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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스타그램에서 대형 작품으로 큰 화제를 모으고 있는 전시회가 있다. 바로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마크 브래드포드의 개인전 'Mark Bradford: Keep Walking'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 마크 브래드포드는 2021년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이번 전시는 그의 첫 국내 개인전이자, 아시아에서 열리는 전시 중 가장 큰 규모의 회고전으로, 20여 년에 걸친 작업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다.

그는 흑인, 성소수자, 도시 하층민, 인종, 계층, 젠더, 도시 공간 등 다양한 사회적 주제를 지속적으로 탐구해왔다. 전단지, 포스터, 신문지 같은 일상적인 재료를 겹겹이 쌓고, 긁어내고, 찢어내는 방식을 통해 차별과 갈등이 얽힌 현대 사회의 주요 이슈들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을 제시한다.

《떠오르다》 2019
《떠오르다》2019 ⓒ 최온유

관객이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압도적인 스케일의 대형 설치 작품 '떠오르다'이다. 캔버스와 노끈으로 구성된 이 작품 위를 관객이 직접 걸으며, 신체의 움직임을 통해 도시의 이야기와 흐름을 체감할 수 있도록 한다. 작가는 회화의 캔버스를 미술관 전체로 확장시키며, 관객의 동선을 통해 사회적 층위와 개인의 경험이 교차하는 공간을 만들어낸다. 작품을 거닐 때마다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울려 퍼져, 관객의 감각을 더욱 선명하게 자극한다.

소리를 따라 걸어가다 보면, 관객은 작가의 초기 작업 중 하나인 '앤드 페이퍼' 연작과 마주하게 된다. 이 시리즈는 마크 브래드포드가 캘리포니아 예술대학 재학 시절, 다양한 재료를 실험하던 과정에서 탄생한 그의 첫 대표작이다. 그는 어린 시절 미용실에서 자주 보았던 파마 용지(End Paper)의 독특한 질감과 형태에 주목했고, 이를 회화로 풀어냈다.

브래드포드는 반투명한 용지의 가장자리를 토치로 그을려 검은 테두리를 만든 뒤, 이 용지를 캔버스 위에 일렬로 배열해 격자 구조의 콜라주를 완성했다.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투명한 용지에 남겨진 그을음 자국들이 서로 연결되어, 얇고 섬세한 결을 형성하며 깊은 인상을 남긴다.

《사랑도 증오도 아닌》 2024
《사랑도 증오도 아닌》2024 ⓒ 최온유

앤드페이퍼 연작 중 하나인 '사랑도 증오도 아닌'은 특히 깊은 인상을 준다. 두 개의 선으로 만들어진 여백은 '침묵'을 상징하며, 이 침묵을 통해 감정의 부재조차도 하나의 선택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쪽은 엔드페이퍼의 그을음이 짙어 시커멓고, 반대편은 그을음이 거의 없어 하얗다. 이는 마치 우리의 사랑과 증오 같은 극단적인 감정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 같다.

 《무제》 상업포스터 2006
《무제》 상업포스터2006 ⓒ 최온유

이어지는 '상업 포스터'는 2006년부터 시작한 연작으로, 작가가 스튜디오 주변 거리에서 수집한 전단지를 재료로 만든 콜라주 회화 시리즈다. 이 전단지들은 신용불량자 대상 대출, 저가보험, 이혼 및 친권 소송 등 특정 계층을 겨냥한 광고로, 이발소, 주유소, 버스 정류장 등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다.

작가는 각 전단지를 배경으로 삼아 콜라주와 회화 기법을 더해 작품을 완성했다. 특히, 뜯겨지거나 불어난 전단지의 질감이 작품에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더한다.

 《명백한 운명 》 2023
《명백한 운명 》2023 ⓒ 최온유

이 맥락은 2023년 작품 '명백한 운명'에서 확장된다. 제목은 미국이 토착민의 땅을 정복하려는 것을 정당화했던 19세기의 이념에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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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는 "조니가 집을 삽니다"라는 문구가 등장하는데, 이는 전단지에서 가져온 문구로, 작가는 오늘날의 부동산 투기 현실에 연결짓고 있다. 문구는 "JHHONNY" "BUYS"로 이어지지만, 마지막에 등장하는 "LOOSES"가 이 작품의 모든 메시지를 압축적으로 전달한다.

도시 개발과 젠트리피케이션, 부동산 투기 문제로 몸살을 앓는 한국 사회의 현실 속에서, 브래드포드가 던지는 메시지는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공기가 다 닳아 있었다 》 2025
《공기가 다 닳아 있었다 》2025 ⓒ 최온유

2전시실을 지나 3전시실의 영상 작품과 4전시실을 거치면, 5전시실에서는 또 다른 대형 작품들이 펼쳐진다. 벽면에는 작가의 '기차 시간표' 연작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 작품은 20세기 초중반 차별을 피해 대규모로 이주한 600만 명의 흑인들의 '대이주'를 주제로 한다.

