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봉댐무더위 속에 계속 줄어드는 오봉댐 저수율이 9월 1일 현재 14.7%로 위기 상황에 몰렸다(2025/9/1.오전6시30분) ⓒ 진재중
2000년 이후 강릉은 태풍, 대형산불, 폭설 등 각종 재해가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상수원이 바닥을 드러낼 정도의 사상 최악 가뭄으로 시민들을 긴장하게 하고 있다. 강릉을 비롯한 동해안은 백두대간과 동해라는 지리적 특성 탓에 호우, 대설, 산불 등 재난이 반복되는 지역이다. 물, 불, 눈에 의한 재해, 이른바 삼재(三災)가 시민들의 생존권을 위협해왔다.
"강릉, 기록적 가뭄에 오봉저수지 최저치… 제한급수 불과 열흘 만에 고갈 위기"
정부는 8월 30일, 최악의 가뭄에 직면한 강릉을 자연재난으로는 처음으로 재난사태를 선포했다. 최근 6개월간 강수량은 평년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으며, 강릉 생활용수의 87%를 공급하는 오봉저수지 저수율은 9월 1일 기준 15% 아래로 떨어져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2일 새벽 6시 30분, 오봉저수지 한켠에서는 하천에서 물을 끌어올려 채운 물줄기가 자그마한 폭포처럼 흘러내렸다. 이는 말라가는 저수지를 지키려는 안간힘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같은 날 기준 저수율은 14.7%까지 떨어지며 시민들의 불안을 키우고 있다.
특히 제한급수 조치가 시행된 지 불과 열흘 만에 예상보다 빠르게 물이 소진되고 있다. 당초 18일까지 버틸 것으로 예상했던 저수량이 훨씬 앞당겨 고갈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오봉댐인근하천에서 끌어올린 물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리고 있다. 그러나 오봉댐저수율을 충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2025/9/1) ⓒ 진재중
저수율이 25% 이하로 떨어진 지난 8월 20일부터는 가정 계량기 50% 잠금 제한급수가 시행됐고, 15% 미만이 되면 75% 잠금 조치가 이어진다. 이미 일부 고지대에서는 물이 나오지 않는 등 시민 불편이 현실화되고 있다. 당분간 강수 소식이 없어, 소방차량 운반 급수와 시민 절수 운동에도 주민들의 고통은 계속될 전망이다.
강릉의 이번 가뭄은 과거 기상이변의 연장선에 있다. 2002년 태풍 루사와 이듬해 매미는 이미 전조 증상을 보여주었다. 당시에는 하루 만에 한 해의 강수량이 쏟아져, 오봉저수지가 붕괴 직전까지 몰렸고 강릉 저지대 주민들에게는 대피령까지 내려졌다.
그 시절을 떠올린 김기철(73)씨는 "그때 오봉댐이 무너졌다면 강릉은 물바다가 되어 최악의 상황으로 갔을 것"이라며 "생각만 해도 끔찍해 다시는 회상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오봉댐강릉의 주요 상수원인 오봉댐 저수율이 9월1일 현재, 14.7%로 떨어지며 심각한 위기 상황에 직면했다. 기록적인 가뭄으로 시민들의 생활용수 확보가 어려워진 가운데, 정부와 지자체는 긴급 급수 체제를 가동하고 있다(2025/9/1) ⓒ 진재중
"강릉, 대형산불의 악몽… 지형·기후 탓에 반복되는 화마의 상처"
강릉은 가뭄뿐만 아니라 산불에도 취약하다. 2000년 4월, 동해안 대형산불 당시 강릉 사천·교동·홍제동 일대 1,447ha의 산림이 잿더미가 되었으며, 2004년 옥계산불, 2017년 강릉산불, 2023년 경포산불 등 크고 작은 대형 산불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2023년 경포산불은 아직도 시민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경포에서 펜션을 운영하던 진성두(65)씨는 삶의 터전을 잃고 강릉을 떠나 다른 지역에 정착했으며, 또 다른 주민들도 여전히 고통을 겪고 있다.
전문가들은 동해안의 지형적·기상적 특성이 산불 취약성을 키운다고 지적한다. 푄 현상으로 비가 와도 땅이 금세 마르고, 백두대간에서 동해까지 이어지는 가파른 지형은 수분 저장을 어렵게 한다. 여기에 영동 지방 특유의 국지풍인 양강지풍(襄江之風)이 대형 산불 발생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동해안 산불동해안 지역은 산불이 격년으로 반복 발생할 만큼 취약한 지대로 이러한 반복적 산불은 지역 생태계와 주민 생활에 지속적인 위협으로 작용하며, 예방과 대응의 중요성을 더욱 절실하게 만든다. ⓒ 진재중

