음으로 쓴 편지들을 모아" 새롭게 책을 출간할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해 독자로서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게 된다.
이 책에 소개된 편지들의 내용만큼이나 수신자들도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미 세상을 떠난 부모님과 남편 혹은 시부모님들에게 뒤늦게 전하는 진심어린 사연이 있는가 하면, 오래 전에 헤어진 친구를 생각하며 전해질 수 없을지도 모를 마음을 토로하는 내용들도 있었다. 혹은 자식이나 손주들에게 살가운 마음과 함께 고마움을 전하고자 하는 할머니들의 속마음이 곳곳에서 표출되고 있음을 책을 읽는 내내 확인할 수 있었다.
이처럼 편지의 수신인도 다양하지만, 할머니들이 전하고자 하는 사연에는 각자의 진심이 진하게 묻어나고 있었다. 그동안 말로는 전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편지라는 형식을 빌어 표현하고 있다고 하겠다. 편지를 쓰기 위해 자리에 앉아 그것을 받아볼 사람을 생각하며 고민했을 할머니들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그려지기도 했다.
얼굴을 마주보고 있으면 꺼내기 쉽지 않을 내용의 이야기도 편지라는 형식 때문에 더욱 진솔하게 토로되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편지글과 함께 그동안 할머니들이 그림 수업을 하면서 그렸던 작품들이 나란히 수록되어, 조금은 무거울 수밖에 없는 사연들의 내용을 보완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하겠다.
편지의 수신자가 이 책을 받아들고 읽는다면, 그동안 말로는 듣지 못했던 할머니들의 진심이 비로소 그들에게 전달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미 세상을 떠난 이들에게 전하는 할머니들의 편지를 읽으면서, 그 사연이 조금은 무겁고 안타깝게 다가오기도 했다. 세상을 떠난 이들에게 띄우는 편지의 내용은 앞으로도 당사자에게 전달되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할머니들이 편지를 쓰면서 평생 지녔던 마음의 부담을 내려놓으실 수 있었을 것이라 여겨진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할머니들이 더욱 건강하고 오랫동안 활동하시면서, 또 다른 내용과 형식의 결과물로 출간되어 세상에 선보일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