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와 노동-시민사회의 연대 문화 확산을 위해 만들어진 솔라시 조직위원회는 202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구체적 현실 속에서 더 나은 내일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사례로 보는 대안 정책'을 연재합니다.
지난해 기상청에서 발행한 '2023년 이상기후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남부지방의 긴 가뭄 이후 곧바로 집중호우가 쏟아졌고, 3월부터 시작한 고온 현상이 9월까지 이어지는 이상기후에 시달렸다. 산불도 지난 10년 평균인 537건보다 59건 많은 596건이었고, 대형산불과 동시다발적인 산불도 큰 폭으로 늘고 있다. 올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거대한 위기의 작은 단편일 뿐이다.
기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각종 정책과 규제, 국제 협약이 추진되고 있지만, 속도와 성과는 모두 더디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다가 버린 생활폐기물 배출량은 2021년 하루 53만 4399톤으로 정점을 찍은 후 조금씩 낮아지고 있지만, 가장 최근 통계인 2023년 1인당 생활폐기물은 433kg을 기록했다. 여전히 코로나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조차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1인당 생활폐기물 발생량(Kg)출처 : 환경부, ‘전국 폐기물 발생 및 처리현황’, 통계청, 장래인구추계 ⓒ 손우정
생활폐기물을 줄이려면 값싼 일회용품을 한번 쓰고 싹 다 버리는 간편함과 결별해야 한다. 그러나 말처럼 쉽지는 않다. 게다가 자기 혼자만 일회용품을 안 쓰고 생활 쓰레기를 줄인다고 세상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일회용품의 자제는 물론이고 생활폐기물의 배출과 수거, 재활용의 순환 단계가 공동체의 연결망과 잘 결합해야 조금이라도 기후를 지킬 수 있다.
이미 자치단체에서 하고 있다고? 물론이다. 그러나 행정의 대규모 쓰레기 처리는 수거와 폐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자원화의 효율은 크게 떨어진다.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체계적인 분류가 이뤄지는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 단지는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혼합해서 수거한 후 다시 분류해야 하는 다세대주택 밀집 지역은 자원화가 매우 어렵다.
이런 지역의 생활폐기물은 우선 '제대로' 분류해 배출해야 하고, 작은 규모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귀찮음과 불편함을 이겨내도록 홍보와 설득도 필요하고, 행정의 손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에 대한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혼자서는 안 된다. 기후를 지키는 일에도 온 마을이 필요하다.
지구를 지키는 자원순환마을
자원순환마을은 지역 주민들의 공동체 활동으로 탄소중립을 실천하기 위한 사업이다. 물론 단일한 형태는 아니다.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를 활용하는 데 중점을 둔 마을도 있고, 프린터, 책, 냉장고, 자전거, 텀블러 등을 '공유'라는 가치로 함께 쓰면서 탄소배출을 줄이려는 시도도 있다. 생활폐기물 배출을 관리하고 쓰레기가 다시 자원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제로웨이스트 상점을 조직하기도 한다.
안산 자원순환마을은 수도권이지만 아파트가 한 동도 없는 다세대주택 밀집단지에 있다.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는 마을 카페를 거점으로 삼아, 자원순환 활동과 동네 네트워크를 집중시키는 전략을 택했다. 마을 카페에서는 분리배출 활동을 비롯해 폐기물을 재활용할 수 있는 공작 활동, 주민의 인식 전환을 가져올 수 있는 체험과 교육, 각종 주민 모임 등이 함께 어우러지고 있다.

▲마을카페 '마실'은 다세대가 밀집한 안산 지역의 분리 배출 거점이자, 다양한 동네 활동이 연결되는 곳이다. ⓒ 안산마을카페 마실
물론 이런 형태가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첫 시도는 단출했다. 2019년, 자원순환 마을만들기 공모사업에 참여해 주민 백여 명과 원탁회의도 열고 30명의 주민이 모여 실천단도 조직했다. 동네 조사와 간담회, 교육, 워크숍, 탐방 등을 진행하면서 자원순환의 기초를 쌓았다.
