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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8.28 10:41최종 업데이트 25.08.28 10:41

소원을 이뤘습니다, '활세권'에 삽니다

[활 배웁니다 26] 마지막회, 활쏘기는 나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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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린 시절 사극을 보며 품었던 활쏘기에 대한 로망을 30대가 되어 이뤘습니다. 대학원생으로 살면서 활쏘기를 통해 많은 위로와 용기를 얻었습니다. 보다 많은 분들이 활쏘기의 매력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으로, 활을 배우며 얻은 소중한 경험들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지난 2024년 1월부터 연재해온 <활 배웁니다>. 이제 긴 여정의 끝을 맺을 때가 온 것 같다. 어떤 이야기로 끝을 맺어야할지 고민하다 보니, 이전 연재기사로부터 벌써 4개월이란 시간이 흘렀다. 고민 끝에 마지막 이야기는 활쏘기에 대한 나의 연서(戀書)로 갈무리하려 한다.

활터 근처에 사는 사람이 부러웠던 이유

한창 활쏘기(국궁)를 배울 무렵, 일주일에 3~4일 이상은 꾸준히 활터에 나갔던 것 같다. 당시 나는 석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을 쓰고 있을 때라, 작업 시간을 제외하고는 비교적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 한창 일하고 있어야 할 젊은 녀석이 매일 같이 활터에 출석 도장을 찍고 있으니, 사정을 잘 모르는 어르신들은 마주칠 때마다 "직업이 뭐냐"고 묻기 일쑤였다.

활터에 자주 오다 보니 과녁에 적중하는 빈도가 늘고, 점점 더 재미가 붙기 시작했다. 집에 있으면 항상 손이 근질근질했다. 마음 같아선 매일 활터에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논문을 써야 하는 학생이 매일 활터에 간다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고, 한창 일하고 공부해야 할 나이에 활터에 눌러 앉아있는 것도 남들 보기에 민망할 듯하여 주 3일 정도의 습사를 유지했다.

 전통 각궁을 당기는 기자의 모습 (서울 공항정)
전통 각궁을 당기는 기자의 모습 (서울 공항정) ⓒ 김경준

어쩌면 그때가 제일 행복했던 시절이 아니었을까. 졸업 후 박사 과정에 진학하게 되면서 활터 출석이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써도 써도 끝이 없는 '발제지옥'의 늪에 빠지게 되면서, 어찌 보면 직장인들보다도 활터에 한 번 올라오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공부하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활터에 나오는 횟수가 줄어드니 친한 접장님 한 분은 "활터에 와서 공부하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그게 말처럼 쉽나. 막상 시도해보니 활 쏘는 데 정신이 팔려 책 한 줄 읽기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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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가깝기라도 하면. 지금 내가 소속된 공항정(空港亭) 활터도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지만, 편도 1시간 가까이 소요된다. 가는 과정도 꽤 복잡하다. 버스 두 번, 지하철 한 번을 타야 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니 출·퇴근시간에는 활터에 갈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그러니 오며 가며 버리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활터 한 번 가는 게 부담이었다.

그렇게 좋아하던 활쏘기를 자주 못하니 어느 날은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활터에 자주 못 가는 만큼, 한창 상승세를 타던 시수도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좀 더 많은 시간이 허락됐다면 더 가열차게 습사를 즐길 수 있었을 텐데. 마냥 한가하게 활만 쏘고 있을 처지가 못 되니 아쉽고 답답할 따름이었다.

그래서 나는 활터 근처에 거주하는, '활세권'에 사는 사람들이 제일 부러웠다. 가끔은 집 뒷산을 보며 '이곳에 활터가 있었더라면' 하는 쓰잘데기 없는 상상도 해보곤 했다. 그랬다면 정말 '밥 먹듯이' 활터에 출석 도장을 찍지 않았을까. 아침에 일어나서 간단하게 습사를 즐기고 내려와 일과를 보내고, 다시 저녁에 올라와 마무리 습사를 하는 일상을 1년 365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생각만 해도 행복한 일상이 아니던가.

이런 상상을 하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다니는 활터 근처의 원룸 시세를 알아보고 있었다. 아, 나도 어지간히 미친놈이지 싶었다. 그야말로 활친자(활에 미친 자)가 아닌가. 접장님 한 분께 "매일 활 쏘고 싶어서 활터에 텐트 치고 살까도 고민해 봤다"고 했더니 정말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게 아닌가.

