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도 없이 이어지는 초록물결. 여름에 색이 있다면 전라남도 보성의 녹차밭이 만들어내는 색과도 꼭 닮아있지 않을까. 태양은 뜨겁지만 더위 때문에 여름의 녹차밭을 포기하기엔, 부드럽게 겹겹이 이어지는 초록이 너무 싱그럽다. 눈 두는 곳마다 초록, 그 한 가운데 있다 보면 마음마저 푸르게 물든다.

▲대한다원 녹차밭의 여름, 초록물결 ⓒ 배은설
보성 녹차밭은 여름 여행지로 더할 나위 없는 곳이다. 보성의 대표 관광지이기도 해서 보성 하면 녹차라는 수식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하지만 녹차밭 하나만 보기엔 보성은 가진 매력이 많다. 산, 강, 바다 모두 갖춘 자연환경이 그럴 뿐만 아니라, 문학, 판소리 등 문화예술이 깊게 스며든 곳이기도 하다. 8월, 다채로운 매력을 가진 그곳으로 향했다.
문학·생태·미식여행이 모두 가능한 보성 벌교
중도라는 일본인이 포구에 20리가 넘는 방죽을 막아 논을 만드는 간척사업을 벌이고 있는데 대대적으로 사람을 모은다는 것이었다. ··· ··· 그건 어디까지나 일본인 중도의 땅이었지 그들의 소유라곤 단 한 평도 없었다. 방죽을 막으면서 개통한 다리에 '소화'라는 이름을 붙여도 그 누구 하나 반대를 하지 않았듯이 그 방죽의 이름도 '중도방죽'이 되었다.
조정래 작가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에서는 제 1권에서부터 '중도방죽'이 등장한다. 그 중도방죽이 있는 곳. 바로 전라남도 보성 벌교다. 벌교는 1권에서부터 무려 10권에 이르는 조정래 작가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주 배경이 된 곳이다.
중도방죽뿐만 아니라 철다리, 보성여관, 구 벌교금융조합, 벌교역, 소화의집, 현부자네집 등 벌교 태백산맥 문학기행길을 천천히 걷다 보면, 곳곳이 태백산맥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소설 속에 나오는 공간들을 하나하나 실제로 마주하는 경험은 더없이 특별하다. 또한 소설이 완성되기까지의 길디 긴 여정이 집약되어 있는 태백산맥 문학관 역시 이곳에 있다.
그래서 태백산맥을 읽고 가면 더 좋을 곳이 보성 벌교이지만, 그렇지 않다 해도 무방하다. 벌교는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비 오는 날의 중도방죽 갯벌생태탐방로 및 갈대밭 ⓒ 배은설
중도방죽은 갯벌이 있는 곳이자 갈대군락지이다. 넓디넓게 펼쳐진 갈대밭은 여름이라 갈색빛과 푸르름이 함께다. 그 사이로 길게 이어진 생태탐방로를 따라 걷다 보면 이따금 새들이 푸드득 날아오르는 풍경도 만날 수 있다. 탐방로 아래 흑회색의 갯벌 사이사이로는 게들이 오가느라 한창 바쁘다. 자연생태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태백산맥문학거리가 있는 곳이자 갯벌생태탐방로가 있는 보성 벌교는 차를 타고 다니기보다는 구석구석 천천히 직접 걸어보는 게 단연 좋은 여행지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벌교는 미식 여행이 가능한 곳이기도 하다. 입 안 가득 쫄깃쫄깃한 꼬막 요리도 요리지만, 남도 아닌 다른 지역에서는 쉽게 맛볼 수 없는 짱뚱어탕이 또한 별미다. 얼핏 추어탕과 비슷한 짱뚱어탕은 담백하고 고소하며 갯벌의 소고기로 불릴 만큼 영양도 풍부하다. 갯벌의 영양을 가득 품은 벌교에서의 미식 여행 또한 잊으면 아쉽다.
문학여행, 생태여행, 미식여행,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곳이 벌교다. 녹차밭만큼 보성여행에서 결코 빠뜨릴 수 없는 곳이다.
탁 트인 풍경이 장관인 주월산 전망대
벌교의 갈대밭만큼 아름다운 풍경을 가진 곳으로 여긴 어떨까. 보성 수국명소로 유명한 윤제림을 지나쳐 차로 조금 더 산길을 오르면 해발 557미터인 이곳에 다다른다. 주월산 전망대.

▲보성 주월산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 ⓒ 배은설
전망대에서는 어디 하나 막힌 데 없이 탁 트인 경치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푸릇푸릇 넓게 펼쳐진 예당평야와 득량만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절로 감탄사를 자아낸다. 느리게 흘러가는 운무도 선연히 눈에 들어와 그 운치를 더한다.
이토록 멋진 풍경을 이렇게 쉽게 봐도 될까 미안해질 만큼 장관이다. 유명한 관광지라기 보단 숨은 명소 쪽에 가까우니 한적하게 경치 감상이 가능한 곳이기도 하다. 특히나 붉은 해가 떠오르는 아침 이곳에 오른다면, 두고두고 잊지 못할 광경을 눈에 담을 수 있겠다.
바다 보며 달리는 녹차해안도로
보성은 바다와도 접해 있다. 곱디고운 모래와 시원한 그늘이 돼 주는 소나무가 어우러진 곳, 율포해수욕장이 이곳에 있다. 해수욕장 근처의 율포해수녹차센터도 가볼 만한 곳이다. 보성군 내 다원에서 생산된 찻잎을 우려낸 녹수와 지하 바닷물을 끌어올린 암반해수가 어우러져, 전국유일의 해수녹차탕을 즐길 수 있다.
목욕 후에는 바나나우유라지만, 이곳에서만큼은 아니다. 해수녹차탕을 즐긴 후 달콤쌉싸름한 녹차아이스크림까지 맛보면 완벽하다. 녹차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는 드라이브는 또 어떨까. 창밖으로 천천히 스쳐지나가는 풍경들이 하나하나 그림 같다. 넓디넓은 바다의 잔잔한 수면 위로는 푸른 하늘. 그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마치 기차놀이하듯 뭉게뭉게 흰 구름들이 차례차례 줄지어 서있다.
신록을 지나 짙은 녹음이 완연한 나지막한 산들과 그 아래로 드넓게 펼쳐진 초록빛 들판도 그대로 아름답다. 바다의 푸름과 자연이 지닌 초록의 향연에 차로 달리는 내내 눈이 호사롭다.

▲녹차해안도로를 드라이브하며 마주한 차창 너머 그림 같은 풍경 ⓒ 배은설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공룡화석지와 더불어 아이들이 특히 좋아하는 비봉공룡공원도 만날 수 있다.
이밖에도 끝없이 이어지는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자연 속에서 휴양 및 체험을 즐길 수 있는 제암산자연휴양림, 70~80년대 추억 가득한 득량역 추억의 거리, 서편제 보성소리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판소리성지 등 보성의 매력은 다채롭다.
아직 녹차밭만 만나봤다면 보성의 매력을 절반도 접하지 못한 것이다. 녹차밭의 싱그러운 초록과 더불어 갈 곳 많고 먹거리 많은 다채로움이 기다리고 있다. 목적지는 정해졌다. 다시 그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