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보더링랩(Trans-border-ing Lab)은 난민/미등록이주민 지원과 이주구금 관련 법정 투쟁의 과정을 거치면서, 관련 내용에 대해 함께 공부하고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장(場)을 마련하면 좋겠다는 바램으로 올해 초에 만들어진 자그마한 연구/활동모임입니다. 국경과 종(種)을 넘은 몸들이 통제와 구금, 박탈과 추방의 위험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현실에 주목하고, 난민과 비인간존재의 안전하지 않음이 ‘국민’과 ‘인간’인 ‘우리’의 ‘안전’을 위한 것으로 정당화되어 온 담론에 문제를 제기하며 실천적인 앎을 모색하는 것을 활동의 비전으로 삼고 있습니다. 5화에 걸친 이번 연속 기고는 2025년 4월 30일, 베트남전쟁 종전50년을 맞아 호치민 시의 여러 곳을 답사하며 기록한 공동의 결과물입니다. 베트남전쟁이 지금-여기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함께 질문을 만들어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50주년 통일절을 기념하는 호치민 시의 광고판2025년 4월 30일 호치민 시 ⓒ 박상환
지난 4월 말 베트남의 경제 수도라 불리는 호치민 시를 방문했다. 올해는1975년 4월 30일 북베트남군이 사이공(현재 호치민)에 입성하며 전쟁이 끝난 지 정확히 50년이 되는 해다. 호치민 거리 곳곳에서는 과거의 역사적 비극을 되새기는 비장함이 아닌, 정쟁에 이기고 하나의 국가가 되었다는 승리와 통일에 대한 자부심을 품은 활기가 넘쳐 나고 있었다.
호치민 시는 온통 축제 분위기였다. 대로변에는 '통일 50주년(Kỷ niệm 50 năm Thống nhất)'을 축하하는 대형 광고판이 걸려 있었고, 붉은 국기와 노란 별이 새겨진 수많은 깃발들이 뜨거운 바람에 나부꼈다. '50'이라는 숫자와 '4월 30일'이라는 날짜는 베트남어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현재 이곳이 무엇을 기념하고 있는지 명확하게 보여줬다.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과 거리의 오토바이 엔진 소리는 하나의 거대한 서사시처럼 다가왔다.
통일절 당일 아침, 거리는 온통 축제를 즐기려는 인파로 발 디딜 틈도 없이 빼곡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퍼레이드를 보기 위해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밤을 샜다. 약속이라도 한 듯 붉은 티셔츠에 노란 별이 새겨진 옷을 입은 사람들이 대형 스크린 앞에 모여 호치민 시내 중심부에서 진행되는 기념식을 지켜봤다. 군악대 행진과 역대 전승 기념일 영상이 나올 때마다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들은 과거의 영광을 기억하며 현재의 번영을 축하하고 있었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단연코 호치민 시 도심의 푸른 하늘을 가르는 전투기 비행이었다. 편대를 이룬 전투기들은 굉음을 내며 압도적인 장관을 연출했다.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이는 단순한 에어쇼가 아닌 것처럼 보였다. 50년 전 전쟁의 공포를 극복하고 이제는 승리와 평화를 희망하는 상징을 하늘에 새겨 넣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일제히 하늘을 올려다보며 박수를 치고 환호했다. 그 순간, 모두가 한마음으로 이 역사적인 순간을 기념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 순간, 하나의 의문이 뇌리를 스쳤다. "이 순간, 이 곳에서, 거리로 쉽게 나오지 못한, 혹은 나올 수 없는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호치민시 도심 위를 비행하는 전투기 편대2025년 4월 30일 50주년 통일절 당일 ⓒ 박상환
기록의 권력이 소수에서 다수에게로
수십 년 전, 전쟁 기록은 소수의 사진 기자나 종군 작가들의 몫이었다. 그들의 카메라는 전쟁의 참혹함을 알리거나 체제 선전의 수단으로 활용됐다. 그 목적과 쓰임이 무엇이었든 기록의 행위는 소수의 특권이었고, 그 의도는 제각각 명확했다.
하지만 2025년 통일절의 풍경은 완전히 달랐다. 전투기가 하늘을 가르는 순간, 거리를 가득 메운 수많은 사람들의 손에 들린 스마트폰이 일제히 하늘을 향했다. 그들의 손가락은 연신 셔터와 녹화 버튼을 눌렀고, 감동과 환희는 실시간으로 SNS를 통해 공유되고 전파되었다. 예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풍경이다.
