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회견을 마치고 구호를 외치는 참가자들 ⓒ 옥효정
생존자 중 세계 최장기 비전향 장기수인 안학섭(96세) 선생의 송환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28일 오전 11시 인천시청 앞에서 열렸다. 기자회견을 주관한 인천자주평화연대는 안학섭 선생 송환을 위한 온라인 서명운동을 통하여 인천시민 140여 명의 참여 의사를 수렴하고 나서 기자회견을 연다고 밝혔다.
발언자로 나선 정세일 만오홍진선생기념사업회 상임대표는 "인도주의적 입장에서만 보더라도 안학섭 선생이 원하는 곳으로 가게 해 드리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면서 "인간이 만든 법, 규제, 체제로 사람을 구속하는 것이 맞는지 다함께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어서 "내가 묻히고 싶은 곳으로 가고 싶다는 한 사람의 절절한 소망을 들어 주지 못하는 사회라면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용혜랑 진보당인천시당위원장은 "제네바협약과 국제인권규범에 따르면, 전시 포로는 본국으로 돌아갈 권리가 있다"며 "송환을 바라는 생존 비전향장기수가 안학섭 선생을 포함해 여섯 분"이라고 했다. 이어 "분단과 전쟁의 상처이자 냉전의 산물인 비전향 장기수들의 고통은 전쟁의 참상을 겪은 온 겨레의 아픔이기도 하다"면서 "정부가 온 겨레의 아픔을 치유하고 인도주의 실현에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기자회견 주관 단체인 인천자주평화연대 이성재 상임대표는 안학섭 선생의 고향이 인천 강화도 하점면임을 밝히면서 "안학섭 선생님의 고향인 인천에서도 선생의 송환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있음을 알리고자 서명운동을 시작했다"고 기자회견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육신의 고향은 인천이지만 정신과 사상의 고향은 북녘인 만큼 그토록 돌아가고 싶어하는 곳으로 보내 드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학섭선생송환추진단 공동단장을 맡고 있는 이적 목사는 "인천 지역에서 안학섭 선생의 송환을 위해 힘을 보태 주신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한다면서 "안학섭 선생을 10년 정도 모시면서 외세를 배격하고 자주 조국을 위해 투쟁하고자 하는 그분의 철학과 굳은 의지를 알게 됐다"고 소개했다. 이어 "폐부종으로 건강이 악화된 가운데 최근 의식을 잃고 응급실로 이송되고 나서 송환을 원하시느냐고 조심스럽게 여쭈었더니 '이제는 내가 할 일을 다한 것 같다'며 고개를 끄덕이셨다"면서 송환운동이 시작된 계기를 밝혔다.
참가자들은 '안학섭 선생 송환을 위한 인천시민 서명운동 참여자 일동' 이름으로 발표한 기자회견문을 통해 "한국전쟁 중 남측으로 내려와 체포된 전쟁포로 안학섭 선생이 정전협정과 제네바협정에 따라 송환돼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송환되지 못한 채 43년의 옥고를 치른 것은 명백히 국제인도법과 유엔인권협약, 제네바협정을 위반한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수많은 회유와 고문, 전향 강요에도 끝내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은 그는 생존하는 세계 최장기 비전향장기수로서 한국 사회 인권의 민낯을 보여주는 산 증언자"라면서 "생의 끝자락에서 정신적 조국이라 여기는 북녘 땅에 돌아가고 싶다는 그의 간절한 바람은 국가안보의 문제가 아니라 인도주의의 문제이며, 인간 존엄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또한 "정부가 이번만큼은 정치적 계산을 내려놓고, 인간의 존엄과 국제법의 원칙에 입각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하면서 "이는 남북 간의 단절된 채널을 다시 열 수 있는 실마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기자회견문 전문이다.

