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문산성에서 진행한 퍼포먼스 ⓒ 이경호
보문산 개발 논란이 더 이상 대전만의 문제가 아니다. 보문산난개발반대시민대책위원회는 전국 케이블카 건설 추진에 반대하는 전국케이블카건설중단과녹색전환연대(이하 전국연대)와 연대를 맺고, 지난 9일 케이블카 건설을 예정하고 있는 전국 8개 산 정상에서 동시다발적인 공동행동을 시작했다. 신불산, 황령산, 보문산, 남산, 치악산, 주흘산, 지리산, 설악산에서 시민과 활동가들이 현장 퍼포먼스를 진행하며 개발 반대 의지를 모았다.
하늘을 찌른 외침, 대전 새벽 산에 울리다
이번 퍼포먼스는 보문산과 매우 유사하게 개발이 추진되고 있는 부산 황령산에서 처음 제안되었다. 황령산 전망타워와 케이블카 설치를 반대하는 부산 시민들은 '봉수횃불문화제'를 열어 보존의 중요성을 외치기로 결의했고, 전국연대가 함께 하기로 하면서 대전에서도 같은 날 새벽 보문산에서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대전에서는 20여 명의 시민과 활동가가 보문산 야외음악당에 모여 보문산성까지 새벽 등반길에 올랐다. 1시간여 산행 끝에 정상에 오른 이들은 "보문산 이대로"를 시작으로 8개 산 이름을 외치며 자연 그대로 보존할 것을 외쳤다.
이들의 외침에 현장 시민들은 뜨거운 환영과 호응을 보냈다. 시민들은 "보문산 케이블카를 건설하는 의미가 없다"며 함께 피켓을 들어주었고, 현수막을 들고 사진을 찍어 주기도 했다. 이른 새벽 산행과 퍼포먼스는 비록 직접 마주하지는 못했지만, 전국 곳곳에서 하나된 목소리가 시민들의 공공성과 자연 유산에 대한 열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하늘다람쥐길'이 말하는 기만

▲하늘다람쥐길 푯말 ⓒ 이경호
보문산성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난 '하늘다람쥐길' 안내판은 묘한 기만을 느끼게 했다. '보물산 프로젝트'로 하늘다람쥐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음에도, 그 길 이름을 하늘다람쥐에서 따온 것은 '그린워싱'(위장 환경주의)에 불과하다.
대전시는 생명과 생태를 지키는 것처럼 포장하지만, 실제로는 보물산 프로젝트로 인해 하늘다람쥐 길이 죽음의 길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외면하며 시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대전 중구 도심에 자리한 보문산은 단순한 산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대전시민들에게는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올랐던 추억의 장소이자, 계절마다 변화하는 풍경 속에서 시민들의 삶에 깊이 스며든 '살아 있는 역사책'과 같다.
봄에는 벚꽃, 여름에는 짙은 녹음,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설경으로 물들어, 대전 시민들의 휴식처이자 도심 속 허파 역할을 해왔다.
보문산성 정상에서 붙은 "때로는 살아가는 것조차 용기일 수 있다"는 푯말은 이곳에 사는 하늘다람쥐와 담비, 삵 같은 수많은 생명들의 삶을 상징한다. 그들은 매일 용기를 내 살아가지만,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사람들은 그 생명들을 가만히 두지 않고 있다.
보물산 프로젝트, 그 어두운 그림자

▲과거 운영햇다 폐쇠한 케이블카의 모습을 전시한 보무산 ⓒ 이경호
그러나 이 고요한 산에 드리운 '보물산 프로젝트'는 어둠의 그림자다. 대전시가 추진하는 이 프로젝트는 민간자본을 유치해 오월드와 대사동을 잇는 길이 약 3.2km의 케이블카, 190m 높이의 전망타워, 워터파크와 숙박시설을 포함하는 대규모 개발 계획이다.
당초 민간자본 유치액은 3000억 원으로 예상되었으나, 민자 유치에 실패하면서 총사업비가 4400억 원으로 늘어났다. 결국 대전시 예산과 대전도시공사의 공사채를 투입하는 공영개발 방식으로 전환되며 '시 재정 악화'라는 새로운 불씨를 키웠다.
대전시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보문산을 전국 관광 명소로 만들고 도시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이는 장미빛 청사진에 불과하다. 케이블카와 전망타워가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고, 워터파크와 숙박시설이 체류형 관광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대전시의 주장과 달리, 전국 케이블카 운영 실적은 대부분 적자로 '세금 먹는 하마'가 될 가능성이 크다.
과거 보문산 케이블카가 운영난으로 폐쇄된 사례와 전국 여러 지역 케이블카가 지속적인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현실을 근거로, 사업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민간 자본 유치 실패는 이 프로젝트의 경제적 리스크를 명확히 보여준다.
절차적 민주주의를 뒤엎은 결정
더불어 이 프로젝트는 2019년 시민과 대전시가 함께한 민관공동위원회 결정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당시 허태정 시장이 주도한 '보문산 관광활성화 민관공동위원회'는 1년 6개월간 11차례 회의와 시민 설문조사, 숙의를 거쳐 고층형 전망타워 설치를 중단하고 보운대를 리모델링 수준의 전망대로 조성하는 데 합의했다. 이러한 민주적 합의를 통해 케이블카 사업은 백지화되었고, 주민참여형 소규모 생태·역사·문화 자원 개발로 방향을 잡았다.
그러나 이장우 시장 취임 이후 상황은 급변했다. 이 합의는 마치 없던 일처럼 뒤집혔고, 대규모 시설 중심 개발 계획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보문산난개발반대시민대책위원회는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개발을 강행하는 것은 시민들의 목소리를 가볍게 여기는 처사"라며 강력히 규탄했다. 이는 단순한 환경 문제뿐 아니라 시민 공론화 과정을 통해 이뤄진 절차적 민주주의 가치 훼손이라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로 평가받는다.
우리는 어떤 도시를 만들 것인가

▲보문산성의 모습 - 정자가 수리중인 모습과 현장활동모습 ⓒ 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과 대전충남녹색연합 등 환경단체는 보문산이 멸종위기 야생동물인 하늘다람쥐, 삵, 담비 등 다양한 생명들의 서식지임을 강조하며 대규모 시설물 건설이 생태계를 돌이킬 수 없이 파괴할 것이라 우려한다.
이 논쟁의 핵심은 '보문산을 무엇으로 보느냐'에 달려 있다. 대전시는 보문산을 '관광자원'으로, 시민사회는 '도시공원'이자 '우리 유산'으로 규정한다. 도시공원은 단순히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시민들의 쉼터이자 도시 숨통 역할을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 번 훼손된 자연은 수십 년이 지나도 온전히 복원되기 어렵다. 필자는 먼 훗날 손주와 함께 보문산에 오를 미래를 그린다. 그날의 보문산도 지금처럼 새소리가 들리고, 나무 사이로 바람이 스치는 곳이어야 한다.
보문산 개발을 막고 자연을 지키는 일은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있는 가장 값진 유산이다. 보문산 논쟁은 단순히 하나의 산을 개발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며, 도시를 만들어 나갈지에 대한 근본적 정책 전환을 요구하는 것이다.
보문산을 사랑하는 시민들의 마음이 모여 개발 논리를 이길 수 있다. 보물산 프로젝트는 결국 '고물산 프로젝트'가 될 것이며, 보문산은 스스로 '보물산'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