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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제주에서 도는 이상한 소문을 접했다. 노슬미라는 청년 활동가가 있는데, 한 사람이 아니라 일곱명이라는 거다. 그만큼 여기저기 온갖 활동 현장에 출몰해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활동가 노슬미님(아래 슬미). 대체 어떤 사람일까 호기심 가득 안고 그를 만나 보았다. 역시 바쁜 분, 한 번에 인터뷰가 어려워 제주시 한 카페에서 지난 7월 말과 8월 말, 두 번에 걸쳐 만났다.

▲제주여민회 사무실 새단장을 마치고 성과 발표하는 노슬미 님 ⓒ 노슬미
서울에서 제주로, '생각하면 하는' 사람
- 오늘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실지 몹시 궁금했는데요. 차례대로 이야기 나누어 보겠습니다. 우선 제주에 살고 계신 슬미님의 바다에 대한 기억은 어떤가요? 어린 시절 바다는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어릴 때 부모님 따라 강릉 바다에 많이 갔던 기억이 나네요. 제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에 나온 한 여름의 바다는 가족들이 버스를 타고 노래를 부르면서 가는 곳인데, 화창하고 반짝거렸어요. 그런데 제가 어렸을 때 만난, 제 기억 속의 바다는 우중충한 회색 빛이고 사람들도 없는 한적한 바다였어요. 아마 흐린 날 많이 갔나 봐요(웃음)."
- 제주의 바다는 어땠나요?
"2020년부터 정착해 이제 6년 차예요. 그전에는 제주에 왔다 갔다 했고요. 특별하게 떠오르는 바다는 2014년 곽지 바다인데요. 어느 날 한밤 중에 바다에 들어갔어요. 친구들과 재미있게 노는데 갑자기 발이 쑥 빠지면서 물이 너무 깊어지는 거예요. 깜깜해서 아무것도 안 보이니 너무 놀랐고 그때 바다가 엄청 무서웠어요. 다행히 무사히 잘 나오기는 했어요. 다음 날 다른 바다에 가서 스노클링을 했는데 이번엔 바닷속이 너무 아름답고 예쁜 거예요. 그 황홀한 바다 속에 계속 있고 싶더라고요. 바다가 무섭기도 했지만, 또 아름다운 기억 덕분에 제가 제주에 살게 된 것 같아요. 함덕에 살 때는 혼자서도 자주 바다에 나갔습니다. 또 친구들과도 바다에서 많이 놀고 지냅니다."
- 시민단체 활동가로 일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어떤 일을 해 왔는지 궁금하네요.
"서울에 살 때는 주로 전시 기획 일을 했어요. 그러다 어느 날 제주도에 제2공항이 들어선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동시에 제주의 아름다운 비자림로 나무들이 베어진다는 가슴 아픈 소식도 들었고요.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그 상황을 서울 사는 사람들에게도 그대로 보여줘야겠다 생각했어요. 비자림로의 잘려 나가는 나무들을 주제로 친구들과 함께 행사를 기획해 짧은 연극 공연도 하고, 음악 공연과 그림 전시, 영상물 상영도 상영했어요. '이야기 잔치'라는 행사였는데요. 저는 총괄 기획을 맡아 진행했지요. '이야기 잔치'는 제주로 이어져 7번째까지 이어졌고요. 제주로 와서는 조작 간첩 사건이나 세월호 관련 전시와 공연, 토크 콘서트를 기획하고 진행했습니다."