작품 제목은 미국 소설가 윌리엄 포크너의 문장에서 인용되었으며, 작가는 실제 기차 출발 시간과 지명이 담긴 시간표를 추상적으로 재구성해 그 역사적 흐름을 표현했다. 두터운 층위로 쌓인 이 작품은 미국 남부의 역사와 기차 시간표라는 기록을 통해 기억의 겹을 섬세하게 쌓아 올린다. 마치 찢겨 나간 기억의 조각들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듯한 인상을 준다.

《그는 잿더미의 왕이 되기 위해서라도 나라가 타오르는 것을 볼 것이다》 2019
《그는 잿더미의 왕이 되기 위해서라도 나라가 타오르는 것을 볼 것이다》2019 ⓒ 최온유

전시실 중앙에는 '그는 잿더미의 왕이 되기 위해서라도 나라가 타오르는 것을 볼 것이다'가 설치되어 있다. 이 작품은 인스타그램에서 마크 브래드포드 전시를 소개할 때 가장 자주 등장하는 작품으로, 이번 회고전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힌다.

여러 개의 구체로 이루어진 이 설치작은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압도적인 스케일로 관객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작품 제목은 드라마 <왕좌의 게임> 속 대사를 인용한 것으로, 권력에 대한 탐욕이 초래하는 사회적 붕괴와 정치적 몰락을 함의한다.

다양한 크기와 질감을 지닌 행성 조각들은 오늘날 지구가 직면한 불균형, 고립, 단절의 문제를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가 모두 같은 행성에 살고 있지만 결코 같은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조용히 일깨운다. 특히 빈부 격차와 차별이 점점 더 심화되고 있는 오늘날의 현실과 맞물려, 이 작품은 더욱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폭풍이 밀려온다》 의 6 전시실 전경 2025
《폭풍이 밀려온다》의 6 전시실 전경 2025 ⓒ 최온유

6전시실에 들어서면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공간이 펼쳐지는데, 바로 '폭풍이 밀려온다' 연작이 전시된 공간이다. 이 작품은 2005년 미국 남부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를 배경으로, '폭풍'이라는 통제 불가능한 힘과 미흡했던 정부의 피해 복구 과정 속에서 드러난 사회적 소외와 불평등에 주목한다. 브래드포드는 이 역사적 재난을, 퀴어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이자 드래그 퀸으로 알려진 월리엄 도어시 스완의 삶과 병치시키며 연작을 구성했다.

전시장 전체를 감싸는 검은 벽지와 종이 표면을 산화시켜 만든 금빛 무늬는 폭풍의 결을 형상화한다. 회화에 투영된 스완의 형상 위에는 래퍼 케빈 제이지 프로디지의 곡 가사가 스텐실로 덧입혀져, 공간 전체에 음울하면서도 긴박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나이아가라》 2005
《나이아가라》2005 ⓒ 아모레 스토리

전시 제목이 'Keep Walking'인 만큼, 전시는 작업실 이웃이었던 흑인 멜빈이 로스앤젤레스 거리를 걷는 뒷모습을 담은 영상 작품 <나이아가라>로 마무리된다. 1953년 마릴린 먼로 주연 영화에서 영감을 받은 이 영상은 멜빈의 얼굴 대신 그의 뒷모습을 따라가며, 그가 도시를 어떻게 통과하고, 버텨내며, 저항하는지를 담담히 비춘다.

이는 작가가 전시를 통해 전하고자 한 "계속 걷고, 나아가라"는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마무리다. 특히 이전 전시실에서 그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감정을 겪었으며, 그것을 어떻게 작품에 투영해왔는지를 지켜본 뒤라서 이 마지막 장면은 더욱 깊이 있게 다가왔다.

마크 브래드포드(Mark Bradford)의 전시 포스터 2025
마크 브래드포드(Mark Bradford)의 전시 포스터2025 ⓒ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Mark Bradford: Keep Walking'은 대형 추상 작품들로 구성된 전시로 미술에 관심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미 인스타그램을 통해 널리 알려진 화제작이다. 압도적인 스케일의 작품들이 많아서 그런지 전시를 보고 난 뒤에도 그 여운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실제로 전시장을 찾으면 가장 먼저 작품의 압도적인 크기에 놀라고 다음으로는 캔버스를 가득 채운 거칠고 복잡한 질감에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그리고 그 질감들이 단순한 시각적 효과가 아닌 사회적 현실과 감정을 압축해 표현한 작가의 의도임을 알게 되는 순간 감상의 깊이는 훨씬 더 깊어진다. 전시는 8월 1일부터 내년 1월 25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블로그에도 실립니다.화이팅


#미국문화#젠트리피케이션#흑인#소수자#하층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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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온유 (dkti1998) 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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