과거에는 기록이 소수에 의해 통제되고 편집된 뒤 아래로 확산되는 형국이었다면, 현재의 기록은 모두가 손쉽게 생산하고 공유하는, 실시간으로 사방으로 퍼지는 거대한 흐름이 되었다. 다채로운 각도에서 담아낸 사진과 영상, 짧은 코멘트와 해시태그가 디지털 공간을 가득 채웠다. 전투기 비행은 물론, 밤하늘을 수놓은 불꽃놀이의 순간도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퍼졌다. 마치 거대한 집단 기억이 형성되는 과정 같았다.
50년이라는 시간의 간극은 단순히 한 세대가 지난 것 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전쟁의 상흔이 희미해지는 시간이자, 역사를 바라보고 기록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변화한 시대의 도래를 의미한다. 소수의 카메라가 남긴 흑백(혹은 칼라) 사진이 전쟁의 상징이었다면, 이제는 수많은 스마트폰이 담아낸 화려하고 생생한 축제 영상이 이 시대의 기록이 된 것이다. 베트남 통일 50주년은 기술이 우리의 기억과 경험을 어떻게 재구성하고 확장하는 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안겨주었다.

▲50주년 통일절을 즐기기 위해 거리로 나온 사람들전투기의 비행을 촬영하기 위해 모두가 하늘을 보며 스마트폰을 들고 있다 ⓒ 박상환
승리의 서사 뒤에 숨겨진 목소리
전쟁의 기록과 축제의 공유, 이 극적인 대비 속에서 베트남의 '현재'를 본다. 그러나 동시에, 이방인의 시선으로 던지는 질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베트남전쟁은 외세에 맞선 반제국주의적이며 민족주의적인 독립 전쟁으로 승화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한 폭력과 희생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50년이라는 시간 동안 누적된 그 아픔은 충분히 치유되었을까?
화려한 축제와 '더 강하고 더 잘사는 나라'를 향한 열망으로 가득 찬 50주년 통일절의 풍경은, 어쩌면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과거의 기억을 덮으려는 시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축제의 환희 뒤에 숨겨진 개인의 아픔과 전쟁의 폭력성에 대한 성찰은 경제적으로 빠른 성장을 이뤄낸 국가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방해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나라의 온전한 역사는 승리의 기록만으로 완성될 수 없다.
사진가로서 이 빛나는 축제의 이면에 존재하는 그림자를 기록하고 싶었다. 50년 전 남베트남 정부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재산을 몰수 당하고 수용소에 갇혀 재교육을 받으며 목소리를 제거당해야만 했던 사람들은 이 축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전쟁에서 패배한 남주 사람들에게 통일절은 축제의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전쟁이 끝나고 뿔뿔이 흩어져 먼 나라에서 디아스포라로 살아가는 남부 출신의 베트남 사람들과 그 후손들에게 이 날은 어떤 의미일까?
모두가 환호하는 승리의 서사 속에서, 여전히 아픔을 말할 수 없는 '사라진 존재들'의 목소리는 어디로 갔을까? 넘쳐나는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드러낼 수 없는, 삭제된 존재들에 대한 고민을 놓지 않아야 한다고 다짐했다. 누군가에겐 승리의 기쁨인 순간조차 다른 누구에겐 침묵하거나 삭제 당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라는 것을 함께 포착하는 것이 관찰자이자 기록하는 이의 의무가 아닐까.
덧붙이는 글 | 트랜스보더링랩(Trans-border-ing Lab)은 난민/미등록이주민 지원과 이주구금 관련 법정 투쟁의 과정을 거치면서, 관련 내용에 대해 함께 공부하고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장(場)을 마련하면 좋겠다는 바램으로 올해 초에 만들어진 자그마한 연구/활동모임입니다. 국경과 종(種)을 넘은 몸들이 통제와 구금, 박탈과 추방의 위험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현실에 주목하고, 난민과 비인간존재의 안전하지 않음이 ‘국민’과 ‘인간’인 ‘우리’의 ‘안전’을 위한 것으로 정당화되어 온 담론에 문제를 제기하며 실천적인 앎을 모색하는 것을 활동의 비전으로 삼고 있습니다. 5화에 걸친 이번 연속 기고는 2025년 4월 30일, 베트남전쟁 종전50년을 맞아 호치민 시의 여러 곳을 답사하며 기록한 공동의 결과물입니다. 베트남전쟁이 지금-여기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함께 질문을 만들어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