▲2025 제주생명평화대행진에 참가한 시민들 ⓒ 노슬미
- 조작 간첩 사건에 대한 전시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됐나요.
"제주도에 '수상한 집 광보네'라는 공간이 있어요. 강광보라는 어르신이 계신데요. 1960년대 초 일본으로 밀항했다가 1979년도에 제주로 강제 추방 된 분이에요. 입국하자마자 간첩 죄목으로 붙잡혀 고문을 받았지만 무혐의로 풀려났지요. 그런데 한참 지나 1986년에 보안사로 다시 끌려갔고 고문에 못 이겨 간첩이라고 허위 자백을 하셨어요. 간첩으로 조작되어 무려 7년을 복역하고 출소하신 거죠. 이후 변호사들의 도움을 받아 재심을 청구했고 2017년에 드디어 무죄 판결을 받으셨어요.
그리고 강광보님 소유의 집과 토지에 국가에서 받은 배상금과 시민들의 후원금을 모아 '수상한 집 광보네'가 만들어졌습니다. 전시 공간과 카페, 게스트하우스 등이 들어섰죠. 여기 관련된 분이 제가 서울에서 '이야기 잔치'를 진행한 것을 보시고 제주에 와서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해 주셨어요. 저도 마침 제주에 오고 싶었는데 냉큼 좋아라 했지요. '강광보를 찾아라'라는 제목으로 전시, 공연, 토크 콘서트도 열었어요. 강광보 어르신이 살아온 삶의 이야기, 그리고 이 공간을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제로 진행했습니다."
- 한국 현대사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긴 귀한 공간이네요. 공간 크기와 관계 없이 전시, 공연 총괄기획은 경험이 없으면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다양한 프로그램 기획 활동을 하는 친구들이 제주도에 있습니다. 2014년 무렵, 그 친구들과 한 소아암 환우를 돕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요. 뜻이 맞는 10명 정도가 모여 제주도를 자전거로 한 바퀴 돌자, 200km 돌면서 1km 당 1만 원씩 모아보자 했지요. 자전거로 달리면서 중간 중간 거리 공연도 하고 그걸 영상으로 올리면서 후원금을 모았어요. 그리고 모은 후원금을 소아암 환우에게 전달했어요. 그 과정을 통해 많이 배운 것 같아요. 필요한 일이 있으면 기획하고 사람들을 모아 함께 추진하고 진행하면서 여러 배움이 일어난 거죠."
- 생각하면 그냥 하시는군요(웃음). 현재 주로 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제주에서 창립한 지 38년 된 여성단체인 제주여민회에서 상근 활동가로 일합니다. 성평등한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진보적 여성 단체인데요. 저는 성평등 교육센터 담당 활동가로 일하며 그 외 여민회의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어요. 청년들이 모인 2030 위원회 활동도 하고 농촌 지역의 성평등을 위한 성평등마을사업단 활동과 정책위원회 활동도 같이 하고 있습니다."
- 얼마 전부터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제주에 슬미님이 7명이라고 하더라고요. 여기저기 온갖 곳에 출몰한다는 거예요. 제주여민회 활동 뿐 아니라 그 외 활동도 많이 하시는 것 같던데. 대체 무슨 일들을 하시는 거예요?
"제주여민회가 하는 일이 많다 보니 제가 활동가로 여기저기 참여하는 바람에 그런 소문이 난 것 같아요(웃음). 다양한 연대 활동이 있는데요. 탈핵기후위기제주행동, 대중교통과 풍력발전에 대한 논의, 기후 정의 행진, 생명 평화 대행진 등등 현안에 참여하면서 토론회, 기자회견, 행사 진행에 대해 논의하고 현장에 함께 하고 있거든요.
그 외에도 제주도에서 주관하는 청년정책조정위원회라는 게 있는데 교육, 문화, 복지 등 다양한 분야를 논의하고 청년에게 필요한 정책을 만드는 위원회예요. 지난해 청년 정책 원탁회의가 있었고 제가 청년으로 참석하면서 더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원탁회의 후 이 위원회에서 모집 공고가 떴더라고요. 여민회 사무국과 의논해 제가 응모하게 되었는데 선정되었어요. 이제 시작하는 거라 기대도 되고 열심히 해보고 싶어요."

▲2025 제주차별철폐대행진 당시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부스에서 ⓒ 노슬미
- 정말 많은 활동에 결합하고 있네요. 그중 가장 최근에 있었던 건 제주 생명 평화 대행진인 것 같은데요. 행진은 왜 하는지, 올해의 행진은 어떠했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제주 생명 평화 대행진은 올해 11회 차인데요. 평화의 바람을 담아 3박 4일간 제주 일대를 걷습니다. 올해는 강정 해군기지 앞 기자회견에서 시작해 안덕, 한림, 애월을 거쳐 제주 시청 앞 평화 문화제까지 약 51.3km를 함께 걷는 거죠. 약 100여 명의 시민들이 참석했고요. 제주 해군 기지의 문제점, 기후 위기, 제 2공항, 송악산 알뜨르 난개발 문제 같은 제주 현안을 생각하며 현장에서 강의도 듣고 행진을 마친 저녁에 모여 토론도 합니다.
저는 지난해부터 행진에 참여했고요. 안전팀 역할을 맡아 행진에 참여한 시민들이 안전하게 행진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행진에 굉장히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는데요. 10대부터 60~70대까지 연령층도 다양하고요. 육지에서 오는 분들, 그리고 외국인도 참여합니다. 이렇게 다양하다 보니 참여자들 간 규칙이 필요합니다. '약속문'을 만들어 함께 읽고 다짐하는 시간도 가졌어요. 예를 들면 '우리는 성 역할로부터 자유로우며 서로를 존중한다' '외모에 대한 발언과 행동에 주의하며 상대방이 원치 않는 신체 접촉을 하지 않는다' 같은 내용이고요. 둘째 날 저녁에는 '성인지 감수성' 교육 프로그램도 마련했는데 참 잘한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바다도, 고래도, 인간도... 자기대로 헤엄치고 흐르며 살아갔으면"
- 행진 중 슬미님이 겪은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안전팀 역할을 하며 차량이 지나가는 길과 사람이 행진하는 길 사이 딱 그 경계선에서 일렬로 맞춰 안전봉을 흔들면서 갔거든요. 둘째 날, 한 분이 갑자기 이탈해 어디론가 가는 거예요. 일단 상황을 알리는 무전을 하고 그분을 따라갔어요. 외국인이었는데 골목으로 계속 가시더라고요. 따라가 보니 골목 골목에 벽화가 그려져 있었고 사진을 찍느라 계속 들어가신 것이었어요. 미처 말 못 해 미안하다고 하시면서 이따가 합류하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알겠다고 하고 저는 한참 멀어진 대열을 쫓아가느라 전력 질주 했죠. 최고 속도로 달리면서 머릿속에 문득 '그림을 계속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피어오르는 거예요. 벽화를 보며 사진을 찍는 분을 보니 그런 생각이 난 것 같아요."

