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우 유튜브를 시청하는 학생들(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챗GPT로 제작한 AI이미지입니다). ⓒ 챗GPT
"선생님, 그거 아세요? 극우 유튜브마다 모두 우리나라 현대사만 소재로 삼고 있다는 것을요."
한 아이가 뭐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듯 호들갑스럽게 교무실로 뛰어와 말을 건넸다. 삼척동자도 다 아는 내용이지만 그는 지금껏 미처 몰랐다고 했다. 주위 친구들의 반응은 대개 "그래서 어쩌라고?" 식이지만, 극우 유튜버의 교묘한 상술을 깨닫게 됐다며 스스로 대견해했다.
종일 스마트폰 화면에 코를 박고 지내는 그가 일갈하는 '유튜브 대박 공식'은 이것이다. 눈길을 잡아끄는 제목에 극단적 갈등을 부추기는 소재, 거기에 선을 넘을 듯 말 듯한 찰진 욕설이 가미되면 금상첨화라는 거다. 유튜브가 공중파 방송과 달리 법적 규제로부터 자유롭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정치 시사와 관련된 유튜브도 모두 현대사와 맞닿아 있다고 덧붙였다. 현대사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으면 '가짜 뉴스'가 횡행하는 극우 유튜브에 휘말리지 않을 거라고 힘주어 말했다. 현대사에 대해 아는 게 부족하다 보니, 유튜버들이 지껄이는 '헛소리'를 마치 사실처럼 믿게 된다는 거다.
아이들의 유튜브 중독과 현대사 지식 부재
그의 새삼스러운 깨달음에 덩달아 무릎을 치긴 했지만 차마 칭찬할 수는 없었다. 요즘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건네는 인사말이 "제발 유튜브 좀 그만 봐라"는 거다. 웬만한 현대사 '덕후'가 아닌 다음에야 누구든 '가짜 뉴스'에 현혹되어 아이들끼리도 서로 적이 되어 말다툼을 벌인다. 흡사 알고리즘의 노예가 된 전사의 모습이다.
요즘 아이들의 현대사, 특히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사에 대한 지식은 부족하다는 말 정도로 눙치기 힘든 수준이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열 명 이상 말할 수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느닷없이 녹두장군 전봉준의 이름이 튀어나오는가 하면, 박정희를 이승만과 묶어 독립운동가로 알고 있는 아이도 있다.
안중근과 유관순, 윤봉길과 김구, 김좌진과 홍범도 정도가 전부다. 그나마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안중근은 국권 피탈 전의 인물이니 엄밀히 따지면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도 아니다. 교육과정이 개정되면서 교과서에 독립운동가들의 이름과 업적이 비교적 상세히 수록되었지만, 아직 아이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해방 후 현대사의 정치인으로 범위를 넓혀 보면 더욱 기가 막힌다. 북한 측 인사들은 김일성 말곤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굳이 떠올려보라면, 권력을 승계한 김정일과 김정은이 고작이다. 남한 측이라고 해서 별반 다를 것도 없다. 이승만과 김구, 드물게 여운형과 김규식 정도가 언급될 뿐이다.
차라리 최근의 정치인들을 더 잘 알고 있다. 전직 대통령들은 물론 여야 정당의 대표, 심지어 장관과 법조계 인물들을 줄줄 꿰고 있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유튜브를 끼고 산 덕분이다. 아이들은 유튜브 방송에 나와 그들이 떠들어대는 말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 아이들은 그들을 '유튜버'라고 하지 않고 '인플루언서'라고 부른다.
이게 어디 아이들만의 문제일까마는 진실에 기반한 설명보다 현란한 말솜씨에 열광하는 이들이 태반이다. 개중에는 역사적 사실을 교묘하게 왜곡해 전달하기도 하지만 공부가 되어 있지 않으면 그들의 '교언영색'을 알아차리기란 쉽지 않다. 유튜브 속 그들의 말을 통해 역사를 공부하는 마당이니 기대조차 허망하다.
아이들의 역사 공부 현실

▲김형석 관장 사퇴를 요구하며 독립기념관 겨레누리관에서 농성 중인 독립투사 후손들. ⓒ 김종훈
최근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이 광복절 80주년 경축식 기념사에서 "광복은 연합국의 승리로 얻은 선물"이라고 말해 논란이 일었다. 광복회 등 독립운동 단체에서 퇴진 요구가 들끓는 등 사회적 파문이 이어지고 있지만, 아이들 다수는 뭐가 문제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미국의 원폭 투하로 일제가 항복한 것 아니냐"는 반문이 이어진다.
