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
파머스 마켓에 가는 것은 미술관 가는 것 만큼 즐겁다. 파머스 마켓은 지역민에게 건강한 식재료를 공급할 뿐아니라 소규모 농장과 생산자들이 직접 소비자를 만날 수 있는 통로이자 지역을 활기 있게 하는 건강한 만남의 광장이다. 지역 농부와 홈메이드 먹거리, 수공예품을 만드는 장인을 만나 교류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이기도 하다.
라일리 공원의 파머스 마켓
캐나다 밴쿠버의 퀸 엘리자베스 공원과 지척에 있는 곳이 라일리 공원이다. 이곳에서는 5월 초부터 10월 말까지 여름 파머스 마켓이 열린다.
지난 8월 둘째주 토요일, 거치대에 자전거를 세우고 나는 우리에서 막 탈출한 호기심 많은 양처럼 마켓 곳곳을 뛰어다녔다. 텐트마다 계절의 향미가 가득했다. 어떤 부스는 커피향이 발길을 잡았고 어떤 곳은 진열된 과일이 캔버스 속 그림 같아서 다시 뒤돌아보게 했다. 잎채소들은 여전히 땅 속뿌리와 닿아 있는 듯 싱싱했다. 투박하지만 은근히 자상한 농부 텐트 주인의 태도에 나도 덩달아 더 관대해져야겠다는 결심을 하기도 한다.
파머스 마켓은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지역민이 구매해 지역 사회에 이윤을 환원하는 것은 물론 푸드 마일리지를 줄여 소비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 하는 큰 장점이 있다.

▲Riley Park Summer Farmers Market지역 농부들이 재배한 제철 농산물이 부스를 채운다. 품질을 보증하기 위해 엄격한 기준을 따른 심사를 받아야한다. ⓒ 이안수

▲Vancouver Farmers MarketsVancouver Farmers Markets은 1995년 NGO단체로 출범해 BC주 최대 규모의 파머스 마켓 네트워크로 성장했다. 도심 곳곳에서 여름 마켓과 겨울 마켓이 운영된다. 지역 경제를 지원하는 동시에 지속 가능한 농업을 장려하는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 이안수
라일리 공원의 파머스 마켓은 '밴쿠버 파머스 마켓(Vancouver Farmers Markets)'이라는 NGO 단체가 밴쿠버 7개 지역에서 그 지역 특성에 맞게 운영하는 곳 중의 하나다. 1995년부터 운영되어 35개 이상의 농장과 생산자, 푸드 트럭 및 커피 트럭이 참여하는 체계가 잘 잡힌 주말 장터였다.
참여 공급자(vendor)는 주최 단체에서 지역 농산물인지, 생산 과정과 제품은 모든 법적 기준에 적합한지, 공예품은 본인의 창의적인 디자인으로 직접 만든 것인지, 대량생산된 재고품은 아닌지 심의해 선발한다. 그래서 소비자는 믿고 구매할 수 있다.
도열한 텐트 끝으로 이어지는 '라일리 파크 커뮤니티 가든(Riley Park Community Garden)'의 텃밭으로 갔다. 원예, 조경, 예술, 토양 관련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을 가진 자원봉사자들이 모여 만든 작은 정원 같은 텃밭이었다. 함께 재배하고 가드닝을 배워 수확물을 이웃과 나눈다. 함께 재배에 참여한 사람들과 나누어 먹고, 먹는 음식에 대한 풍습을 이야기로 나눈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참여자는 생산에 참여해 제철 식품을 생산하는 법까지 배우는 것은 물론 커뮤니티 구성원들과 친교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으니 공원 귀퉁이 작은 텃밭 하나가 주는 유익함이 열 손가락으로 다 꼽을 수 없을 만큼 많다.

▲Riley Park Community Garden라일리 파크 커뮤니티 가든은 지역 주민이 함께 참여하는 공동체 텃밭 공간이다. ⓒ 이안수

▲Riley Park Community Garden의 휴게공간지역사회의 새로운 만남의 공간 필요성에서 가든이 시작되었다. 유아부터 노인까지 누구나 참여 가능한 접근성을 중시한다. ⓒ 이안수
파머스 마켓과 연계해 쇼핑객들은 돈과 농산물을 기부하고, 농부들은 마켓이 끝난 후 농산물을 기부할 수 있는 기부 스테이션을 운영한다. 신선한 농산물이 필요한 가정에 전달한다. 참여자들의 선한 의지와 창의성이 더해지면 이렇듯 이점은 더욱 확장된다. 모든 부스들과 커뮤니티 가든에 들여 사람들과 수다를 즐기고 오니 일행인 초이님과 아내가 빵과 음료를 사서 기다리고 있다.
"천연 발효종만을 사용해 구운 빵이에요. 상업용 이스트를 사용한 빵보다 풍미가 훨씬 좋습니다."
초이님은 이미 10년째 이 부스의 수제 호밀 사워도우 빵을 즐기고 있다고 했다.
장터의 시인
이 파머스 마켓의 매력 중 하나는 마켓 중앙의 큰 소나무 아래에서 진행되는 버스킹이다. 솔로 혹은 그룹의 다양한 재능을 가진 버스커들이 시간별로 공연을 이어간다. 파머스 마켓에서 찬란한 햇살을 즐기며 라이브 음악에 곁들여 건강한 빵으로 점심을 하는 것은 비할 바 없는 밴쿠버의 여름이 주는 호사다.
"탁탁 타닥타닥~"
음악 간주 사이 들려오는 이 둔탁한 소리가 궁금해 주위를 찬찬히 살폈다. 맞은편 적단풍 나무 옆에 앉은 청년이 내는 타자기 소리였다. 기계식 타자기가 내는 소리는 소음이 아니라 리듬 악기의 음악이었다. 테이블 앞에 "무료로 시를 지어드립니다"라는 안내문이 눈에 들어왔다. 그 음악은 시인이 시를 짓는 소리였다. 나도 그 시인 옆에 줄을 섰다.
관심 있는 주제를 물어 시인이 직관으로 시를 타자기로 작성해 주었다. 내 앞의 아기 엄마는 시를 받고 울음을 터뜨렸다. 시인은 타자기로 사람을 울리는 신묘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다. 타자기에 손을 내리고 물었다.

▲파머스 마켓에서의 버스킹(busking)다양한 거리 음악가들이 라이브 공연을 펼쳐 활기찬 분위기를 연출한다, 방문객들은 쇼핑하며 자연스럽게 음악을 즐긴다. ⓒ 이안수
"당신은 어떤 분이신가요?"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는 10년간의 나라 밖 생활을 위해 3년 전 한국을 떠나온 방랑자 부부입니다."
"와우, 당신의 방랑이 끝난 10년 뒤의 마음으로 가보겠습니다."
"처음엔
내가 어디에 닿을지 알지 못했어요
솔직히 말하면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도 막막했죠
하지만 이제 10년이 흐른 지금
시간은 당신을 닮아있고
저는 시작이든 끝이든 두렵지 않습니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을 때까지
당신은, 오직
나의 사람이에요
- Kacper"
이 시인이 즉석에서 지어준 시를 마치 7년 뒤의 내 마음인 양 아내에게 가져다 주었다.

▲시장의 시인파머스 마켓에서 방문자가 주는 주제로 즉석에서 시를 지어주고 있는 시인, kacper ⓒ 이안수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모티프원의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