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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8.08 10:35최종 업데이트 25.08.08 10:35

보이지 않는 감정을 그리는 작가, 박은지를 만나다

유동하는 감정을 시각화하다, 물처럼 흐르는 예술

박은지 작가 작품 앞에서
박은지 작가작품 앞에서 ⓒ 박은지

지난 7월 25일, 예술의전당 청년 미술상점에서 울산 출신의 박은지 작가를 만났다. 2024년에는 울산문화예술회관에서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었으며, 현재 Gallery Wall Plus에서 8월 15일까지 <Melting 녹는중>을 전시 중이다.

그녀는 인간관계에서 파생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 감각, 생각들을 반복되거나 중첩되는 장면으로 시각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특히 인간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복합적이고 정형화되지 않은 감정의 흐름에 주목하며, 이러한 내면의 흔적들을 평면, 입체,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박은지 작가의 그림은 사진으로 볼 때보다 실제로 마주했을 때 아크릴판에 결합된 한지의 질감이 더욱 잘 드러났고, 특유의 무채색을 띤 형태들은 전체적으로 세련된 분위기를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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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로 다루시는 '인간관계'에 특별히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요?

"결혼을 일찍 해서 딸이 있습니다. 딸이 어릴 때는 엄마에 대한 애착이 굉장히 강했어요. 잠을 잘 때도 제가 옆에 없으면 잠을 못 자고, 팔베개를 해주면 그제야 편히 잠들곤 했죠. 어느 날 딸이 낮잠을 자고 있을 때 문득 위를 보니 천장이 나무 단면으로 되어 있었는데, 그 나이테와 옹이 자국들이 뒤섞여 있는 모습이 마치 딸과 저를 이어주는 연결고리처럼 느껴졌어요. 그 순간이 제게 굉장히 인상 깊게 다가왔고, 그 경험을 계기로 처음 인간관계를 주제로 한 드로잉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 평소 작품에 영감을 주는 대상이나 요소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내면적인 감각들은 고정된 형태 없이 흐르며, 때로는 겹치고 스며들며, 관계의 표면 아래로 가라앉기도 합니다. 저는 그런 감정의 흐름을 '물'에 비유해 작업에 담고 있습니다. 물처럼 감정은 명확한 경계 없이 출렁거립니다. 기억과 감각은 서로 번지거나 휘발되기도 하죠. 그 파장의 잔상이 시각적으로 떠오를 때 저는 그것을 붙잡아 형태 없는 감정을 이미지로 옮기려 합니다. 반복, 중첩, 잔상, 그리고 감정의 흐름은 제 작업의 중요한 언어입니다."

Gallery Wall Plus 에서 전시 중인 《Melting 녹는중》 회화
Gallery Wall Plus 에서 전시 중인 《Melting 녹는중》회화 ⓒ 박은지

딸과의 연결고리에서 출발한 작업은 점차 인간관계 전반의 흐름으로 확장되었다. 그녀는 내면의 보이지 않는 감정들을 '물'에 비유하여 작업에 담았다. 이는 마치 눈에 보이지 않고 명확한 경계 없이 출렁이는 우리의 비정형적인 감정과 같다.

- 작가님의 작품을 마주하는 관객, 그리고 구매자분들이 어떤 감정이나 생각을 느끼길 바라시는지 궁금합니다.

"정해진 해석이나 감정을 요구하고 싶진 않아요. 다만 제 작업을 통해 어떤 장면이나 감정이 환기된다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내면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거나, 말로 설명하기 어려웠던 감정을 시각적으로 마주하는 경험이 되었으면 해요. 특히 구매자분들에겐 공간 속에 작업이 놓임으로써 보는 순간마다 조금씩 다르게 다가가는, 살아 있는 이미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사람마다 작품을 보는 관점이 다를 수 있는데, 관객들이 각자 자유롭게 해석하길 바라시는 건가요?

"네, 맞아요. 저는 관객분들이 제 작품을 자유롭게 해석하시길 바래요. 최근 전시한 작품만 봐도 그래요. 점들이 흩뿌려진(스플래쉬) 형태가 있는데, 어떤 분들은 저 퍼즐 같은 것을 꽃처럼 보시기도 하고, 또 점들이랑 선이 연결된 것을 태아의 핏줄 같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었어요. 정말 다양하게 보시는 것 같아요. 각자의 개념이나 생각이 모두 다르니까요."