"안중근의 권총과 윤봉길의 도시락 폭탄보다 원자폭탄이 더 영향이 컸던 건 맞잖아요."
언뜻 우스갯소리 같은 한 아이의 질문에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에게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은 안중근과 윤봉길 등 몇 명의 위대한 인물들이 목숨을 바친 저항일 뿐이다. 아이들이 기억할 만한 독립운동이란 3.1 운동과 봉오동 전투, 청산리 대첩, 광주학생독립운동 정도가 전부이니,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다.
교육과정이 개정되면서 한국사에서 근현대사의 분량이 크게 늘었지만 중요도에 있어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사는 늘 뒷전이다. 시험에 출제되는 내용이 뻔한 데다 아이들이 공부하기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다.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이 너무 많고, 단체의 이름도 생소하고 비슷해 혀를 내두르곤 한다.
특히 공산주의 독립운동가들과 관련된 단원은 일단 '패스'하고 본다. 시험에 나오지도 않는 걸 공부하느라 에너지를 쓸 필요가 없다는 거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은 민족주의와 공산주의라는 두 바퀴로 이어져 왔다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지만, 공부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독립운동사의 절반을 고스란히 내팽개치는 꼴이다.
독립운동사를 띄엄띄엄 공부하다 보니 해방 후 현대사가 제대로 이해될 리 없다. 여운형과 박헌영을 독립운동가가 아닌 이승만과 김일성에 대항한 '갑툭튀' 정치인으로 안다. 주시경의 제자인 국어학자 김두봉과 조선독립동맹의 주석 김두봉, 그리고 해방 후 남북 협상 때 김구와 김규식을 만난 김두봉을 '동명이인'인 줄로 알 정도다.
유튜브가 만드는 편견과 혼란

▲효창공원 삼의사 묘역. 왼쪽으로부터 안중근(가묘),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가 차례대로 모셔져 있다. ⓒ 서부원
"의열단원 대다수는 일제에 항거하다 목숨을 잃었는데, 정작 의열단을 세운 김원봉은 해방 후까지 살아남아 북한으로 도망쳤잖아요. 과연 그를 위대한 독립운동가라고 할 수 있나요?"
"아들뻘인 윤봉길을 사지로 보내며 시계를 바꿔 찬 김구의 이야기를 미담처럼 소개하는 게 민망하지 않나요?"
급기야 이런 황당한 질문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무심히 듣고 있는 아이들의 고개를 주억거리게 만드는 이 이야기의 출처는 하나같이 유튜브다. 그가 말한 내용은 실제로 벌어진 사실이긴 하다. 그러나 그렇듯 피상적으로 해석하는 경우는 없다. 김원봉의 생애와 북으로 간 이유를 따져보지 않고, 김구와 한인애국단의 핏빛 역사를 몰라서 생기는 편견이다.
그나마 그릇된 편견이라도 있으니 다행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역사 공부가 제일 싫다는 몇몇 아이들은 "도시락 폭탄을 던진 사람이 안중근 아니냐"고 묻는다. 안중근과 윤봉길조차 혼동하는 거다. 그렇다고, 역사 교사라면 모를까, 기성세대가 바로잡아 주기도 힘들다. 그들 역시 학창 시절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사에 대해 배운 기억이 없어서다.
현대사 수업 때는 교과 진도를 나가기가 쉽지 않다. 유튜브를 통해 공부한 아이들의 잘못된 역사 지식을 바루는 일이 급선무여서다. 엊그제도 38도선 설정과 한반도 신탁통치를 소련이 처음 제안한 것 아니냐는 한 아이의 질문에 답하고 보충하느라 수업 시간을 까먹었다. 당시 신탁통치에 관한 희대의 오보를 낸 동아일보의 기사를 아직도 그대로 믿고 있었다.
6.25 전쟁과 전후 남북 독재 체제의 성립과 관련된 내용을 다룰 차례인데, 벌써 걱정이 앞선다. 또 어떤 어처구니없는 질문이 쏟아질지 모르겠다. 현대사에 '문맹'인 아이들이 '교실 극우화'를 추동하고 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독립운동사를 비롯한 현대사 교육을 강화하는 게 '교실 극우화'를 막는 가장 실효성 있는 대책이라는 확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