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의원회관 회의실에서 좌장을 맡아 앉았다. 수십 번 사회를 맡아본 자리였지만 이날은 유독 마음이 무거웠다. 나를 교육운동으로 이끈 스승, 이오덕 선생 탄생 100돌을 기리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행사는 묵념으로 시작했다. "오늘 우리는 경쟁 교육으로 고통받는 아이들, 스스로 생을 마감한 수많은 청소년을 기억하며, 이오덕 선생의 뜻처럼 사람을 살리고 우리말을 살리는 길을 다짐하며 묵념하겠습니다." 내가 이렇게 선언하는 순간, 회의장은 고요했지만 그 정적 속에서 모두의 가슴이 함께 뛰고 있음을 느꼈다.
삶, 말, 글을 하나로 묶은 이오덕 정신
이주영 이사장은 발제 '이오덕, 우리말 우리글 바로쓰기 운동의 역사와 의미'에서 선생의 삶과 사상을 되새겼다. 일제 강점기와 군사독재를 온몸으로 겪으며 참교육을 일으키려 한 뜻, 아이들의 삶을 지키고 가꾸려 한 열정은 오늘 교육에도 여전히 깊은 뿌리가 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홍승진 교수(서울대)는 "어려운 글은 권위를 세우는 글"이라며 민주주의 사회에서 쉬운 언어 교육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흔히 학자들의 글은 어려운 한자말과 외래어로 가득 차 있다. 듣는 이들로 하여금 멀게 느끼게 하고, 그것이 곧 권위라고 여겨왔다. 그러나 이날 홍 교수의 발제는 달랐다. 이오덕 선생의 <우리 글 바로쓰기>에서 배운 정신을 살려, 쉽고 맑은 우리말로 풀어냈다. '다른 이들을 느끼는 글쓰기', '이름씨에 갇히지 않는 글쓰기'는 단지 말의 틀을 넘어서 사람을 향한 따뜻한 눈, 민주정신을 담고 있었다.
이무완 교감(망상초)은 교과서 속 한자어·외래어 문제를 하나하나 짚으며 "아이들 삶의 언어가 교과서에 담겨야 한다"고 말했다. 교과서는 단순한 지식의 상자가 아니라 아이들의 말과 글, 삶을 엮어내는 살아 있는 배움터여야 한다. 그럴 때 아이들은 자기 삶을 성찰하고 세상과 연결되는 다리를 놓을 수 있다.
정유철 교사(화개중)는 '삶을 글로 쓰는 운동'의 교육적 의미를 다시 일깨웠다. 그는 "쓰지 말라"는 부정의 운동을 넘어, 아이들에게 "마음껏 써 보라"는 긍정의 운동을 펼치자고 호소했다. 아이들이 쓴 글은 단순한 글짓기가 아니라 삶의 숨결이다. 성적과 등급으로 나누는 대신, 누구나 자기 삶을 글로 풀어낼 수 있다는 평등한 자리가 바로 교육이 가야 할 길이다.
우리말을 살려야 민주주의도 선다
토론자로 나선 여러 단체 대표들도 "쉬운 말, 살아 있는 말이야말로 아이들 삶을 키우는 길"이라 뜻을 모았다. 이대로 선생은 말했다.
"광복 여든 해가 지났는데도 식민지 때 한자말과 일본말투를 그대로 쓰고 영어까지 마구 섞어 쓰니 우리 말글살이가 어지럽다. 이제라도 쉬운 우리말로 다듬고, 나라 차원에서 바로잡아야 한다."
강미영 선생은 "동화책이야말로 아이들 삶과 가장 가까운 책이니, 작가들이 더 바른 우리말을 써야 한다. 아이들이 직접 어려운 말을 고치는 수업도 필요하다"고 했고, 윤해연 선생은 "글을 쓴다는 건 세계를 세우는 일"이라며 작가의 책임을 물었다. 이선영 선생은 "삶이 담긴 글, 입말이 살아 있는 글, 머리 지식보다 몸으로 배운 지혜가 담긴 글이 많아져야 책도 살아나고 출판도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네 분이 강조한 길은 같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쓰는 말과 글을 쉬운 우리말로 세워야 한다는 것, 그것이 곧 이오덕 선생이 바란 교육이자 나라다운 길이라는 점이다.
민주주의는 쉬운 말에서 시작된다
자유발언에서는 인공지능 시대 우리말 정책, 교과서 말 고치기, 공공기관의 쉬운 말쓰기 같은 과제들이 제시됐다. 좌장으로서 토론을 정리하며 확인한 결론은 분명했다. 민주주의는 쉬운 말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교과서의 단어 하나, 정책 문구 하나, 교실 속 아이들의 한 문장이 민주주의의 초석이 될 수 있다.
이오덕 선생이 강조한 "삶에서 말이 나오고, 그 말이 글이 된다"는 가르침은 오늘에도 살아 있다. 이번 토론회가 정책으로, 실천으로 이어져 우리 사회 언어문화가 민주주의의 단단한 토대가 되기를 바란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옥성 님은 교육희망네트워크 상임대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