▲주머니(2024)마음 속에 생겨난 응어리는 몸과 함께 자라서 무엇인가 담을 수 있는 주머니가 되었다(노슬미 작) ⓒ 노슬미
- 그림 그리는 일도 하는 것 같던데 어떤 방식으로 하시는지, 그리고 그림 작업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2022년부터 달리도서관에서 사람들과 주 1회 모여 3개월 정도 그림 그리는 모임을 하고 있어요. 모일 때마다 각각 어떤 주제로 그릴까 쪽지에 적어 뽑기를 합니다. 예를 들어 '토끼'가 뽑혔다면 그날은 각자 '토끼'를 생각하며 떠오르는 무엇이든 그리는 거예요. 다 그리고 나면 펼쳐 놓고 자기 그림에 대해 설명하고 느낌을 나눠요. 그리고 사진으로 남깁니다. 한 기수가 3개월 프로그램인데 벌써 10기가 되었고요.
연말엔 도서관에서 간단히 전시도 해요. 그림을 그리며 제가 미처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것이 그림으로 표현되는 것 같아요. 살다 보면 몸 안에 심리적 독소가 쌓이는데 저는 그걸 그림으로 표현하며 불필요한 감정들이 몸 안에 쌓이지 않도록 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면 '아, 이런 게 내 안에 남아 있었구나' 알게 되고 이후엔 달리 표현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이 모임의 이름이 '달리 그릴 수밖에'인데요. 딱 맞는 이름인 것 같아요. 저는 여기에서 모임장의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 바다에 자주 가서 논다고 하셨는데, 요즘 기후 위기 상황에 바다는 어떻다고 느끼시는지 궁금합니다. 또 제주 바다에 어떤 바람이 있는지요?
"땡볕의 무더위와 폭우를 보면서 기후 위기가 심각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바닷가에 떠밀려오는 해조류가 쌓이면서 냄새나는 현장을 볼 때도, 바닷물이 뜨거워졌다는 뉴스를 볼 때도 그렇고요. 최근엔 해파리들도 엄청 늘었더라고요. 제가 느끼기엔 갑자기 바다가 확 변한 것 같아요.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의 회원으로서 파란 활동이 너무 필요한 일이라 생각하고요. 제가 직접 바다에 뛰어들어 활동은 못하지만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일은 하는 중이에요. 일회용품 안 쓰고 컵도 가지고 다니고, 남은 음식은 싸 갈 수 있게 그릇 챙겨야겠다 생각하고요. 가급적 배달 음식도 적게... 악동뮤지션의 노래 중에 '고래'라는 노래가 있어요. 가사를 보면,
"고래야 적어도 바다는 네가 가졌으면 좋겠어. 바다는 네가 가졌으면 좋겠어. 고래야 헤엄 하던 대로 계속 헤엄 했으면 좋겠어. 나는 네가 부러운데 아마도 다들 그래서 너한테 바다를 뺏으려는 지도 몰라."
이런 내용이에요. 이 노래를 진짜 좋아해요. 바다도, 고래도, 인간도, 자연 만물도 다 그냥 자기대로 그렇게 헤엄치고 흐르며 살아가면 좋겠어요."

▲제주 삼양 바다의 석양 ⓒ 노슬미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뉴스레터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