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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와 노동-시민사회의 연대 문화 확산을 위해 만들어진 솔라시 조직위원회는 202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구체적 현실 속에서 더 나은 내일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사례로 보는 대안 정책'을 연재합니다.
 돼지머리 대신 돼지저금통을 올린 제사상 앞에서 청년들이 시농제 제문을 읽고 있다.
돼지머리 대신 돼지저금통을 올린 제사상 앞에서 청년들이 시농제 제문을 읽고 있다. ⓒ 유영인

"유세차 2024년 3월 9일, 항꾸네 식구들이 한 해 농사를 시작하고자 뭇 생명께 삼가 아뢰옵니다.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새 힘을 얻고자 시농제를 올리오니..."

전라남도 곡성의 한 농촌 마을, 청년들이 꾹꾹 눌러쓴 제문을 읽으며 시농제의 시작을 알렸다. 돼지저금통이 놓인 제사상에는 마을 사람들이 함께 나눠 먹을 시루떡, 한과 등을 소탈하게 차렸다. 풍년을 기원하며 직접 농사지어 수확한 곡식과 과일도 올렸다. 애지중지 모은 토종 볍씨들도 옹기종기 함께. 마을 사람들은 차례대로 술을 올리고 풍물을 치며 음식을 나눠 먹었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소멸 위기에 직면한 농촌.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 전남 곡성군 겸면에 위치한 항꾸네협동조합(아래 항꾸네)은 2019년 청년을 대상으로 1년살이 지원프로그램 '청년 자자공(자연 자립 공유, 아래 자자공)'을 시작했다.

6년간 20~30대로 이루어진 32명의 청년이 농민의 삶을 경험했고, 이 중 14명이 귀농·정착해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각종 '살아보기' 프로그램의 낮은 정착률이나 2019년 지원 시작 당시 항꾸네가 30여 명의 작은 공동체였던 것을 고려한다면 놀라운 성과다. 청년들은 왜 이 마을에서 농사지으며 살기를 선택했을까?

'청년 자자공' 프로그램이 가진 진정성

 청년들이 다짜고짜공방에서 목공기술을 배우고 있다. 청년들은 조합 공동 자산인 공방, 트럭, 작은도서관 등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청년들이 다짜고짜공방에서 목공기술을 배우고 있다. 청년들은 조합 공동 자산인 공방, 트럭, 작은도서관 등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 유영인

자자공을 기획한 항꾸네가 가진 청년 귀농 정착에 대한 독특한 접근방식은 스스로의 귀농 경험에 기인한다. 농촌소멸에 대한 해법과 대안으로 청년들을 다루었던 대다수의 농촌 인구정책과 달리 이들은 스스로가 누려본 농생태적 삶의 가치를 함께 나눌 동료로서 청년을 초대하고자 했다. 이들은 몇 년 전 스스로가 그러했듯 도시의 삶에서 벗어나기 위한 대안을 고민하는 청년들을 맞이하기 위해 기꺼이 기댈 언덕이 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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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사람들도 이런 생태적인 삶을 많이 선택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했어요. 기존 지원 정책이 가진 '인구를 늘리기 위해서'라는 생각과는 맥락이 달라요. 이런 생활(농민의 삶)을 원하는 청년들이 어렵지 않게 시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이런 길을 찾는 청년들한테는 도움을 줘야겠다는 생각을 한 거죠."

항꾸네는 청년들이 농사를 익힐 논밭과 지낼 숙소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농사를 배우는 실습장으로 300평의 논과 1000평의 밭을 마련하고, 모금과 지자체 지원을 통해 방 4개짜리 셰어하우스 '꿈엔들'을 지었다(청년들은 항꾸네 공동 자산인 공방, 작은도서관, 트럭 등도 활용할 수 있다). 이렇게 완공한 꿈엔들에 2018년 첫 귀농 희망 청년이 입주하고, 농림부의 '사회적농업 지원사업'에 선정되며 2019년에 본격적으로 자자공이 시작되었다.

