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강대 안 노고산 입구에 있는 김의기 열사 추모비. ⓒ 김대홍
김의기 열사는 1959년 4월 20일 경북 영주군 부석에서 태어났다. 6남매 중 막내였다. 아버지는 농촌의 말단 경찰관으로 가족 부양과 자식들 교육이 어렵자 사직하고 서울로 옮겼다. 자영업을 시작했으나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김의기는 1976년 서강대 무역학과에 입학하여 학생운동에 참여하면서 사회의식에 눈이 트였다. 유신체제의 제반 모순을 지켜보면서 열심히 학생운동에 참여하였다. 정치상황은 박정희 대통령의 잇따른 긴급조치에 이어 10.26사건이 터지고 전두환 일당의 12.12 신군부반란은 파국으로 치달았다.
김의기 열사는 1980년 5월 17일, 가족에게도 교회에 간다는 말을 남기고 광주로 갔다. 전두환 신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날이다.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등 '서울의 봄'을 짓밟았다. 광주에서는 계엄령에 저항하는 전남대생들과 무장군인들이 대치하고 곧 이어 계엄군의 살육이 자행되었다.
김의기 열사는 광주 현장에서 무자비한 계엄군의 살육극을 지켜보면서 이같은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자 했다. 서울로 와서 5월 30일 정기적으로 출석했던 종로 5가 기독교회관의 금요기도회를 통해 광주학살의 참상을 폭로하고자 했다. 이날 기독교회관 주변은 계엄군이 일반 통행을 차단하면서 삼엄하게 경계하고 있었다.
김의기 열사는 12시경 계엄군이 점심식사를 하느라 경계가 다소 느슨해진 틈을 이용하여 기독교회관으로 들어갔다. 6층에 있는 지인의 방에서 <동포에게 드리는 글>을 직접 타이프 쳐서 인쇄하였다. 그의 행동을 수상하게 여겼던지 계엄군이 들이닥치고 김 열사의 몸을 뒤져 유인물을 빼앗으려 했다. 한동안 실랑이가 벌어졌다. 김 열사가 반항하면서 준비한 유인물을 사방으로 뿌렸다.
이 과정에서 김 열사는 6층 건물 아래로 추락했다. 경찰에 붙잡히지 않으려고 투신한 것인지, 계엄군에 밀리는 와중에 난간으로 헛발을 디딘 것인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사람이 길바닥에 떨어지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과 상점 주인들이 "앗 사람이 떨어졌다"라고 소리쳤다. 바로 그때 밖에서 겹겹이 지키고 있던 계엄군이 사람의 접근을 막고 김의기 열사를 즉각 가마니로 덮어 보이지 않게 하고, 앰블런스를 불러 시신을 서울대병원으로 옮겼다.
그 이후 김의기 열사의 죽음은 여러 가지 의문을 남긴 채 "시위를 모의하고 사전에 발각되어 계엄군에게 반항하던 중 실족시켰다"고 알려져 있다. 그 다음날 가족이 시신을 확인했고 6월 2일 일산 기독교공동묘지에 안장했다.

▲고 김의기 열사. ⓒ 김의기열사추모사업회
김 열사가 남긴 <동포에게 드리는 글>이다
동포에게 드리는 글
피를 부르는 미친 군홧발소리가 우리가 고요히 잠들려는 우리의 안방에까지 스며들어 우리의 가슴팍과 머리를 짓이기어 놓으려 하고 있는 지금, 동포여 무엇을 하고 있는가? 동포여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보이지 않는 공포가 우리를 짓눌러 우리의 숨통을 막아버리고 우리의 눈과 귀를 막아 우리를 번득이는 총칼의 위협 아래 끌려다니는 노예로 만들고 있는 지금, 동포여 무엇을 하고 있는가? 동포여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무참한 살육으로 수많은 선량한 민주시민들의 피를 뜨거운 오월의 하늘 아래 뿌리게 한 남도의 봉기가 유신잔당들의 악랄한 언론탄압으로 왜곡과 거짓과 악의에 찬 허위선전으로 분칠해지고 있는 것을 보는 동포여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20년 동안 살벌한 총검 아래 갖은 압제와 만행을 자행하던 박정희 유신정권은 그 수괴가 피를 뿌리고 쓰러졌으나 그 잔당들에 의해 더욱 가혹한 탄압과 압제가 이루어지고 있다. 20년 동안 허위적 통계숫자와 사이비 경제이론으로 민중의 생활을 도탄에 몰아 넣은 결과를 우리는 지금 일부 돈 가진 자와 권력 가진 자를 제외한 온 민중이 받는 생존권의 위협이라는 것으로 똑똑히 보고 있다.
유신 잔당들은 이제 그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공포와 불안에 떨면서 개처럼, 노예처럼 살 것인가? 아니면 높푸른 하늘 우러르며 자유시민으로서 맑은 공기 마음껏 마시며 환희와 승리의 노래를 부르면서 살 것인가, 또 다시 치욕의 역사를 지속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후손들에게 자랑스럽고 떳떳한 조상이 될 것인가의.
동포여, 일어나자, 마지막 한 사람까지 일어나자, 우리의 힘모은 싸움은 역사의 정방향에 서 있다. 우리는 이긴다. 반드시 이기고야 만다. 동포여, 일어나 유신잔당의 마지막 숨통에 결정적 철퇴를 가하자. 일어나자, 일어나자, 일어나자, 동포여! 내일 정오 서울역 광장에 모여 오늘의 성전에 몸 바쳐 싸우자, 동포여!
1980년 5월30일
오후 4시35분
김 의 기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민족민주열사 열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