▲화마가 쓸고간 자리2023년 강릉 산불은 지금도 아픈 상처로 남아 있다. 수많은 가옥과 산림이 소실되고, 주민들은 재난 속에서 불안을 겪었으며, 생태계와 지역 사회 회복에도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 진재중
"강릉, 가뭄·산불·폭설까지… 기후위기 최전선에 서다"
2014년 2월, 강릉에는 무려 11일간 눈이 내려 누적 적설량이 179.4㎝를 기록했다. 이는 기상 관측 이래 최장 기간이자 최대 적설량으로, 제설 작업에만 37만여 명이 투입될 정도였다. 당시 강릉은 도로와 철도, 공항까지 사실상 마비되며 '고립된 도시'라는 표현이 붙기도 했다.
이후에도 강릉은 겨울철마다 1m가 넘는 폭설에 반복적으로 시달려 왔다. 눈은 계절적 특성을 벗어나기도 했다. 2022년에는 벚꽃이 진 5월에도 눈이 내리는 이례적인 기상이변이 기록되며 주민들을 놀라게 했다.
강릉의 폭설은 단순한 불편을 넘어 지역 사회 전반에 심각한 영향을 끼쳤다. 도로와 항공편이 끊겨 관광객이 발이 묶였고, 농민들은 시설하우스와 밭작물이 눈더미에 파묻히는 피해를 입었다. 시민들은 매년 겨울이면 제설 작업에 동원돼야 했고, 노약자와 교통 취약계층은 생활 기반 자체가 흔들리기도 했다.
다른 지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의 강설량 속에서, 강릉 시민들은 눈과의 전쟁을 일상처럼 받아들이며 살아왔다. 이는 강릉이 단순히 기상 이변에 '노출된 도시'가 아니라, 기후위기의 직접적 영향을 가장 먼저 감당해야 하는 최전선에 있음을 보여준다.
강릉 입암동에 거주하는 윤성원(73)씨는 "강릉에서 10cm 눈은 눈도 아니다"라며, 강릉이 폭설이 빈번하게 내리는 지역임을 직접적으로 말해준다. 그는 "어릴 때부터 겨울마다 1m 넘는 눈과 싸우며 살아왔고, 주민들은 눈과 제설 작업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하며, 강릉 시민들의 일상이 폭설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말해주었다.
가뭄, 산불, 폭설까지. 강릉은 늘 예측 불가능한 기후에 직면해 왔다. 극단적인 자연재해가 되풀이되며 강릉은 '재해의 도시'라는 오명을 안게 되었고, 이는 단순한 기상 변동이 아니라 기후위기가 지역 사회에 어떤 방식으로 드러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폭설강릉의 폭설은 산간도로가 차단되면서 주민들의 이동이 어려워지고, 학교와 공공시설이 마비되며, 상점과 가정의 일상생활에도 큰 지장을 주었다. ⓒ 진재중