- 관객들이 예상치 못한 새로운 관점으로 작품을 해석할 때, 그런 반응에서 영감을 받는 경우도 있나요?

"네, 오히려 저는 한 작업에 계속 몰두하다 보니까 제 개념에 갇혀 있을 때가 있어요. 그런데 관객들의 해석을 들으면 재미있고 신선하게 느껴질 때가 많아서, 그런 경험을 통해 더 열린 시각을 가지게 되는 것 같아요."

청년 미술상점  에서 관객과 만났던 박은지 작가의 부스 전경
청년 미술상점 에서 관객과 만났던 박은지 작가의 부스 전경 ⓒ 박은지

작가는 자신의 작업이 형태가 없는 추상이기에, 특정한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는 관객 각자가 자유롭게 해석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작품을 마주한 이들이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감정이나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을 신선하게 느낀다. 특히 예상치 못한 해석을 들었을 때는 오히려 자신의 시야가 확장되는 경험을 한다고 했다.

- 작가로서 작업을 이어가며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가치나 태도는 무엇인가요?

"정직함과 성실함인 것 같아요. 감정이나 생각이 너무 빠르게 소비되는 시대에, 저는 한 감정에 오래 머무는 것 자체가 중요한 태도라고 느낍니다. 즉흥적인 표현이더라도 진실하게 담기면 관객에게 닿을 거라고 믿어요."

-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해보고 싶으신가요?

"최근에는 단순한 시각적 이미지에 머무르지 않고, 촉각적 경험과 움직임, 그리고 시간의 흐름을 담아내는 작업에 관심이 커졌습니다. 예를 들어, 관객이 작품과 물리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설치 작품이나, 영상과 사운드를 결합한 미디어 작업을 시도하고 싶습니다. 또한, 작업을 일상으로 확장하기 위해 작은 공간을 활용한 프로젝트나 아트 오브제 제작, 다양한 분야와의 협업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습니다."

Gallery Wall Plus 에서 전시 중인 《Melting 녹는중》 중, 영상 설치 작품 《유동하는 것들》
Gallery Wall Plus 에서 전시 중인 《Melting 녹는중》중, 영상 설치 작품 《유동하는 것들》 ⓒ 박은지

- 작가님 처럼 예술가를 꿈꾸는 젊은 세대에게 조언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자신이 자꾸 돌아보게 되는 것들을 그냥 놓치지 않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크고 멋져 보이는 것보다도, 자꾸 생각나고 궁금해지는 것들에 집중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만의 언어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걸 꾸준히 들여다보는 힘을 기르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고, 저도 아직 많이 노력하고 있는 중입니다."

- 예술가를 꿈꾸는 청년들에게 멋있어 보이는 것만 하려고 하지 말라고 하셔서 그 부분이 인상 깊었어요.

"아트페어만 가봐도 작업들이 대부분 색감이 굉장히 화려하잖아요. 서로 돋보이기 위해 경쟁하는 느낌이 많이 드는 것 같아 보였어요. 저는 오히려 무채색 작업을 하다 보니까 그런 부분에 대한 욕심은 조금 내려놓고, 관객들도 편안하게 저의 작품을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Gallery Wall Plus 에서 전시 중인 《Melting 녹는중》 전시전경
Gallery Wall Plus 에서 전시 중인 《Melting 녹는중》전시전경 ⓒ 박은지

청년들은 때때로 멋져 보이는 것에만 이끌려 자신을 잃기 쉽다. 하지만 박은지 작가는 자꾸 생각나고 궁금해지는 것을 놓치지 않고 바라볼 때 비로소 자신만의 언어가 생긴다고 말한다. 그 언어는 결국 가장 진실한 자신으로 이어지는 길이 될지도 모른다.

이러한 태도는 작업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변화하는 인간관계처럼 유동적인 감정의 흐름을 '물'에 비유하는 박은지 작가의 작품은, 빠르게 변하는 오늘날의 세상 속에서도 한결같이 진실된 자세로 자신만의 언어를 찾아가는 예술가의 모습을 보여준다. 앞으로 그녀가 펼쳐나갈 새로운 매체와 이야기들이 더욱 기대된다.

#청년미술상점#청년작가#미술작가#미술작품#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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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온유 (dkti1998) 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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