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 중심 수업은 학생 참여를 끌어내고 교실을 생동감 있게 만든다는 명분으로 오랫동안 강조되어 왔다. 실제로 많은 교사들이 이러한 취지에 공감하며, 수업을 더 의미 있고 재미있게 만들기 위해 고심하며 다양한 활동 수업을 실천해왔다. 그러한 노력과 열정, 그로 인한 수업 담론의 성장 자체는 충분히 존중받을 필요가 있다.
문제는 정책 차원에서 교실의 다양한 조건과 학생들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활동 수업만을 일방적으로 강요한다는 점이다. 많은 지점에서 서로 의견이 엇갈리는 여러 교육단체와 교육부도 활동 수업이 정답이라는 전제는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활동 수업은 교육의 본령을 약화시키고 새로운 불평등과 모순을 낳는 부작용의 책임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기초 지식 없는 활동의 공허함
가장 먼저 지적해야 할 것은 기초 소양 지식과 각 교과의 뼈대 지식이 제대로 축적될 기회를 잃는다는 점이다. 지식을 바탕으로 한 기본기가 있어야 자신만의 사고와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다.
어떤 '전문가'들은 어차피 검색하면 다 나오는 사실들을 암기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검색을 하려면 무엇을, 어떤 기준으로 찾아야 하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문제를 정의하고 핵심어를 정하는 데 기초 지식이 필요하다. 아무 배경지식 없이 검색창에 손가락을 올려놓는다고 해서 의미 있는 결과를 얻을 수는 없다.
또한 검색 결과에는 사실과 오류, 상업적 의도와 편향된 주장이 섞여 있다. 잘못된 정보를 걸러내려면 기본적인 사실과 원리, 맥락에 대한 기초 지식이 있어야 한다. 기준점이 없으면 가짜뉴스나 음모론에도 쉽게 휘둘린다. 검색으로 얻은 지식이 내 문제 해결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맥락상 타당한지 평가하려면 역시 기반이 되는 지식이 필요하다.
뼈대가 있어야 가지를 붙일 수 있고, 토대가 있어야 확장된 탐구가 가능하다. 지식 기반 없이 활동만 반복하면 학생들은 검색과 복사, 붙여넣기를 반복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비판적 사고와 창의적 활용은 공허한 구호일 뿐 실제 성취로 이어지지 않는다.
교실 다수 학생의 병풍화
이러한 기초 부재는 교실 장면에서 병풍화라는 문제로 드러난다. 활동 수업은 모든 학생의 성장을 돕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대체로 상위권이거나 외향적인 몇몇 학생들이 모둠별 활동을 주도하고, 대다수 학생들은 병풍처럼 서 있게 된다.
교실은 학생 개개인의 배움을 기록하는 장이 아니라, 이미 준비된 학생들의 완성된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무대로 기능하고 있다. 중하위권 학생들에게는 그나마 학습의 측면에서는 죽은 시간 속에서 몇몇 장면만 간신히 건져 올린 기록이 마치 성공적인 학습 참여로 포장된다.
지필평가와의 괴리, 사교육의 확산
지필평가와의 괴리도 크다. 여전히 지필평가는 지식의 암기와 이해를 요구하는데, 활동 수업이 과도하게 시간을 잠식하면서 정작 시험을 대비할 지식 전달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다. 수행평가와 지필평가를 동시에 준비해야 하는 학생들에게 교실은 더 이상 든든한 학습장이 되지 못하고, 부족한 부분은 고스란히 사교육이나 가정 학습으로 떠넘겨진다.
공교육의 신뢰는 떨어지고 사교육 시장은 이 틈을 파고들어 오히려 교사들이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 학원 강사보다 실력이 떨어진다는 프레임을 확산시키며 학부모와 학생을 불안에 빠뜨린다.
학습착취 구조와 격차 확대
더 나아가 활동 중심 수업은 '학습착취'를 전제한다. 수업 시간에 지식을 충분히 전달하지 않으니, 학생들은 방과 후에 스스로 지식을 찾아야만 한다. 이는 20세기 교실의 강제적 야간 자습보다도 더 가혹한 측면이 있다. 당시에는 교사가 교실에서 지식을 가르쳐주었고 학생은 복습을 하는 형태였지만, 지금은 지식을 충분히 제공하지 않은 상태에서 학생들에게 알아서 학습하라는 부담을 지운다.
결국 부모의 학력, 사회자본, 경제력에 따라 격차가 심화되고, 계층 간 학력 불평등은 더욱 커지게 된다. 방과후 안정된 공간에서 학습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지 않는 학생에게는 더욱 따라잡을 기회가 없다. 공교육이 평등을 보장하기는커녕 불평등을 가속화시키는 구조로 작동하는 것이다.
만약 하루 7교시가 모두 활동이라면
만약 교육부나 '전문가'들의 주장대로 정말 모든 교사들이 하루 7교시를 활동 수업으로만 채운다고 가정해보자. 장담컨대 교실은 더욱 확실하게 무너질 것이다. 학생들의 피로감은 폭발하고, 견디지 못한 학생들의 지각과 조퇴, 결석, 정시에만 매진하는 경향 등이 크게 늘어날 것이다.
학업 성취에 대한 불안과 무력감은 학생들을 학교 밖으로 내몰 것이고, 자퇴와 학교 이탈은 지금보다 훨씬 심각해질 것이다. 사교육에 기댈 수 있는 가정과 그렇지 못한 가정 학생 간 학업 성취의 차이는 더욱 회복할 수 없는 수준으로 확대될 것이다.
현재 활동 중심 수업에서 어느 정도 괜찮은 그림이 나오는 부분이 있다면, 그 원동력은 다른 강의식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어느 정도 긴장을 풀고 회복할 시간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상론적 구호를 그대로 현실에 적용했을 때 어떤 파국이 닥칠 수 있는지 숙고해야 한다.
'성장 서사'라는 환상
수업, 평가, 기록의 일체화라는 이상 또한 현실과 괴리된 환상이다. 실제로 그 기록이 담고 있는 것은 모든 학생들의 성장 서사가 아니라, 상위권 학생들의 완성된 장면들을 나열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중하위권 학생들에게는 사실상 죽은 시간 중 몇몇 살아남은 장면의 편집본일 뿐이다.
사회적 조건과 다양한 학교 현실을 무시한 채, 모든 교실이 똑같은 활동 중심 수업의 아름다운 그림과 의도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교육 현장의 복잡성을 간과한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개별 지역, 학교, 교실의 다양한 조건을 고려하지 않는 활동 수업 일변도의 정책은 교실을 더 역동적으로 만들기는커녕, 교육의 본질을 약화시키고 학생과 교사 모두를 소진시키며, 사교육 의존성과 사회적 불평등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학생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활동'이라는 외피가 아니라, 정제된 지식을 통해 기본기를 세우고 그 위에서 성장할 수 있는 튼튼한 뼈대이다. 활동은 그 지식을 풍부하게 하고 확장할 때 의미가 있다. 이제는 활동 수업을 만능 처방처럼 내세우는 흐름에 제동을 걸고, 다양한 학교와 지역사회의 조건을 존중하며 공교육의 본령을 회복하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