▲폭설강릉의 눈폭설은 건물과 농작물에 피해가 발생하는 등 시민들의 생활과 안전에 직접적인 위협이 된다. ⓒ 진재중
물에 잠기고, 물에 목마른 도시
2002년 태풍 루사는 강릉에 하루 870.5㎜의 기록적인 폭우를 쏟아부어 46명이 목숨을 잃고, 재산 피해만 9,730억 원에 달했다. 다음 해인 2003년 태풍 매미도 강릉을 강타하며 시민들을 다시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 당시를 회상하며, 강릉 안인에 거주하는 김시목(78)씨는 "그때 살아남은 것이 기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산덩어리가 내려와 집을 집어삼킬 듯했지만, 다행히 가족과 함께 살아남아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다"며, "다시는 이런 태풍이 오지 않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이처럼 물 폭탄으로 두 차례나 위기를 겪은 강릉은 이제 반대로 물부족이라는 새로운 위기에 직면해 있다. 폭우와 가뭄, 극단적 기상이 반복되며 강릉은 물 관리와 재해 대응에 있어 끊임없는 도전을 받아왔다. 이는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기후변화가 지역 사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홍수태풍 루사는 기록적인 물폭탄을 강릉에 쏟아부어 시민들에게 큰 피해를 주었다. 하루 870.5㎜의 폭우로 남대천과 주변 하천이 범람했고, 주택과 농경지가 침수되었으며 46명의 사망자와 9,730억 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강릉 시민들은 대피와 구조 활동에 매달렸으며, 이 재난은 지금까지도 지역 사회의 기억 속에 깊이 남아 있다. ⓒ 진재중

▲태풍2002년 태풍 루사로 큰 피해를 입었던 강릉 남대천을 따라 물이 흐르고 있다. 당시 남대천 일대는 범람과 산사태로 심각한 피해를 겪었으며, 이 기억은 강릉 시민들에게 아직도 생생하다. ⓒ 진재중
"이제는 시민이 나서야 할 차례, 강릉 물 위기 극복"
강릉 시내에는 붉은 대형 소방차들이 무더위를 잊은 채 쉴 새 없이 달리고 있다. 인근 하천과 연못에서 물을 끌어 올려 홍제정수장으로 운반하는 소방차는 전국에서 모인 총 72대다. 시민들의 생활용수를 확보하기 위한 긴급 급수 작업으로, 강릉 전역이 비상 체제 속에서 하루도 쉬지 않고 가동되고 있다.
울진에서 지원온 박주봉 소방관은 "한 방울의 물도 허투루 쓸 수 없는 상황"이라며, "모든 인력과 장비가 동원되어 강릉 시민들에게 안정적인 생활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전했다.

▲소방차“전국에서 지원된 소방차가 홍제정수장으로 물을 운반하며 긴급 급수 작업을 펼치고 있다.” ⓒ 진재중

▲소방대원전국에서 지원 나온 소방관들을 돕기 위해 강릉 소방대원들이 현장에 나와 있다. 이들은 소방차 운전과 하천·연못에서 물을 끌어 올리는 작업을 함께 수행하며, 긴급 급수 작전을 원활히 진행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시민들의 생활용수를 확보하기 위한 이번 작업에는 지역 소방대원과 전국 지원 인력이 한 팀이 되어 하루도 쉬지 않고 비상 체제로 움직이고 있다. ⓒ 진재중
23년 전 폭우 때와 달리, 이번에는 전혀 다른 물 부족 위기 앞에서 시민 개개인의 책임과 실천이 도시를 지키는 핵심 요소가 되고 있다. 강릉은 여전히 물·불·눈과 싸우고 있지만, 이번 가뭄은 정부의 지원과 소방관의 총력 급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시민들의 작은 습관과 절약이 합쳐질 때만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강릉의 자그마한 마을 이장이 길 모퉁이에 내건 물 절약 플래카드가 눈길을 끈다.

▲물절약 플래카드강릉시 사천면 마을 이장이 내건 플랭카드 ⓒ 진재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