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사성(史聖)으로 불리는 사마천은 "사람의 죽음 가운데는 아홉 마리 소에서 털 하나를 뽑는 것 같이 가벼운 죽음이 있는가 하면 태산보다 훨씬 무거운 죽음도 있다. 무엇을 위해 죽느냐가 중요한 것이다."(사마천, '임안 (任安)에 드리는 글')라고 하였다.

민족민주 열사들은 태산보다 무거운 죽음으로 민족과 민주의 가치를 지키고자 한 시대의 선구자들이다. 독재에 항거하고 정의를 내세우며 약자들을 대변하여 생명을 바친, 역사의 디딤돌이 되었다. 한말·일제강점기 의병과 의열사의 전통을 잇는,민족사의정맥(正脈)을 승계한 분들이다. 우리가 이 분들의 희생정신을 새기고 기려야 하는 이유이고 당위이다.

순국선열과 독립지사들을 기리는 현충일처럼 민족민주 열사들을 추모하는 날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고, 많은 열사들이 잠들어 있는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모란공원을 성역화하거나 국립묘소로 지정하는 방안도 마련하였으면 싶다.

AD
올해는 장준하 선생이 의문사를 당한 지 50주년이고, 조작된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주모자로 엮여 여덟 분이 30분 간격으로 스러진 반세기가 된다. 민족사의 정맥을 잇는 행사가 숨죽이고 있는 상황에서 반동세력의 움직임은 집요하다. 독재자 이승만과 박정희를 추앙하는 '리박스쿨'이 초등학생들에게까지 검은 손을 뻗히고, 대구시는 동대구역 광장에 박정희 동상을 세웠으며, 광화문에 이승만 동상을 세우려는 자들의 잠행도 그치지 않고 있다.

'4·9 인혁당열사계승사업회'가 4월 5일 열린 추모제에서 밝힌 소회가 우리 현실의 일면을 잘 보여준다.

숨죽인 세월, 두려움과 공포의 시간을 넘어 50주기를 맞이한다. 여전히 민주주의가 독재자와 그 일당에게 무참히 짓밟히고, 살인자 박정희 동상이 대구·경북 곳곳에 세워져 우상화되고 있다. 역사를 바로 세우지 못한 후과는 너무 참혹하다. 이제 독재의 망령은 끊어내고 새로운 민주개혁의 출발점으로 삼겠다. (주석 1)

많은 민족민주 열사들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는 아직도 건너야 할 강과 넘어야 할 산이 너무 깊고 높다. 윤석열의 불법계엄과 내란을 시민의 힘으로 제압하고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루었으나 여전히 적폐가 산적해 있다. 그래서 과거청산과 함께 민족민주 열사 희생자들을 기리는 작업이 진행되어야 한다.

"밝은 세상의 사람들은 밤사이 스러져간 사람들을 잊지말라"는 경구를 되새겼으면 싶다. 이와 함께 한국사회를 '후기 파시즘사회'로 진단한 석학의 주장을 경청해보자. 열사들의 뜻이 아닐까 한다.

후기 파시즘 사회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가장 시급한 것은 윤석열과 그 추종자들을 낳은 정치사회 구조를 근본적으로 뿌리 뽑는 일이다. 먼저, 한국학교가 길러낸 최고의 우등생들이 대부분 파시스트라는 충격적인 사실은 교육혁명의 절박성을 일깨운다. 경쟁교육을 존엄교육으로 전환하고 교사의 정치적 시민권을 즉각 복원해야 한다. 또한 내란동조 정당이 '최악의 경우에도' 제1야당이 되는 어처구니없는 정치지형도 이제 바꿔야 한다. 선거제도의 근본적인 개혁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정치지형을 만들어 내야한다.(주석 2)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분들은 국가 차원에서 예우하자는 '민주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안'이 지난 해에 국회에서 통과 됐는데 윤석열 전 대통령이 하루 만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국회와 새 정부는 이를 살려서 국가의 책무를 다했으면 한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셋이라면 더욱 좋고 둘이라도 함께 가자
앞서가며 나중에 오란 말일랑 하지 말자
뒤에 남아 먼저 가란 말일랑 하지 말자
둘이면 둘 셋이면 셋 어깨동무하고 가자
투쟁 속에 동지 모아 손을 맞잡고 가자
열이면 열 천이면 천 생사를 같이 하자
둘이라도 떨어져서 가지 말자
가로 질러 놀란 산이라면 어기여차 넘어주고
사나운 파도 바다라면 어기여차 건너주자.
- 김남주 '함께가자 우리 이 길을' 일부.

역사는 죽음을 초월하여 흘러가면서도 죽음과 죽은 자들을 잊지 않도록 경계하고, 죽음을 일깨우고 죽은 자들을 기억하게 하는 것으로 남아 있는 경우에만 역사적일 수 있지 않은가?
- 폴리쾨르, '시간과 이야기'에서.

필자의 건강과 자료의 부족으로 여기에 수록하지 못한 열사와 유족에게 송구스럽다.

그동안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주석
1> 석원호, '인혁열사' 여정남기념사업회장, <한겨레>, 2025년 3월 19일.
2> 김누리(중앙대교수), '후기 파시즘 사회를 넘어서', <한겨레>, 2025년 6월18일.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민족민주열사 열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김삼웅인물열전#민족민주열사열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독자의견0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