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조찬기도회가 도대체 무슨 집단인가? 온 국민은 의아해한다.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모임인가, 아니면 매관매직을 꾀하는 이들의 교류창인가?"라는 의심의 눈길이 곳곳에서 쏟아진다.
그 의혹은 더욱 선명해졌다. 서희건설 회장 이봉관씨가 회장을, 이배용 전 국가교육위원장이 부회장을 맡아왔다. 이들이 김건희 전 대통령 부인에게 '반클리프 아펠' 목걸이와 '금거북이'를 각각 전달했다는 의혹은, 이 기도회가 단순한 신앙 모임이 아닌 권력·재계·종교가 교차하는 구조적 네트워크임을 스스로 입증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나라를 위해 기도한다"는 명분 뒤에서 인사 청탁이 오가고, 귀금속이 드나들며, 권력의 주변에서 사익이 거래됐다는 의혹이 나온다. 그 결과 신앙의 순수성은 무너지고, 공공 윤리는 심하게 망가졌다.
헌법은 분명히 말한다. 국가는 특정 종교를 국교로 삼을 수 없고, 종교와 정치는 명확히 분리되어야 한다. 그러나 '국가'라는 이름 아래 고위 공직자들이 대거 참석하며 의전이 더해지는 순간, 종교 행사는 공적 권위를 부여받는다. 민간 행사라는 포장은 무력해진다.
신앙의 본질 또한 위협받고 있다. 예수님은 성전이 장사와 흥정의 장소로 변질되는 것을 "강도의 소굴"이라 꾸짖으셨다(마가복음 11:15‑17). 오늘의 국가조찬기도회는 이 본질을 뒤엎는 장이 되어 버렸다.
기도는 본래 억울한 이들과 함께 울며 드리는 것이다. 감옥에 갇혀 신음하는 노동자, 하루하루 버티는 영세 자영업자, 농촌에서 땀 흘리는 농민, 차별과 소외 속에서 살아가는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기도여야 한다. 권력의 주변이 아니라, 가장 낮은 자리에서 드려지는 것이 기도의 자리다.
"공정함"을 말하면서, 권력과 가까운 종교 행사에서 청탁과 선물이 오가는 것을 방치한다면, 누가 법과 상식을 믿겠는가? 교육을 책임지는 기관조차 이런 파문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면, 미래 세대에게 무엇을 전할 수 있겠는가?
"선한 뜻으로 나라를 위한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선한 뜻이라면 권력에서 거리를 두어야 한다. 기도는 화려한 의전이 아니라, 양심의 골방에서 더 맑게 드려질 때 완전해진다.
이제 결단해야 한다. 국가조찬기도회를 멈추고, 다음과 같은 제도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1. '국가' 명칭과 공적 자원 사용 즉각 중단
2. 공직자의 종교행사 참여에 대한 이해충돌·청탁·금품 수수 금지 기준 법제화
3. 종교행사 빌미 인사·사업 청탁 전면 금지 및 실효적 감사·제재 시스템 구축
이는 특정 종교를 배척하자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신앙을 본래 자리로 돌려놓자는 요구다. 기도는 권력의 그늘이 아니라, 억울한 이웃의 눈물 속에서 빛을 발한다.
그대들은 알아야 한다. 당신들 때문에 한국 기독교 전체가 세상의 비난을 받고 있다. 교회는 조롱의 대상이 되고, 신앙은 권력과 거래의 언어로 오해받는다. 아, 부끄럽지 않은가. 하나님 앞에서 두렵지 않은가.
기도는 거래가 아니라 눈물이다. 권력의 문턱이 아니라, 힘없고 억울한 이웃의 삶 속에서 드려져야 한다. 하나님은 화려한 만찬보다 눌린 자의 신음에 더 가까이 계신다. 국가조찬기도회가 멈추는 그날, 한국 교회는 다시금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참된 기도요, 이 땅의 민주주의와 공동선을 살리는 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옥성씨는 교육희망네트워크 상임대표/ 한국기독교장로회 하늘씨앗교회 목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