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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라 수업에서는 흔히 닉네임이라고 하는 애칭(愛稱)으로 서로를 부른다.

'본래의 이름 외에 친근하고 다정하게 부를 때 쓰는 이름'이라는 사전적 의미처럼, 애칭으로 부르면 가깝게 느껴진다. 게다가 '언니' '선배' 등의 호칭이 빠지니 수평적 관계가 형성된다. 사적 관계뿐 아니라 공적 자리에서조차도 나이를 확인해야 마음이 편해지는 우리나라 특유의 서열 문화에서 벗어난다.

당신의 애칭은 무엇입니까?

 지인들이 내 애칭 '유월의 초록'이 떠올랐다며 선물해준 책과 문구류
지인들이 내 애칭 '유월의 초록'이 떠올랐다며 선물해준 책과 문구류 ⓒ 전윤정

애칭을 부를 때마다 어찌 그리 자신의 이미지에 잘 맞게 지었는지 감탄하곤 한다. '도토리'는 얼굴이 동글동글 귀엽고, '들꽃'은 여리여리하면서도 강단 있는 성격이 닮았다. 달을 의미하는 하와이어 '마히나', 생명력이 넘친다는 뜻의 터키어 '하야티', 스페인어로 보라색 제비꽃인 '비올레타', 낮 12시 정오를 뜻하는 태국어 '티양' 등의 애칭을 통해 다양한 외국어를 만난다. 산들, 구슬같이 애칭으로만 여겼는데, 본명도 같다고 해서 놀랄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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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월의 초록'이다. 10여 년 전, 그림 수업 강사였던 화가에게 "윤정 씨는 유월의 초록을 닮았어요"라는 말을 들었다. 연한 연두와 짙은 녹색 사이에 있는 푸르른 초록이 떠올라 기뻤다. 투명한 햇살에 비친 초록 잎처럼 맑은 마음으로 살고 싶은 소망을 담아 애칭으로 쓰고 있다.

그동안 나에게 6월은 특별하지 않았다. 장마가 들어 있는 습하고 꿉꿉한 달일 뿐이었다. 하지만 애칭으로 불리니 점점 좋아진다. 유월은 우리가 사는 북반구에서 낮이 제일 긴 시기이고, 1년의 반을 보내는 때이다. 한 번쯤 올해 상반기를 뒤돌아보고 남은 하반기에 힘내자고 스스로 응원해볼 수 있는 유월에 애정이 생긴다.

유월은 초록이 하루가 다르게 색을 더하는 시간이다. 미국 원주민은 부족마다 달을 다르게 지칭했는데, 테와 푸에블로족도 유월을 '나뭇잎이 짙어지는 달'이라고 불렀다. 체로키족의 유월은 '말없이 거미를 바라보게 되는 달'이다. 예전에 춘천 자연휴양림에서 집 짓는 거미가 신기해 한참 지켜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실을 자아 성실하게 무늬를 만들어가는 거미를 보면서 내 삶을 저렇게 간결하면서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개성과 취향을 한껏 드러내보자

6월이 되면 메신저로 나무 사진을 많이 받는다. 애칭으로 호칭하는 지인들이 초록 나뭇잎을 보니 생각났다며 보내준 사진이다. 물건에도 초록 지분이 많아진다. 초록색 펜, 초록색 수첩, 초록색 책갈피, '초록'이 제목에 들어간 시집 등등 초록을 보며 나는 떠올렸다며 받은 선물이다. 때로 지인들이 유머의 초록, 유쾌의 초록, 유려의 초록 등 내 애칭으로 의미를 더하기도 한다.

초록이 들어간 가장 널리 알려진 속담은 "초록은 동색(同色)" 아닐까 싶다. 풀과 녹색은 같은 빛깔이라는 뜻으로, 같은 처지나 같은 부류의 사람끼리 함께 함을 이르는 말이다. 비슷한 처지에 있어 마음이 잘 통하기도 하지만, 때때로 '끼리끼리'라는 부정적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하지만 산책하던 어느 날 문득 땅에 가장 가까운 풀과, 하늘과 가장 가까운 나뭇잎이 같은 색이라고 생각하니 뭉클했다. 낮은 곳에서 높은 곳까지 자연은 초록으로 평등하구나 싶었다.

본명은 잠시 미뤄두고, 나만의 애칭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애칭을 통해 나의 개성과 취향을 한껏 드러낼 수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추억을 꺼낼 수도 있다. 또 지금 내 상태를 담을 수도, 앞으로 되고 싶은 나를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 가지 도움말을 하자면 애칭은 길지 않아야 좋다. 두 글자나 세 글자가 부르기도 쉽고 기억하기도 좋다. 나만 하더라도 다들 줄여서 '유초'라고 부른다.

그동안 애칭을 대면 모임에서만 썼다. 낯선 사람들에겐 유난스러워 보일까 쑥스러워 쓰지 않았다. 이젠 익숙해져서 주문한 커피가 나왔을 때 애칭으로 불러주는 커피 전문점 앱에 애칭을 등록했다.

"유월의 초록님, 주문하신 카페라떼 나왔습니다."

커피를 가지러 가니 직원이 웃으며 말했다.

"닉네임이 시(詩)적이네요!"

그날의 커피가 유난히 맛있었다.

#닉네임#유월의초록#유월#초록#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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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훌라 업고 튀어


호기심으로 세상의 나뭇가지를 물어와 글쓰기로 중년의 빈 둥지를 채워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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