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일 오후 나리타 공항에서 억류돼 일본 출입국 당국 조사를 받기 위해 대기 중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국언 이사장(앞)과 유종천 사무국장. ⓒ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제공

▲압수한 여권 왼손에 들고7일 오후 나리타 공항에서 일본 출입국 당국 관계자가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국언 이사장의 여권을 압수해 왼손에 쥐고 조사실로 데려가는 모습. ⓒ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제공
일제 강점기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자 인권 회복 운동을 벌이는 한국인 활동가 2명이 지난 7일 나리타 국제공항에서 일본 출입국 당국에 2시간 가까이 억류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활동가는 "일본 시민단체와의 연대 활동을 위해 일본을 찾을 때마다 공항에서 1~2시간씩 억류된 사례가 올해만 벌써 3번째"라며 일본 당국의 한국인 활동가 블랙리스트 작성, 운용이 의심스럽다고 밝혔다.
8일 <오마이뉴스> 취재 결과,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국언 이사장과 유종천 사무국장은 이달 7일부터 10일까지 3박 4일 일정으로 도쿄를 찾았다. 8~9일 일본 연대단체가 도쿄에서 개최하는 전범기업 규탄 도심 선전전과 조선인 소녀 강제동원 고발 연극에 참여하고 응원하기 위한 방문이다.
두 사람은 지난 7일 오후 3시 10분 인천공항 발 이스타항공(ZE 603)을 타고 나리타공항에 6시쯤 도착했다. 출발 지연으로 예정된 도착시간을 약 30분 넘긴 시각이다.
여객기에 탑승했던 100명 안팎의 승객은 1~5분 사이 입국 심사대를 통과했으나, 이 이사장 등 2명은 예외였다. 오후 6시 10분쯤 입국심사 과정에서 일본 출입국 당국 관계자가 유종천 사무국장과 이국언 이사장을 차례로 지목하고 이들의 여권을 압수한 뒤, 공항 내 조사실로 데려간 것이다.
약 20분 간 두 사람을 대기하도록 한 뒤 6시 37분 1차 조사를 거쳐 이후 2차 조사를 벌였다. 조사실에 마련된 기계 장치를 이용해 통역을 연결한 뒤 조사를 진행했다고 한다. 일본 출입국 당국 관계자는 이 이사장 등을 상대로 입국 목적, 행선지, 일자 별 스케줄, 만날 사람, 숙소, 귀국 항공편 예약 등을 꼬치꼬치 캐물었다.
공항으로 마중 나오는 사람이 있느냐, 그 사람이 누구이며 직업은 무엇이고, 성별 나이는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연극을 보러 간다고 답하면, 남은 시간엔 무얼 하느냐고 묻고, 서점에 갈 예정이라고 하면 서점 이름과 위치, 서점 방문 인원 등을 묻는 식의 조사가 진행됐다.
"우리만 왜 매번 장시간 조사하느냐" 묻자
관계자 "다 이렇게 조사...통상 절차" 주장

▲지난 6월에도 억류...텅 빈 나고야공항 입국심사장6월 19일 텅 빈 나고야공항 출입국 심사장.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국언 이사장은 공항에서 약 2시간 붙들려 별도 조사실에서 입국을 위한 조사를 받고 풀려난 뒤, 다른 탑승객이 모두 통과하고 텅 빈 출입국 심사장을 기록 차원에서 촬영했다고 한다. 2025. 6. 19 ⓒ 이국언제공
이 이사장은 조사 과정에서 "매번 일본에 올 때마다 나를 특별하게, 장시간 조사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며 "우리가 일본에서 범죄를 저지르거나 시민들에게 위해를 가한 적도 없는 데 통상의 절차를 넘어선 대우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기도 했다.
이에 일본 출입국 당국 관계자는 "다른 나라 사람에게도 이렇게 조사한다. 통상적인 절차다"는 취지로 답했다. 2차 조사까지 마친 당국 관계자는 상부에 보고라도 하려는 듯 조사실을 나섰다가 돌아오기도 했고, 이 이사장이 지난 6월 나고야공항 입국 심사 과정에서 조사받은 구체적 내용까지도 사전에 알고 있었다고 한다.
당국은 억류 1시간 40분 만인 오후 7시 50분쯤 이 이사장 등 2명을 풀어준 뒤 입국을 허용했다. 두 사람은 이런 경험을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후원자들과 소통을 위해 만든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 사진을 곁들여 거의 실시간 공유했다.
유 사무국장은 공항 억류에서 풀려난 뒤 "오늘도 입국장을 통과하지 못하고 조사실로 끌려 왔다.
테러범 취급을 하니 기분은 나쁘지만,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을 생각하니 그리 나쁜 경험은 아니다"고 전했다.
이국언 이사장의 경우 올해 들어서만 같은 경험을 3차례나 했다고 밝혔다. 지난 4월 도쿄 나리타공항, 6월 나고야공항에 이어 이번 8월까지 올해에만 일본 입국 과정에서 3차례나 같은 방식으로 억류됐다는 것이다.
일본 당국은 지난 2015년엔 조선인 강제동원 현장인 군함도 답사를 위해 나가사키 공항을 통해 입국하려던 이 이사장 등 답사단 일행을 4시간 억류하기도 했다. 이 시기 일본은 조선인 강제징용의 한이 서린 군함도의 유네스코 산업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었다.
당시 일본 출입국 당국 관계자는 "상부 지시가 있을 때까지 입국을 허용할 수 없다"는 취지로 언급하며 이 이사장 등 일행을 상대로 방문 목적 등을 캐물었다.
이국언 "일본, 한국 활동가들 블랙리스트 관리 분명"
이 이사장은 8일 <오마이뉴스> 통화에서 "일본을 방문할 때마다 1~2시간씩, 어떤 때엔 4시간 가까이 공항에서 억류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며 "저희가 일제 강제동원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와 전범기업에게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는 일을 해온 것이 그 이유로 짐작된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일본 정부가 저를 비롯한 활동가 몇몇을 이른바 블랙리스트에 등재해 입국 때마다 붙잡아두고 장시간 조사해 활동을 위축시키려고 하는 것 같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사죄는커녕 너무 뻔뻔한 짓 아니냐"며 "대한민국 국민으로 정당한 역사 운동을 하는 시민 활동가의 이동을 번번이 제한하는 일본 정부의 행태는 상식적으로도 외교적으로도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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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후 나리타 공항 입국 과정에서 약 2시간 억류됐다 풀려난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국언 이사장 등 일행이 이튿날인 8일 일제 강점기 조선인 강제동원 문제를 고발하는 연극 '봉선화Ⅳ' 리허설 장면을 촬영한 사진. 일본의 양심 있는 시민들이 만든 봉선화 공연은 9일 도쿄 무대에서 선보인다. ⓒ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