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학점제를 둘러싼 논쟁에 어느 정도 익숙한 시민이라면, 이제 최소성취수준보장제(이하 최성보)를 둘러싼 논란에는 익숙할 것이다. 최성보는 학생이 일정 수준의 성취를 못하면 보충지도와 재이수를 거쳐 학점을 취득하게 하는 제도이며, 표면적으로는 책임교육을 실현하기 위한 장치로서 도입됐다. 절대평가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고교학점제에서 각 과목의 이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학생들을 방치하지 않겠다는 명분이 붙는다. 최성보가 현장에서 아무리 이상대로 작동하지 않고 교실을 붕괴시키고 있음을 호소해도, 정책 설계자들은 책임교육을 강조하며 절대평가를 하려면 최성보가 필수라고 말한다. 하지만 설득력은 떨어진다.
초·중학교는 이미 절대평가를 도입해 운영 중이지만 최성보 같은 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학업 미달 학생에 대한 보충지도는 지금도 다양한 방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굳이 이수 여부를 따지지 않기에 학생을 선발하고 운영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각 학교의 교사들은 처한 여건에 맞게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최성보라는 틀로 규정되지 않았을 뿐, 책임교육은 이미 현장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현장 교사들이 실천하고 있다. 학교 밖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적지 않은 수의 학생들이 저학력 상태에 머무르는 것은 다른 영역의 문제다.
최성보라는 틀이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건너뛰고 고등학교부터 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설계자들이 최성보를 고집하는 이유는, 그것이 유일하게 과목선택제와 고교학점제의 차이를 보여줄 수 있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고교학점제의 장점으로 제시되는 내용은 많지만, 대략 선택과목 다양화, 공동교육과정, 원격수업, 진로 맞춤형 학습학생 선택권 확대와 맞춤형 학습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은 최성보가 굳이 도입되지 않아도 과목선택제 정도면, (제대로 된 지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제 하에서는) 충분히 얻을 수 있는 효과다(물론 현재와 같이 심각한 수준으로 과목을 파편화시킨 2022 개정 교육과정이 그러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정책 설계자들은 과목별 이수라는 대학식 수강 시스템을 고등학교에 이식해야 한다는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미이수 개념이 빠진 학점제는 일부 과목 선택을 허용한 기존 교육과정과 차별성이 약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렇다고 실제로 이수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학생들을 유급 혹은 졸업 불가라는 상황에 노출시키면 그로 인해 파급되는 사회적 혼란은 감당할 자신은 없다. 그러다보니 형식적으로라도 보충지도를 통해 이수기준을 충족했다는 장치를 넣어야 하는 것이다.
최성보는 고교학점제를 학점제답게 보이게 하는 상징이자, 학점제라는 틀을 지키는 마지막 장치가 된다. 결국 신념으로 포장된 설계자들의 욕심은 모두 아는 바와 같이 의미 없는 서류 행정과 학생 지도 부담의 증가에 따른 정규 교육과정 붕괴만 초래했다. 책임교육이라는 그럴듯한 포장지 속 교실 현장은 제도 설계자들의 자기 만족을 위해 희생되고 있다.
설계자들은 교육부의 준비 부족과 지원 체계 미비를 거론하지만, 사회적 조건의 차이에 대한 통찰 없이 제도만 도입하고 시간만 지나면 좋은 방향으로 흐를 것이라는 관료적 행정만능주의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딱히 나은 점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뿌리 깊은 학벌 체제와 서울에 몰린 사회경제적 인프라의 혁신적인 분산,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돌봄 체계 혁신 없이는 고교학점제의 이상은 결코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정책 설계자들이 정말로 최성보를 지키고 싶다면, 실질적인 운영이 가능한 사회 구조를 만들기 위해 헌신하는 모습부터 보여주어야 한다. 서울 소재 대학들이 확보한 기득권을 바탕으로 우수한 학생들을 선점하는 체제를 해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대학과 기업이 지방으로 분산되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해야 한다. 최성보를 포함한 고교학점제를 지키기 위해 토론회와 인터뷰에 참여하는 이상의 시간과 노력을 이 부분에 꼭 쏟아주길 바란다.
또한 학생들이 학교 밖 요인으로 학업 의지를 잃지 않도록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하는 입법 활동에 나서고 조세 정의를 세우며, 학교 밖 학생들을 구제할 수 있는 다양한 대책부터 마련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가난, 돌봄 공백, 불안정한 가정환경, 노동 착취, 이주민에 대한 혐오 등 학교 밖 요인을 해결하지 않은 채 보충 학습 참여만 강제하면 교실은 병들고 학생들은 학교 밖으로 이탈할 뿐이다. 무작정 제도를 도입하고 기우제를 지내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둘러싼 사회 구조부터 손질하는 일에 열과 성을 다해야 한다. 그 순서가 바뀌면 아무리 제도를 치밀하게 설계해도 현장에서는 종이 위의 이상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지금 당장 혁신적인 사회 변화를 가져올 수 없는 상황에서는, 업무 폭증과 교실 왜곡만 부르는 형식적 책임교육보다 현장 상황에 맞게 학생들을 돌볼 수 있게 제도의 여백을 두어야 한다. 교육과정은 공통필수과목을 바탕으로 적정 수준으로 조정된 선택과목 혼합 체제로 개정되어야 한다. 정책 추진자들이 진정 학생과 현장을 위한다면, 굳이 학점제와 최성보라는 틀로 리스크를 떠넘길 이유가 없다. 교사, 학생, 학부모 모두의 고통스런 외침을 더이상 외면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