'농사'와 '생태'는 참여자 모집과 프로그램 구성에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항꾸네는 생태적 삶으로의 전환을 희망하는 청년을 돕고자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농사에 대한 의지가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다른 지역의 귀촌 사례를 보면 일종의 도피처를 찾기 위해서 농사를 생각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근데 막상 와서 보면 농사가 힘들기도 하지만 경제적으로는 전혀 이익을 낼 수가 없는 구조거든요. 그러다 보니까는 농사를 짓더라도 금방 지쳐서 다시 돌아가는 그런 경우를 많이 봤어요." - 조합원 C

자자공은 매년 3월 시작해 12월에 끝난다. 꿈엔들에 청년 4~6명이 입주하고 토의를 통해 그해의 농사 및 생활 자립 기술, 학습 커리큘럼을 세운다. 연간 일정의 큰 틀은 정해놓되, 해당 기수 청년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식이다. 이는 다시 철마다, 달마다 논의하여 구체적 계획으로 조정한다. 논의 과정에는 조합원으로 이루어진 운영위원회가 함께한다. 운영위원과 자자공 참여자들은 매주 금요일 주간 회의를 열어 세부적인 농사 일정을 조정하고, 꿈엔들 운영과 관련된 이야기 등을 나눈다.

논은 함께 가꾸고 밭은 개인에게 할당하여 각자 원하는 작물을 원하는 농사 기법으로 기르게 한다. 농업기술은 실습장 안팎에서 일상적으로 이야기되며 조합원 논밭에 방문하여 배우기도 한다. 조합원들과는 3월 시농제에서 첫 대면식을 진행하고, 매달 '조합원의 날'에 함께 모여 음식을 나눠 먹으며 조합 운영을 논의하거나 서로의 삶을 나눈다. 이렇게 1년간의 생활 중에 청년들은 정착 여부를 결정하고, 정착을 결정하면 살 집과 땅을 구해 이듬해부터 독립하여 생활하게 된다.

 자자공의 연간 일정은 농사일과 의식주 기술을 배우는 것으로 꾸려진다.
자자공의 연간 일정은 농사일과 의식주 기술을 배우는 것으로 꾸려진다. ⓒ 항꾸네협동조합

농업, 생태, 공동체를 내세운 항꾸네의 전략은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낀 청년들에게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사는', '인간다운 삶'을 탐색하던 청년들은 항꾸네가 이와 부합한다고 판단했다. 이들은 자본주의 구조 속에서 고소득을 목표로 하는 관행농업이나, 농업과 상관없이 귀촌을 지원하는 다른 지자체는 배제하고, 농생태적 삶을 지향하는 이곳을 선택했다.

한 해에 적게는 두 명, 많게는 여섯 명의 청년이 곡성에 머무르고, 또 하나둘씩 정착하자 새로운 문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마을은 청년들로부터 비거니즘, 페미니즘, 동물권 등의 새로운 가치를 받아들였고, 이는 다시 새로운 청년들에게 이주를 결심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지난 방문 때 이 마을 청년과 얘기를 나누며 특히 좋았던 게 감수성이 있고 열려있는 공동체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때 비건이랑 퀴어나 귀촌 이런 주제로 얘기를 했었는데 저에게 그 경험이 되게 좋았어요. 나랑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들이 또 이렇게 모여 있을 수 있다니, 정말 멋지고, 좋고, 같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귀농청년 H

청년은 새로운 삶을, 마을은 새로운 활력을

 매월 열리는 마을의 조합원 회의에도 청년들이 참여해 마을의 대소사를 함께 공유한다.
매월 열리는 마을의 조합원 회의에도 청년들이 참여해 마을의 대소사를 함께 공유한다. ⓒ 유영인

도시의 직장 생활에 한계를 느껴 이곳을 찾았던 청년들은 목표했던 '사람다운 삶'이 정말로 가능해졌다고 말한다. 귀농 정착 청년들은 자연, 생태적 삶, 시간적 여유, 마음 맞는 친구들과의 관계 등에서 오는 행복감을 표했다.

청년들의 정착과 함께 공동체와 지역에 새로운 시도들이 가능해졌다. 마을에서는 비폭력대화모임, 영화제, 음악회, 체육대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가동되기 시작했다. 곡성군의 변화도 있다. 항꾸네 제안으로 '학교생태텃밭정원 교육농 양성과정'이 개설되어 현재 11개 초중고교에서 텃밭 수업을 진행하고 있고, 올해는 항꾸네 청년 9명이 교육농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밖에도 농부시장, 비건·제로웨이스트 활동, 기후강좌 개설, '틈모임(체제전환 활동 모임)' 운영 등으로 곡성군 안팎으로 농생태적 가치를 확산하고 있다.