▲발언하는 용혜랑 진보당인천시당위원장 ⓒ 옥효정
생존 세계 최장기수 안학섭 선생을 송환합시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한 사람의 마지막 소원 앞에 서 있습니다. 96세의 통일운동가 안학섭 선생이 폐부종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했다가 다행히 회복되어 잠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이제는 조국으로 돌아가 뼈를 묻고 싶다"라며 마지막 희망을 밝히고 있습니다.
안학섭 선생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간첩'이 아닙니다. 그는 1953년 4월, 한국전쟁 중 남측으로 내려와 체포된 전쟁포로입니다. 정전협정과 제네바협정에 따라 전쟁포로는 전쟁이 끝난 뒤 본인의 의사에 따라 송환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송환되지 못한 채 간첩 혐의로 43년의 옥고를 치렀습니다. 이는 명백히 국제인도법과 유엔인권협약, 제네바협정을 위반한 처사입니다.
그의 삶은 개인의 희생이 아닌, 분단과 냉전, 그리고 국가폭력의 긴 터널을 고스란히 증명합니다. 수많은 회유와 고문, 전향 강요에도 끝내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은 그는 생존하는 세계 최장기 비전향장기수로서 한국 사회 인권의 민낯을 보여주는 산 증언자입니다. 그가 이제 마지막 소원을 밝히고 있습니다.
25년 전(2000년 9월)에 있었던 비전향장기수 1차 송환 때 63명이 북으로 돌아갔으나 안학섭 선생은 분단 극복을 위해 작은 힘이라도 보태겠다는 신념으로 남녘에 남기를 선택했고, 그 후 자주를 위해 싸우는 후배 동지들과 함께 활동해 왔습니다.
생의 끝자락에서 정신적 조국이라 여기는 북녘 땅에 돌아가고 싶다는 그의 간절한 바람은 국가안보의 문제가 아니라 인도주의의 문제이며, 인간 존엄의 문제입니다. 구순이 넘은 고령의 인물이 대한민국에 위협이 된다는 주장 또한 어불성설입니다. 그의 송환은 정치적 판단이 아니라 국가가 마땅히 이행해야 할 도덕적 책임이며 인도적 조치입니다.
안선생은 송환요구가 그냥 하는 얘기가 아니라 생의 끝자리에 선 한 인간의 절박한 요구라는 점을 보여 주었습니다. 아직 온전치 않은 몸으로 지난 8월 20일에는 걸어서 임진강역에서 통일대교 남단 검문소까지 접근했습니다만 사전 허가가 없다는 이유로 군 당국의 제지로 막혔고, 건강이 악화되어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러한 그의 절박한 귀향요구에 대해 국민주권정부 통일부가 긍정적으로 호응해 오고 있는 점입니다. BBC 등 외신들도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송환이 단지 한 개인의 생을 위한 호소에 그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남북관계는 윤석열 정권 하에서 철저한 대결구도와 '주적 프레임' 속에 적대적 단절 국면으로 고착되었습니다. 군사적 충돌 위험과 상호 불신은 최고조에 달했고, 모든 소통의 통로는 막혀 있습니다. 이재명 정부는 남북관계 복원을 위해 돌파구를 마련해야 할 역사적 책무를 안고 있습니다. 그 돌파구가 바로 '안학섭 송환'이라는 인도주의적 조치에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
정부가 이번만큼은 정치적 계산을 내려놓고, 인간의 존엄과 국제법의 원칙에 입각한 결정을 내린다면, 이는 남북 간의 단절된 채널을 다시 열 수 있는 실마리가 될 것입니다. 송환은 전쟁을 치른 두 체제가, 늙고 병든 전쟁포로의 마지막 염원 앞에서 인간의 얼굴로 다시 마주하는 상징적 사건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평화도시 인천'의 이름으로 안학섭 선생의 송환을 촉구하며 나아가 정부는 차제에 지난 1차 송환에서 누락되었지만 다시금 송환을 요구하는 다른 장기수선생들까지 일괄 송환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것을 촉구합니다. 이제 인천지역 시민사회, 종교계, 노동계, 청년과 시민이 함께 서명으로 뜻을 모으고, 기자회견을 통해 대한민국 정부와 국제사회에 이 목소리를 전달하고자 합니다.
살아서 송환되지 못한 장기수들이 지켜보던 그 북녘 땅. 그 땅으로 한 사람의 삶이 마지막 걸음을 디딜 수 있도록, 이제 우리가 그 길을 열어야 할 시간입니다. 안학섭 선생의 삶과 신념 앞에, 우리는 함께 외칩니다.
"이제, 안학섭 선생을 조국으로 돌려보냅시다."
2025년 8월 28일
안학섭 선생 송환을 위한 인천시민 서명운동 참여자 일동

▲발언하는 이성재 인천자주평화연대 상임대표 ⓒ 옥효정

▲안학섭 선생 송환 추진 배경을 설명하는 이적 목사 ⓒ 옥효정

▲발언하는 정세일 만오홍진선생기념사업회 상임대표 ⓒ 옥효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