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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0년까지 은행의 금융 활동을 '탄소제로'에 맞춘다는 목표를 세우고 출범(2021년)한 유엔 산하 탄소중립은행연합(Net-Zero Banking Alliance, 아래 NZBA)이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설립된 지 4년 만이다. 트럼프 정부의 탄소 역주행 정책에 잔뜩 겁을 먹은 미국의 대형 은행들이 줄줄이 탈퇴했고 곧이어 주요 국가 은행들의 이탈이 겹치면서 사실상 동력을 상실했다는 평가다.

NZBA 운영위원회는 향후 진로를 두고 회원사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투표를 시작했다. 투표 결과는 9월 말 공개될 예정이라고 한다.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인류의 미래가 걸린 기후 재난에 맞서기 위한 은행들의 협력 구도가 방향을 잃고 표류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민간 금융회사들의 자발적 연대가 현실의 이익 앞에 얼마나 무력한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2025년 현재, 연합체에 가입한 회원사는 556개다. 우리나라도 12개 금융회사(그룹)가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간 NZBA는 기후 위기 시대에 금융회사들이 준수해야 할 국제 표준 및 지침을 제공했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파리협정 기준(1.5°C 달성)과 일치시키고, 규약(GHG protocol)의 범주(scope) 기준을 명시하고, 측정 기준과 방법론을 포함한 금융배출량를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것이 대표적이다.

금융배출량(financed emissions)이란 금융회사가 대출이나 투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유발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말한다. 금융배출량이 증가했다는 건 지구환경을 해치는 사업에 빌려준 돈이 늘었다는 뜻이다. 현재의 추세로 볼 때 2050년에 탄소 배출 '0'에 도달하려면 은행들은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여나가야 한다. 우리나라 은행들은 이 목표를 잘 이행하고 있을까.

5대 금융지주회사 금융배출량 및 집약도 분석 (2023∼2024년) 각 그룹에서 공시한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기초해 작성
5대 금융지주회사 금융배출량 및 집약도 분석 (2023∼2024년)각 그룹에서 공시한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기초해 작성 ⓒ 문진수

이 표는 2023, 2024년간 5대 금융지주회사의 금융배출량을 나타낸 것이다. 산출 기준인 PCAF(Partnership for Carbon Accounting Financials)는 금융회사의 탄소배출량을 표준화한 국제 규범이다. 5대 지주회사 모두 이 표준에 따라 배출량을 산출하고 있었다. 'tCO2-eq'란 메탄 등 온실가스 배출량을 이산화탄소 기준으로 환산한 값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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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기준, 5개 금융그룹이 유발한 금융배출량은 2억 4천만 톤(t)을 넘어선다. 우리나라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34%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환경부 산하 온실가스종합센터가 잠정 집계한 2023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은 약 7억 5백만 톤(t)이다 (25.8.20/온실가스종합센터 보도자료). 금융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참고로, 온실가스 1톤(t)은 화석연료를 태우는 자동차로 약 8천 킬로미터(km)를 운행할 때 배출되는 양이다. 이 기준을 대입하면, 5대 금융 지주회사가 한 해 동안 기여한 온실가스 배출량은 약 480만 대의 자동차가 지구를 한 바퀴(약 4만km) 돌았을 때 배출되는 양과 같다. 현대자동차그룹의 연간 자동차 생산 대수(2024년 기준, 414만 대)보다 많다.

금융배출량과 함께 살펴봐야 하는 척도가 배출집약도다. 금융배출량이 온실가스 배출총량이라면, 배출집약도(emission intensity)는 단위(금액)당 배출량을 뜻한다. 은행이 기업에 제공한 대출금(신용잔액)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이라고 보면 된다. 당연한 말이지만, 탄소 배출량이 큰 제조업에 대출을 확대하면 집약도가 오르지만, 친환경 에너지를 기반으로 작동되는 기업에 대출을 늘리면 집약도가 내려간다.

배출량과 집약도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경우의 수는 네 가지다.

①배출량과 집약도가 동시에 증가하는 경우
②배출량은 증가하는데 집약도는 감소하는 경우
③배출량과 집약도가 동시에 감소하는 경우
④배출량은 감소하는데 집약도는 증가하는 경우

①은 고탄소 기업에 대출을 확대하고 있다는 뜻으로, 사실상 탄소중립에 역행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하나금융그룹이 이에 해당한다. 전년에 비해 배출량과 집약도가 대폭 상승했음을 알 수 있다. '2024년에는 금융배출량 측정 대상 자산 분류 기준을 재정립하여 체계적이고 일관성 있는 측정 기반을 마련했다(지속가능경영보고서, p69)'라는 내용으로 볼 때, 평가 체계를 바꿔서 생긴 현상으로 판단된다. 이는 전년도까지 산출된 금융배출량이 '과소' 평가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②는 배출량은 늘었지만, 집약도는 줄어든 경우다. 신한금융그룹에 이에 해당한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전환금융 때문이다. 전환금융(transition finance)이란 중공업, 운송, 에너지, 농업 등 탄소집약적 산업의 탈탄소화를 지원하는 금융을 일컫는 용어다. 탄소를 많이 발생시키는 영역이 탄소중립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돕는 금융이라고 보면 된다.

