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5.08.16 16:38최종 업데이트 25.08.16 16:38

작년 폭설에 쓰러진 소나무, 올 가을 '불쏘시개'로 남아 있다

[주장] 방치된 산림, 또 다른 재난 부른다

폭설로 인해 쓰러진 관악산의 소나무 서울 관악산에 쓰러진 소나무. 잎은 갈색으로 말라붙어 ‘불쏘시개’처럼 변해 있다.
폭설로 인해 쓰러진 관악산의 소나무서울 관악산에 쓰러진 소나무. 잎은 갈색으로 말라붙어 ‘불쏘시개’처럼 변해 있다. ⓒ 임정우

지난해 11월, 대한민국 전역의 산림은 기록적인 폭설로 몸살을 앓았다. 무거운 눈을 이기지 못한 소나무들이 줄줄이 쓰러졌다. 그런데 반 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 나무들은 여전히 산 속에 누워 있다. 썩기는커녕 바싹 말라붙어, 산을 오르는 시민들의 눈에도 쉽게 띈다.

서울의 관악산 등산로를 오르다 보면, 길 옆에 길게 뻗은 소나무가 눈에 띈다. 뿌리는 들린 채 공중에 걸쳐 있고, 가지는 마른 나뭇가지처럼 바스락거린다. 나무 껍질은 군데군데 벗겨지고, 송진 냄새가 스며 나온다.

강원도 덕고산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겨울에 쓰러진 나무들이 여름 장마철을 지나며 오히려 더 단단히 말라붙었다. 잡초에 덮여 있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면 마치 산속에 쌓아둔 불쏘시개 더미 같다.

AD
덕고산의 쓰러진 소나무 문제는 현장을 관리하는 민족사관고등학교 조경 담당인 알렉산더 간제에 의해 처음으로 제기되었다. 그는 현장을 살펴본 뒤 "눈이 내린 지 몇 달이 지났는데도 소나무가 썩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다. 이런 상태라면 가을이나 겨울 건조기에 불씨 하나만 떨어져도 산 전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우려를 드러냈다.

겨울 폭설에 유독 소나무가 많이 쓰러지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대부분의 활엽수는 겨울에 잎을 모두 떨어뜨려 앙상한 가지만 남는다. 그래서 눈이 쌓일 자리가 적다. 그러나 소나무(Pinus densiflora)는 상록수다. 사철 푸른 바늘잎이 겨울에도 그대로 달려 있다.

이 바늘잎에 눈이 쌓이면 표면적이 넓어지고, 그 무게가 가지와 줄기에 그대로 전달된다. 결국 소나무는 활엽수보다 폭설 피해에 훨씬 취약하다. 지난해 관악산과 덕고산에서 줄줄이 쓰러진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활엽수는 잎이 없어 눈에도 강하고, 설령 부러지더라도 습기가 많아 곧 썩어 들어간다. 그러나 소나무는 송진이 많아 벌레나 곰팡이가 쉽게 침투하지 못한다. 산 능선의 바람과 햇볕은 목재를 건조하게 만들고, 목재는 마치 갓 베어낸 장작처럼 남는다.

이렇게 쓰러진 소나무는 산불 위험을 키운다. 마른 잎과 가지는 불씨만 닿아도 금세 타올라 연료가 되고, 송진 같은 휘발성 물질은 불길을 순식간에 키운다. 특히 쓰러진 나무가 지면과 수관을 연결하는 '사다리 연료' 역할을 하면서, 작은 불씨가 대형 산불로 번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소나무 일색의 숲이 산불 위험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한다. 오병두 국립산림과학원 박사는 "소나무가 많은 숲 주변은 활엽수림에 비해 산불 피해가 2.5배 이상 크다"며 "방치된 소나무는 불씨만 있으면 순식간에 화염을 키우는 위험 요소"라고 설명한다.

이에 대해 오충현 동국대 교수는 단순한 제거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그는 "소나무 자체를 배척할 게 아니라, 활엽수와 혼합해 숲의 구조를 바꾸는 장기적 관리가 필요하다"며 "쓰러진 나무는 제때 처리하고, 동시에 숲을 다양하게 만들어 기후위기에도 버틸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편, 산림청은 현재 소나무가 산불 위험성을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지만, 개별 산림의 쓰러진 소나무에 대해서는 아직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산림청 산하 국립산림과학원은 산불 피해목(고사목)이 소나무재선충병 매개충의 서식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근거로 "피해목을 신속히 제거하고 방제 처리하라"는 지침을 발표한 바 있다.

폭설로 인해 부러진 관악산 소나무 밑동 관악산 등산로 인근에서 발견된 고사목. 활엽수와 달리 소나무는 쉽게 썩지 않아 오랫동안 산 속에 남는다.
폭설로 인해 부러진 관악산 소나무 밑동관악산 등산로 인근에서 발견된 고사목. 활엽수와 달리 소나무는 쉽게 썩지 않아 오랫동안 산 속에 남는다. ⓒ 임정우

덕고산의 쓰러진 소나무 강원도 횡성군 덕고산. 지난해 폭설로 부러진 소나무가 숲속에 그대로 방치돼 있다.
덕고산의 쓰러진 소나무강원도 횡성군 덕고산. 지난해 폭설로 부러진 소나무가 숲속에 그대로 방치돼 있다. ⓒ 임정우

덕고산의 꺾인 소나무들 폭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꺾여버린 소나무들. 가지와 줄기가 마른 채로 서 있어 산불 위험을 키운다.
덕고산의 꺾인 소나무들폭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꺾여버린 소나무들. 가지와 줄기가 마른 채로 서 있어 산불 위험을 키운다. ⓒ 임정우



#산불#폭설#기후위기#산림#소나무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3,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임정우 (jjwl) 내방

환경과 생명을 살리는 일에 대해 씁니다.


독자의견0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