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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2일, 1982년도에 지었으니 40년 넘게 버티고 있던 축사를 허물었다. 한때 그곳은 젖소들의 집이자, 시아버지의 작은 월급 통장이었다. 시아버지는 그 축사에서 월세 삼십만 원을 받으셨다. 매일 낡은 옷만 입으시던 시아버지가 말쑥한 신사가 되는 날이 있었다. 월세를 받아 농협에 가는 날이었다.
소들이 이사를 하자, 그 돈줄은 뚝 끊겼다. 시아버지가 신사가 되는 날은 일 년에 한두 번으로 줄었다. 벼농사를 그만두시더니, 몇 년 후에는 밭농사도 그만두셨다. 점점 쇠약해진 몸은 끝내 세월을 이기지 못했다. 그게 벌써 10년도 넘은 2010년의 일이다.
40년 넘은 축사, 허무는 비용만 천만 원
남편과 나는 결혼하면서 시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두 분이 돌아가신 후에도 그곳에 남아 살고 있다. 고로 축사는 남편에게 상속되었다. 하지만 소 없는 축사는 농기구와 잡동사니를 쌓아두는 창고로 변했다. 창틀도 문도 모두 망가지니 흉물이 되어갔다. 1급 발암물질인 석면 슬레이트 지붕은 가족 모두의 건강을 위협했다.
범죄 영화에 나올 듯 음습하고 으스스한 건물을 더는 방치할 수 없었다. 지붕 철거 비용은 시에서 지원해 준다 해도, 벽체를 허물고 폐기물을 처리하는 데 천만 원이 든다고 했다. 큰돈이었지만, 오랜 고민 끝에 남편은 허물기로 했다.
결정이 난 뒤 짐 정리를 시작했다. 소들이 떠난 뒤 축사에 20년 넘게 쌓인 물건들은 한 집안의 작은 박물관 같았다. 오래된 액자들, 시아버지가 쓰던 낫과 괭이, 시어머니가 애지중지하던 대형 김장 대야…. 한 가족의 역사가 켜켜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진품명품에 내놓을 만한 귀한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 대부분은 폐기해야 할 낡은 유물들이었다.
그런데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폐기물로 가득 차 있던 그곳에서 작은 돌덩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높이 15센티미터 남짓한 돌 불상이었다. 언제, 어떻게 축사에 들어온 것일까. 돌아가신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는 아셨을까. 20년 동안 깜깜한 축사 안에서 이 불상은 무슨 역할을 하고 있었을까.

▲축사에서 발견한 불상 ⓒ 이인자
불상은 먼지가 켜켜이 쌓여 있었고, 표면은 군데군데 마모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범상치 않은 경건한 기운이 느껴졌다. 절대 버리면 안 되는 물건 같았다. 영화에서 보면 이런 기이한 물건을 발견하면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던데… 혹시? 정말? 생각의 진폭이 점점 커졌다. 달나라까지 날아갔다. 진실이 무엇이든 폐기물과 함께 사라지게 할 수는 없었다.
우리는 불상을 집으로 모셔 왔다. 돌 불상이라 제법 묵직했다. 먼저 정갈하게 씻겨 드리기로 했다. 따뜻한 물에 불상을 담갔다. 먼지를 불리고, 구석구석 문질렀다. 부드러운 수건으로 닦아내니 말쑥해졌다. 그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말쑥해진 불상이 월세 삼십만 원을 가지고 농협에 갔던 시아버지의 모습과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시아버지의 근면과 절약 덕에 가족들은 먹고 살았다. 한 번 들어온 돈을 쉽게 내주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벼를 벨 때면, 조카들까지 쌀 한 가마니씩 나눠줄 만큼 너그러운 사람이었다. 큰형이 일찍 돌아가시자, 형이 남기고 간 조카들까지 자식처럼 여겼다. 그들의 삶을 지켜주기 위해 몸이 닳도록 일했던 시아버지는 가족 모두에게 수호신이나 다름없었다.
불상의 다정한 미소를 바라보며 시작하는 아침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우리의 삶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약하게 태어난 큰딸은 여전히 약하지만, 더 나빠지지 않았다. 여섯 달밖에 못 사실 거라 했던 시어머니는 3년을 더 사셨다. 우리 부부도 마찬가지였다.
승승장구는 아니어도 월급쟁이 생활을 꾸준히 하고 있다. 대박을 바라지 않는 삶, 대신 최악을 피하는 삶. 그것은 시아버지가 바라셨을 그런 '별일 없는 작은 삶'이었다. 순간 혹시 이 불상 덕분인가 싶었다. 시아버지 대신 우리를 지켜주는 수호신이 아닐까 생각했다. 우리는 동쪽을 바라보는 가장 좋은 자리에 불상을 모셨다.

▲밤마다 간식을 먹기위해 모여드는 길고양이 가족 ⓒ 이인자
축사를 허물자, 그 빈자리를 아쉬워했던 건 길고양이들이었다. 그 축사가 그들의 숙소였던 모양이다. 어미 고양이와 새끼 둘, 자꾸 셋이 공터를 맴돌았다. 집을 잃은 길고양이들이 안쓰러웠다.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우리 고양이들한테 새로운 집을 만들어줘야 할 것 같은데?"
"그래, 하나 새로 마련해 주지 뭐."
남편도 동의했다. 인터넷에서 비싸지 않은 고양이 집을 샀다. 축사에 비하면 정말 작은 집이었다. 길고양이 처지에서는 천만 원짜리 집을 잃고, 몇만 원짜리 작은 집을 얻은 셈이다. 처음엔 곁을 주지 않던 녀석들이 아침저녁으로 밥을 주자 가까이 다가왔다. 며칠 사이지만 새끼들의 털빛이 윤기가 돌고, 꼬리도 더 길어졌다. 우리의 작은 선의가 그들의 삶을 지키고 있었다.
"더 좋은 건 못 줘. 우리가 해줄 수 있는 만큼만 해줄게."
아침이면 불상의 다정한 미소를 바라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밤이면 길고양이들의 가벼운 발걸음을 지켜보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삶을 지켜주는 다정한 수호신이 되어가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 스토리에도 실릴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