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에 따르면, 2025년 8월 현재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유공자로 서훈을 받은 분은 총 1만 8569명이다. 그중 여성은 664명으로 전체의 3.6%를 차지한다. 이는 10년 전 여성 독립유공자의 비율 1.78%(1만 3930명 중 248명)에 비해 2배 정도 늘어난 수치인데, 알려지지 않은 여성 독립운동가의 발굴과 서훈 확대를 위해 꾸준히 노력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여성 독립운동가 발굴 확대가 절실히 요구되는 현실 속에서, 일제강점기 서슬 퍼런 시기에 여학생들이 항일 비밀결사대를 조직해 독립운동을 벌였다는 사실을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 중·고등학생은 물론이고 사학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조차도 대한애국부인회는 알아도 송죽비밀결사대는 잘 모르고, 유관순 열사는 알아도 그녀의 오빠인 유우석과 결혼한 독립운동가 조화벽을 아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호수돈 비밀결사대 기념비대전광역시 중구 선화동 호수돈여고 교정에 '호수돈 비밀결사대 3.1 운동 기념비'가 세워졌다. ⓒ 신정섭
평양 숭의여학교를 중심으로 1913년 조직되었던 '송죽비밀결사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호수돈 비밀결사대' 기념행사가 28일 오전 대전에서 열렸다. 호수돈여고 교정에서 개최된 '3.8민주의거 및 3.1운동 호수돈 비밀결사대 기념비 제막식'에는 설동호 대전교육감, 서승일 대전지방보훈청장, 이양희 3.8민주의거기념사업회장 등 내빈들이 참석했다.

▲비밀결사대 기념비 제막식왼쪽부터 호수돈총동창회 임원 세 분, 서승일 대전지방보훈청장, 설동호 대전교육감, 김종태 호수돈학원 이사장, 김경미 호수돈여고 교장, 복진영 학교운영위원회 위원장, 한보미 호수돈여고 총학생회장 ⓒ 신정섭
1919년 당시 개성에서 비밀결사대를 만든 호수돈여학교는 6·25 한국전쟁 때인 1953년 대전에 내려와 호수돈여자중·고등학교로 다시 문을 열었다(이듬해인 1954년 중·고로 분리). 이날 행사에 호수돈여고 1·2학년 재학생들이 참석했고, 한보미 총학생회장이 비밀결사대 기념비 비문을 낭독하여 더욱 뜻이 깊었다.

▲비문 낭독하는 총학생회장기념비 제막에 앞서, 한보미 호수돈여고 총학생회장이 호수돈 비밀결사대 기념비 비문을 낭독하고 있다. ⓒ 신정섭
총학생회장 한보미 학생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제 또래 선배님들이 일제강점기에 목숨을 걸고 항일 비밀결사대를 조직했다는 사실을 접하고 깜짝 놀랐어요. 저 같으면 그렇게 못했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선배들의 숭고한 뜻을 이어받아 나라의 발전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어요"라고 덧붙였다.
민족대표 33인을 중심으로 1919년 3월 1일 독립 만세운동이 비밀리에 준비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호수돈여학교 학생들은 권애라, 장정심, 조숙경, 이향화, 권명범, 이영지, 류정희, 조화벽, 김정숙 등이 주도하여 비밀결사대를 조직했다. 기숙생 70~80여 명이 연명 선서를 만들고, 극비리에 커튼으로 태극기를 제작하기도 하였다.
당시 비밀결사대 학생들은 3월 3일 개성에서 독립 만세운동을 일으켰다. 학생들이 포문을 열자 개성 시민 1만여 명이 동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경찰은 만세운동을 벌인 학생들을 무차별 연행하였는데, 당시 와그너 교장이 "책임은 나에게 있으니 나를 구속하고 학생들은 모두 돌려보내 달라"라고 말했다는 사실은 2019년 KBS가 방송한 특별기획 다큐멘터리 <나의 독립 영웅>에 소개되기도 했다.
호수돈 비밀결사대는 만세운동의 기폭제
호수돈 비밀결사대는 강원도 최대 민족운동인 양양 만세운동을 비롯하여 황해도, 평안도 일대의 만세운동으로 확산하는 기폭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리박스쿨이 학교 현장에 침투하고 날이 갈수록 청소년들이 극우 이념에 물들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현실에서, 항일 독립운동의 초석이 된 여고생 비밀결사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편, 이날 행사에서는 '3.8민주의거 기념비' 제막식도 같이 치러졌다. 1960년 3월 8일 대전고, 대전상고(현 우송고), 호수돈여고 등 지역 고등학생들 1천여 명이 거리로 나와 자유당 독재 타도를 부르짖었고, 이 흐름이 3·15마산의거와 4·19혁명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