예를 들어, 은행이 탄소 기반 생산설비를 신재생에너지로 교체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려는 기업에 돈을 빌려주면 온실가스 총량 즉 금융배출량은 늘지만, 배출집약도는 감소하게 된다. 대출 금액당 배출량이 줄기 때문이다. 금융배출량은 늘었는데 배출집약도가 줄어들었다는 건 기업들의 탈탄소를 지원하는 전환금융에 자금을 할당했다는 뜻이다.

은행은 금융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고탄소 기업에 대한 대출을 억제하려는 유인이 작동하게 되는데, 이는 역설적으로 기업들의 탄소중립 노력을 방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두 지표를 함께 살펴봐야 하는 의의가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배출집약도를 탄소 저감 활동에 반영할 경우, 은행들이 온실가스 다배출 업종에 대한 금융 공급을 축소하려는 경향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배출량과 배출집약도, 경우의 수와 이동 경로 화살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향성을 띰
금융배출량과 배출집약도, 경우의 수와 이동 경로화살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향성을 띰 ⓒ 문진수

③은 배출량과 집약도가 함께 감소하는 경우로, 탄소중립을 잘 실행하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금융그룹이 이에 해당한다. 미세한 차이이긴 하지만, 두 지표가 모두 하락했음을 알 수 있다. 탄소중립 노력이 이어질수록 은행들의 위치는 화살표 방향(①<②<③)으로 움직이게 된다. ④는 배출량은 줄고 집약도는 늘어나는 경우로, 발생 가능성이 희박하다.

KB금융그룹과 NH농협금융은 2024년 수치가 반영된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찾을 수 없었다. 지속가능보고서 공시가 '의무'가 아니다 보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간판 금융회사들조차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미루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은행을 포함, 대기업들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 작성 의무는 본래 올해부터 시작될 예정이었으나, 기업들의 반발로 2026년 이후로 연기된 상태다.

5대 금융그룹이 작성한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살펴보면, 기업 홍보 책자를 보는 것처럼 업적과 성과를 자랑하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하지만 보고서의 핵심 사항인 자체 온실가스 배출 내력과 금융배출량은 자세한 설명이 생략된 채, 숫자만 표시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금융배출량이 줄고 있다는 유의미한 징후는 어느 그룹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최근 NZBA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퇴행 현상이 우리나라 은행들에 '면죄부'를 주지 않을까를 염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최근 NZBA는 기후 목표를 1.5℃에서 '2.0℃'로 낮추고, 감축 목표 달성을 적용에서 '권장'으로 바꾸는 지침을 발표해 국제사회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탄소중립을 위해 모인 은행들의 결사체가 힘을 잃고 표류하면 금융배출량을 통제할 국제적 틀과 근거가 사라지게 된다.

국내 상황은 어떨까. 이재명 정부가 출범할 때만 해도 이전 정부와는 확연히 다른 기후 환경 정책이 국정 운영계획에 담길 것이란 기대가 컸다. 하지만 국정운영 계획서에 담긴 내용을 살펴보면,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한다는 명제만 제시되어 있을 뿐, 구체적인 청사진이 보이지 않는다. 총론 차원의 선언적 의미로 작성된 것이겠지만, 모호하고 흐릿한 대목이 많다.

국정기획위원회 국민보고대회 발표 자료 : 기후 환경 분야 국정운영 5개년 계획 (사회 2분과)
국정기획위원회 국민보고대회 발표 자료 : 기후 환경 분야국정운영 5개년 계획 (사회 2분과) ⓒ 국정기획위원회

중요한 의제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일까. 지속가능경영(ESG) 공시 혹은 기후 공시를 의무화한다는 조항도 빠져 있다.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려면 천문학적인 돈이 필요할 것인데, 기후대응기금은 어느 규모로 키울 계획인지, 전환금융에 필요한 자금은 얼마로 추산하고 있는지 등 '숫자'가 언급되어 있지 않다. 유관 부서와 기관, 금융회사가 잘 알아서 처리하라는 뜻으로 들린다.

우리나라는 온실가스 배출은 최상위권이고 재생에너지 비율은 꼴찌 수준인 '기후 악당' 국가다. 따라서 기후 전환을 위한 이행 과정에서 이해당사자들 간 충돌이 격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시민 회의를 통한 숙의가 필요하겠지만,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충돌을 완충할 방안을 찾는 일에 정부가 앞장서야 한다. 전환의 성패는 금융에 달렸다.

덧붙이는 글 | 문진수 기자는 사회적금융연구원장입니다


#금융배출량#배출집약도#전환금융#탄소중립은행연합#기후악당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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