기후 위기를 지키자는 데 누구 하나 토를 달 수는 없다. 그러나 명분은 좋지만, 쓰레기를 되살리는 거점이라는 것이 막상 내 집 앞에 있으면, 그냥 더럽고 냄새나는 '혐오시설'이 되기 쉽다. 이런 주민들의 인식을 바꾸고, 시시각각 냄새 난다는 민원과 항의에 시달려야 하는 귀찮고 번거로운 일을 누가 떠맡을 것인가? 결국 이 일을 꾸준하게 추진할 주체도, 사업비도 불분명하니, 결국 일회성 사업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계기가 생겼다. 코로나 팬데믹이 전국을 강타했던 2020년, 동네 청년들이 카페 옆을 지나가면서 무심코 던진 "마을 카페에서도 플라스틱 쓰레기가 엄청 나오네?"라는 말이 쿵 하고 심장에 꽂혔다. 다시 자원순환마을에 대한 의지가 솟아올랐다. 2022년 자원순환 마을만들기 사업 공모에 다시 참여하고, 소소하게 주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준비했다. 제로웨이스트 상점을 만들고, 우유팩, 멸균팩, 건전지, 의약품, 커피박, 아이스팩 등 수거 활동을 좀 더 체계적으로 진행했다.
주민을 대상으로 자원순환 교육과 체험 프로그램, 자원순환의 의미와 필요성, 방법에 대해 교육할 수 있는 주민강사단 양성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그동안 그냥 버리거나 나눠줬던 커피 찌꺼기를 모아 화분을 만들었고, 빗물을 모아 카페 옥상의 도시 농업에 사용하고, 남는 것은 청소에 썼다. 옥상에서 키운 채소들은 맛집으로 소문난 마을 카페 브런치의 재료가 됐다.

▲커피 찌꺼기를 모아 화분을 만드는 등 분리배출 거점에서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 안산마을카페 마실
자원순환 활동이 계속되면서 주민들의 '관계'도 바뀌었다. 처음에는 더럽고 냄새나고 시끄럽다고 항의하던 이웃들이 조금씩 변했다. 지나다 주운 페트병을 가져오기 시작하다가, 슬쩍 나타나 분리배출 정리를 돕기도 했다. 시끄럽다고 항의하던 이웃들은, 이제 길 가다 페트병을 주워 오는 게 자연스러워지고, 인권영화제나 환경영화제도 함께 보고, 뒤풀이도 함께 하는 관계로 발전하고 있다. 자원이 순환되는 공간이 관계를 순환하는 공간으로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의미는 있지만, 실질적인 효과도 있을까? 안산 자원순환마을에서는 매년 투명 페트병을 약 15만 개, 우유팩과 멸균팩, 건전지는 400kg 정도를 수거한다. 또한, 세제를 소분해 사용하는 제로웨이스트 활동을 통해 약 2400개의 세제통을 쓰지 않는 효과를 보고 있다. 마을 카페 옥상에는 도시 농업 시설과 25kw의 햇빛발전 시설을 만들어 사용 중이다.
경기도에서만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간 10여 개의 자원순환마을을 통해 분리 배출된 플라스틱과 비닐은 모두 119톤에 달한다고 한다. 이는 222톤의 탄소를 감축하고, 소나무 9만 7220그루를 심는 효과와 맞먹는다.
자원순환마을, 계속할 수 있을까?

▲제로웨이스트 교육자원순환을 위해서는 시스템도 필요하지만 인식을 바꾸는 것이 우선이다. ⓒ 안산마을카페 마실
자원순환마을이 자리 잡는 과정은 멀리서 보면 아름답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시밭길이다.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에서는 관리소를 통해 분리배출이 비교적 체계적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다세대주택 밀집 지역은 분리배출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분리배출 거점을 만들면 '혐오시설'로 낙인찍히기 쉽다.
여전한 인식도 문제다. 아무리 신경 써서 분리 배출하더라도, 어차피 수거하면서 다 섞이고, 결국 다 태워버린다는 불신이 팽배하다. 근거가 없는 말은 아니다. 다세대주택에서 수거한 쓰레기는 일단 섞어서 수거한 후 다시 분류작업을 거치는데, 재활용 효율은 극히 낮다. 배출지에서부터 철저한 분리배출이 이뤄져야 재활용업체가 직접 수거해갈 수 있지만, 다세대 주택단지는 이 단계가 없어 쓰레기 처리 단계가 더 늘어나고, 그만큼의 처리 비용도 늘어난다.