살면서 이렇게까지 중독에 가까울 정도로 미쳐있었던 일이 얼마나 될까. 한때 중국무협영화에 빠져 오랜 시간 중국무술에도 심취했지만, 활쏘기만큼 질리지 않는 운동은 처음이다. 내게 있어 활쏘기는 그야말로 마약 같은 존재다. 145m 너머 과녁으로 화살을 날려 보낼 때의 시원함, 마침내 과녁에 맞을 때의 쾌감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른다.

한편으로 난 참 행복한 사람이란 생각도 든다. 죽을 때까지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던데. 이렇게 무언가에 미쳐있다는 게 행복한 일 아닐까. 적어도 나는 활쏘기가 있어 인생이 우울하거나 지루할 새가 없으니까. 활을 오래 오래 쏘고 싶어서라도 건강하게 장수하고 싶다.

 화살이 발시된 직후 날아가는 모습 (천안 천안정)
화살이 발시된 직후 날아가는 모습 (천안 천안정) ⓒ 김경준

마침내 이룬 '활친자의 꿈'

언젠가 졸업하고 취직을 하게 되면 활터 근처에 직장을 잡고 싶다는 바람도 품어봤다. 이런 간절한 마음을 하늘도 알아준 걸까. 꿈은 생각보다 빠르게 이뤄졌다. 얼마 전, 충남 천안의 한 활터(천안정)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위치한 공공기관에 연구원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더군다나 직원 숙소도 그곳에 함께 있어, 활터 근처에 살고 싶다는 꿈을 드디어 이뤘다. 말그대로 '꿈의 직장'에 들어간 셈이다.

입사 직후 활과 화살통을 메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활터를 찾았다. 천안정(天安亭)은 이름 그대로 맑은 구름과 탁 트인 풍경이 인상적인 곳이었다. "근처에서 근무를 하게 되어 앞으로 자주 오고 싶다" 하니 천안정 사원들은 언제든 편하게 와서 활을 쏘고 가라며 배려해줬다. 심지어 활과 화살을 보관할 수 있는 공간까지 따로 내어줬다.

그렇게 사원들과 어울려 첫 순을 냈다. 이곳은 쏘는 족족 맞히는 고수들이 득실득실한 곳이었다. 세상은 넓고 활 앞에서는 언제나 겸손해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이곳에서 또 한 번 나의 활 공부가 시작될 것임을 직감했다. 그리고 활로써 맺어진 새로운 벗들과의 인연이 시작될 것이라는 사실도.

 천안정 활터 풍경
천안정 활터 풍경 ⓒ 김경준

막상 취직하니 생각했던 것처럼 실컷 활을 쏘지는 못하고 있다. 그래도 활터 근처에서 산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활터에 갈 수 있으니 말이다. 평일엔 천안에서, 주말엔 서울에서. 대학원생 시절보다 오히려 활을 자주 낼 수 있게 된 것도 사실이다. 어쨌든 활친자의 꿈을 이뤘으니, 역시 나는 행복한 사람이 맞다.

그리고 나는 벌써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바로 사내 국궁 동호회를 만드는 것이다. 이 또한 불가능한 꿈은 아닐 거라 믿는다. 역시나 나는 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인가보다.

[연재를 마치며]

<활 배웁니다>의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부족한 연재에 많은 관심과 애정을 보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제 연재를 통해 한 분이라도 우리 전통활쏘기에 관심을 갖게 됐다면 보람을 느낄 듯합니다.

그리고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얼마 전 산지니 출판사로부터 <활 배웁니다>를 책으로 출간하고 싶다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하여 그동안의 연재분에 더하여 미처 풀어내지 못한 이야기들을 추가로 묶어 <살짜쿵 활쏘기>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독자 여러분을 다시 만날 예정입니다. 고맙습니다. 저 날아가는 화살처럼 여러분의 삶도 힘차게 비상하기를 기원하며.

#활배웁니다#살짜쿵활쏘기#국궁#공항정#천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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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준 (kia0917) 내방

한양대 사학과 박사과정(한국사전공) 수료 / 서울강서구궁도협회 공항정(空港亭) 홍보이사 / 형의권(形意拳) 수련자 / <어느 대학생의 일본 내 독립운동사적지 탐방기>, <다시 걷는 임정로드>, <무강 문일민 평전>, <활 배웁니다> 등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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