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구가 녹고 있지만 초콜릿은 사라지지 않는다초콜릿의 쌉싸름한 맛을 더 이상 먹기 힘들다면 어떨까. ⓒ unsplash
초콜릿 하나를 10만 원에 사 먹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초콜릿의 원료가 되는 카카오의 최대 생산지 서아프리카 지역이 기후변화 영향으로 생산 기반 자체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서아프리카에 있는 '코트디부아르'와 '가나'는 카카오 생산의 70%를 책임지는 최대 생산국이다. 이들 지역에는 이상고온과 극심한 폭우가 반복되면서 흑점병과 같은 곰팡이 병충해가 창궐해 카카오 농장들이 황폐해지고 있다. 카카오나무는 기온이 32℃를 넘으면 원활한 성장이 어렵다. 실제로 기후변화 단체 클라이밋센트럴(climate central)에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서아프리카 지역의 3분의 2에서 적어도 42일 이상 기온이 32℃를 넘었으며, 이에 따라 카카오 열매가 익기도 전에 말라죽거나 병들어 수확량이 크게 줄었다.
기후 위기에 따라 수확량의 급변은 산업 전반의 경제 상황에도 영향을 준다. 카카오를 수입하는 국가들은 원자재 수급에 어려움을 겪어 무역 불균형이 커지고, 전체 초콜릿 공급망이 불안정해지면서 미래 생산 계획을 예측하기 어렵게 만들어 산업 전반의 불확실성이 높아진다. 이러한 변동성은 국제 코코아 선물 시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미국 코코아 선물2024년 8월부터 2025년 8월까지 1년 단위 변동 그래프 ⓒ investing.com
선물 거래란, 미래의 특정 시점에 상품을 미리 정해진 가격으로 사고팔기로 약속하는 거래를 말한다. 카카오는 수급이 중요한 곡물 원자재로, 농부와 초콜릿 제조업체는 가격 변동 위험을 줄이기 위해 선물 계약을 활용한다. 카카오 생산에 차질이 생기면 미래에 공급이 부족해질 것이라는 예상 때문에 선물 가격이 급등한다. 실제로 2024년 12월 톤당 1만 2565달러(약 1752만 원)로 1년 전과 비교하여 4배 폭등하기도 했다. 코코아 선물은 생산 상황에 따라 변동하는 경제 지표가 되는 것이다.
이렇듯 기후 위기에 카카오 수급이 불안한 상황에서, 과학계와 산업계는 지금처럼 누구나 초콜릿을 먹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연구 중이다. 바로 '미생물 발효 공정 표준화'와 '카카오 세포 배양 기술'이 그 연구 내용이다.
초콜릿도 발효 식품?
초콜릿의 맛은 그동안 예측 불가능한 자연 발효에 크게 의존해 왔다. 카카오 열매에서 꺼낸 직후, 씨앗(카카오 빈) 주변을 둘러싼 흰색 과육(펄프)과 함께 쌓아두면 자연적으로 발효가 일어난다. 이 과정에서 효모, 젖산균, 아세트산균 등의 발효에 관여하는 미생물들이 과육의 당을 분해하고, 그 부산물이 카카오 빈에 스며들어 쓴맛을 줄이고 우리가 아는 초콜릿의 풍미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카카오의 자연 발효 과정은 김치와 비슷하게 예측 불가능하다는 특징이 있다. 미생물 주입 등 의도적인 인간 개입이 최소화되어 발효 환경에 따라 천차만별의 결과물이 생긴다. 하지만 이제 과학자들이 카카오 콩 발효의 핵심 원리를 밝혀냈다. 정밀하게 미생물 구성을 조절하여 초콜릿의 특정 풍미를 재현할 수 있음을 실험을 통해 확인했다. 맥주와 치즈처럼, 발효를 위한 미생물, 온도 등의 조건 설정이 표준화된 공정의 길이 열린 것이다.
지난 8월 18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 미생물학'에 초콜릿 맛의 비밀을 파헤친 연구가 실렸다. 연구진은 카카오 콩 발효 과정에서 미생물, 그리고 그 미생물이 만든 온도와 산성도(pH)가 맛과 향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증명했다. 특히, 효모 종인 토룰라스포라(Torulaspora)와 사카로마이세스(Saccharomyces)를 포함한 특정 미생물들이 초콜릿 특유의 섬세하고 복합적인 풍미(과일, 견과류, 흙 향 등)와 강한 연관성이 있음을 밝혀냈다.
연구진은 콜롬비아의 세 지역(Santander, Huila, Antioquia)에서 카카오 발효를 분석했다. 세 농장의 카카오는 모두 유사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어, 초콜릿 풍미에 미치는 유전적 요인을 배제하고 환경적 요인을 연구할 수 있었다. 카카오 발효 과정 중에 온도가 상승하고 콩 떡잎(cotyledon)의 pH가 감소하는 현상을 관찰한 연구진은 이것이 미생물 발효로 인한 결과라고 추정했다. 이 가설을 확인하기 위해, 연구진은 발효 과정에서 발견된 미생물 군집을 실험실에서 그대로 모방하여 합성 미생물 초기 공급원을 만들었다. 합성 미생물 군집으로 발효시킨 카카오 콩으로 만들었는데도 자연 발효를 거쳐 만든 초콜릿과 동일한 맛을 구현해 냈다.
이번 연구의 가장 큰 성과는 연구진이 실험실에서 통제된 발효 환경을 조성하여 원하는 맛을 재현해 냈다는 점이다. 이는 온도와 pH의 변화가 미생물의 활동이 직접적으로 유도하며, 이 미생물들을 통제함으로써 초콜릿의 맛을 정밀하게 설계할 수 있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한 것이며, 기후나 지역과 관계없이 일관된 품질의 초콜릿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다.
초콜릿이 되기 전, 카카오부터 만든다
미생물 연구가 '맛의 표준화'를 가져온다면, 카카오 세포 배양 기술은 '생산의 안정성'을 책임질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7월 16일 초콜릿 제조업체 바리칼리보(Barry Callebaut)는 스위스 취리히 응용과학대학(ZHAW)과 손잡고 카카오 세포 배양 기술 공동 연구에 착수했다. 연구진은 카카오나무가 아닌 카카오 세포를 배양해 초콜릿 원료가 되는 카카오를 생산하는 기술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기후 위기가 심화는 상황에서 세포 배양은 온실가스 배출 없이 안정적인 환경에서 원료를 생산할 수 있다. 이는 기후변화로 인한 수확량 감소 문제를 해소하고, 열대 우림 파괴와 같은 윤리적 문제에서 벗어나는 실질적인 대안이 된다.
미생물 기술과 세포 배양 기술은 서로 보완하며 초콜릿 산업의 미래를 바꿀 강력한 시너지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된다. 기후변화로 인해 카카오 재배가 어려워지더라도, 세포 배양 기술로 원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 동시에 미생물 발효 구성을 조절해, 확보된 원료로 원하는 맛과 향을 가진 초콜릿을 생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과학계가 인류의 식탁을 지키려는 꾸준한 노력 덕택에, 카카오의 씨가 말라 버려도 우리는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는 과학의 힘으로 탄생한 초콜릿을 먹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