이런 지역의 변화와 함께 항꾸네 내 청년의 역할 역시 조금씩 확대되고 있다. 자자공 운영위원장도 2기 출신 청년이 맡게 되었고, 항꾸네 총무, 책담(작은도서관) 운영위원장 역시 청년들이 맡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더욱 본격적으로 항꾸네의 자매회사 격인 '청년자자공협동조합'을 설립해 청년 귀농을 돕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청년들은 항꾸네로부터 받은 지원을 다시 누군가에게 베풀고 싶다는 동기를 책임감으로 승화시키고 있고, 조합원은 기꺼이 역할을 조정하며 청년들이 지역에 더욱 단단히 뿌리내리길 지원한다.

어렵게 정착한 청년들이 계속 살 수 있으려면

 항꾸네협동조합 작은도서관에서 청년들은 함께 책을 읽고, 회의를 열고, 외부 전문가를 모셔 강연회도 연다.
항꾸네협동조합 작은도서관에서 청년들은 함께 책을 읽고, 회의를 열고, 외부 전문가를 모셔 강연회도 연다. ⓒ 유영인

그러나 마을에 정착하고 싶어 하는 청년들의 바람과 별개로, 마을은 '빈방 없음'이다. 사실 빈방은 있다. 다만 복잡한 상속 문제가 얽혀있거나, 외지에 있는 집주인들이 소유하고 있는 집을 팔기는커녕 임대하는 것도 꺼리기 때문이다. 청년들은 오가며 마주하는 빈집을 그림의 떡처럼 바라볼 수밖에 없는 처지다.

마을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싶어 하는 청년들과 집을 내놓지 않으려는 집주인들 사이에서 조합원들이 적극적으로 중간자 역할에 나서고 있지만 개인이 나서기엔 한계가 있다. 보다 구조적인 대안이 필요한 이유다.

아쉽게도 지자체의 주거 대책은 도시·취업인구에 맞춰 대규모 공공임대주택 제공 일색에 머물러 있다. 농지에서 멀리 떨어져 읍내에 덩그러니 놓인 아파트는 탈도시를 선택한 귀농 청년에게 적합한 선택지가 될 수 없다. 농촌의 청년인구를 고민하고 있는 지자체라면 귀농 청년들의 특성을 반영한 주거 대책을 논의해야 한다. 농촌 마을을 중심으로 방치되고 있는 빈집, 유휴농지 등에 대한 정보를 통합적으로 수집·공유하고, 셰어하우스, 빈집 리모델링 등 다양한 주거 모델을 개발하여 청년에게 안정적으로 공급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중개에 나설 필요가 있다.

또한, 대규모·전문농업 창업 위주의 지원사업에서 탈피하여 다양한 방식의 청년 귀농 지원 제도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얼마나 많은 소득을 올릴 수 있는지보다, 어떤 가치를 추구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반영하여 지원 제도를 확산한다면 많은 것들이 달라질 것이다. 공동체의 돌봄과 공공성에 기반하는 항꾸네 자자공은 귀농 청년 개개인에게 농업 자금이나 기술을 지원하는 기존의 지원 방식과 큰 차이를 갖는다.

공동체 중심의 접근법은 귀농 청년에게 거주지 및 농지 제공, 기타 소득 보전 활동을 통해 경제적 안정성을 높이고, 동시에 꾸준한 마을 구성원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농촌 적응에 필요한 사회적 기반 역시 구축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이러한 공동체 중심의 접근법을 청년 귀농 정책에 적용할 수 있으려면 마을 단위로의 관점 전환이 전제되어야 한다. 개인을 초점으로 한 영농자금 지원, 기술 이전뿐 아니라, 청년의 정착을 함께 꾸준히 지원할 수 있는 농촌공동체의 구축이 함께 포괄적으로 다뤄져야 할 것이다.

항꾸네의 사례가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은 청년들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의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다. 지원금 얼마, 대출 얼마, 교육 몇 회 등의 지원제도보다 자연, 자립, 공유라는 가치로 청년들에게 말을 걸었고, 청년들은 기꺼이 화답했다. 다양한 삶의 방식과 가치를 실험하고 실현할 수 있는 기회, 청년 귀농 정책에 있어 가장 먼저 다루어야 할 것이다. 이제 곡성의 청년들이 우리에게 묻는다. "어떻게 살 것인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마을정책 10년 임팩트 모델 현장 사례 보고서에 실린 글을 수정한 것입니다. 유영인 기자는 한국마을연합 부설 한국마을정책연구소 기획실장입니다.


#마을공동체#농촌#귀농#청년#곡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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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로 보는 대안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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