그래서 자원순환마을은 주민 스스로 거점을 만들어 배출지에서부터 분리배출을 철저히 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나 주민들의 자발적인 의지에만 기대서는 이런 활동을 지속하기 어렵다. 마을공동체 공모사업과 같은 일회성 지원으로는 디딤돌은 놓을 수 있지만, 지원이 중단되면 어려움은 커진다. 이런 상황에서 통상 나오는 조언은 이 활동을 수익화해, 자력으로 지속할 방법을 찾아보라는 것이다. 가능할까?
"마을에서 공동체 활동을 하면서 공익적인 활동을 해보자고 자원순환마을을 시작했어요. 조금 성과가 있으니까, 지자체나 정부 기관, 연구소 같은 곳에서 와서는 수익성 있는 사업으로 연결해 지속가능성을 만들라고 조언해요. 그런데 투명 페트병은 고물상도 받지 않는데, 주민이 알아서 수익성 있는 사업을 만들어 이 활동을 계속하라고 하면, 이게 가능한가요? 지방자치단체도 분리 배출한 자원을 제대로 보상하지 않고, 수거하는 업체도 없는데 우리가 일하는 분들 인건비도 만들고, 수거 물품을 지자체에 헌납하는 방식으로 어떻게 지속할 수 있다는 거죠?"(안산 마을 카페 '마실' 정은철 대표)
안산 자원순환마을의 목표는 이 활동을 지속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자원순환 사업을 더 잘 진행해, 할 일이 없어지는 것이 목표다. 그런데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 등을 설립해 알아서 수익을 만들고, 자원순환 활동의 책임을 지라는 식의 조언이 곱게 들릴 리 없다.
탄소제로, 민과 관이 협력해야

▲주민과 함께 하는 자원순환 활동자원순환은 호의에만 기대서는 한계가 있다. 시스템과 적절한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 안산마을카페 마실
주민이 행정의 손길이 미처 닿지 않는 사각지대와 빈틈을 메웠다면, 행정이 그 틈을 다시 채우든지, 주민이 활동을 계속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더구나 탄소를 줄이기 위한 활동은 주민의 취미활동이 아니라 공동의 위기에 대응하는 공익적 활동이다. 따라서 주민과 행정의 역할과 범위를 나누고, 각자 알아서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공동의 해법을 찾는 것이 우선이다.
시급한 것은 시스템이다. 자원순환과 쓰레기 처리 방식이 전혀 고려되어 있지 않은 다세대 주택 밀집 지역에서도 아파트처럼 일정 구역마다 분리배출을 위한 거점을 만들고, 이를 관리할 인력을 배치해야 한다. 안산 자원순환마을 역시 주민이 스스로 이런 시스템을 만들어 나간 사례다.
그러나 언제까지 주민의 자발적인 활동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시니어클럽이나 공공근로, 희망 일자리와 같은 지역 일자리와 자원순환 활동을 연계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자원순환을 위한 거점이 자원순환마을처럼 동네 사랑방 기능을 하는 공간과 연계할 수 있으면 지역 공동체를 강화하는 효과도 생긴다.
또한, 더 많은 주민이 자원순환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도 필요하다. 안산시의 경우, 분리 배출한 자원을 종량제 봉투로 보상하고 있지만, 자원순환을 위한 활동과 수거한 자원을 공동체 가상 화폐로 적립해, 서로 거래하는 방안도 모색할 수 있다. 렛츠(LETS)나 타임뱅크(Time Bank) 등 지역 내 호혜 활동을 공동체 가상 화폐로 적립하고, 서로 교환하게 하여 공동체 활동을 활성화하려는 시도는 이미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적립한 공동체 가상화폐를 이미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지역화폐와 환전하게 해준다면,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
결국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자원순환마을의 가장 큰 성과라면, 분리 수거한 페트병의 규모가 아니라, 이 활동 과정에서 일어나는 주민의 인식변화, 그리고 그 변화가 가져오는 확장성과 가능성일 것이다. 그렇다면 행정 역시 인식을 좀 바꿔볼 수 있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마을정책 10년 임팩트 모델 현장 사례 보고서에 실린 글을 수정한 것입니다. 손우정 기자는 한국마을연합 부설 한국마을정책연구소 소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