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남산 N서울타워에서 한 외국인 관광객이 서울 시내 아파트단지 전경을 살펴보고 있다. 2025.7.14 ⓒ 연합뉴스
"영끌하지 않으면 벼락거지가 된다."
최근 몇 년간 대한민국 청년 사이에 퍼진 이 말은 농담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이 시대 청년의 삶을 관통하는 뼈아픈 진실이다. 영끌, 즉 '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은 더 이상 예외적인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전략이자, 뒤처지지 않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이다.
지금의 청년들은 과거 세대와는 전혀 다른 경제 현실 속에 놓여 있다. 부모 세대는 고도성장기와 자산 상승기의 수혜를 입으며 '저축→내 집 마련→자산 축적'의 사다리를 밟을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 청년 세대는 처음부터 그 사다리가 놓여 있지 않다. 직장을 얻고 수년간 일해도 서울 아파트 전세 보증금조차 모으기 힘들다. 월급은 제자리인데, 집값은 하루가 다르게 오른다. 자산 가격은 폭등했고, 그 틈에서 소외되면 영영 회복 불가능하다는 공포가 청년들을 휩싸고 있다.
청년 생애주기 통째로 흔드는 부채
이처럼 벼락거지에 대한 불안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가지지 못하면 도태된다'는 구조적 메시지가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것이다. 부동산은 단순한 거주의 문제가 아니다. 자산과 신분, 사회적 지위를 결정짓는 절대적인 기준이 됐다. 청년들은 미래의 불확실성을 극복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수단으로 '영끌'을 선택한다. 그 과정에서 주택담보대출, 전세자금대출, 신용대출 등 다양한 부채를 떠안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다.
청년층의 부채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23년 하반기 가계부채 현황'에 따르면, 30대 이하 차주의 가계대출 잔액은 약 332조 원으로 전체 가계대출(1876조 원)의 17.7%를 차지한다. 특히 주택담보대출의 비중이 약 73%에 달해, 청년층 대출의 상당 부분이 내 집 마련과 직결돼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문제는 고정금리보다 변동금리 대출 비중이 70% 이상으로 압도적으로 높다는 점이다. 이는 기준금리 인상기에 청년층이 이자 부담 증가라는 직접적인 충격에 노출돼 있다는 뜻이다.
또한,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30세대의 평균 소득 대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은 50%를 넘는 수준이다. 특히 30대의 경우 평균 DSR이 약 52.3%, 20대는 46.7%로 나타났다. 이는 청년들이 벌어들이는 소득의 절반가량을 대출 상환에 쓰고 있음을 의미한다. 금융당국이 제시한 DSR 규제선인 40%를 훌쩍 웃도는 수치이며, 이는 주거비 마련을 위해 진 빚이 결국 생애 전반을 억누르는 족쇄가 돼버린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이 부채는 단순한 재무적 부담을 넘어, 청년의 생애주기를 통째로 흔들고 있다. 취업 후 빚 상환을 위해 직장을 그만둘 수 없고, 결혼과 출산은 점점 늦어지거나 포기된다. 도전보다는 현상 유지를 택하게 되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설계하기보다 빚을 갚기 위한 삶을 살게 된다.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청년들은 더 이상 '선택'할 수 없다. 선택지는 줄어들고, 감당해야 할 책임만 늘어난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은 개인의 문제인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지금의 청년 부채는 사회 구조가 만들어낸 결과다. 장기 저금리 정책과 부동산 시장 과열, 자산 중심의 불평등 구조, 주거권에 대한 공공정책의 부재가 맞물린 결과다. 시장은 빠르게 달렸지만, 제도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정부는 일시적인 대책을 내놓았지만, 청년들에게 실질적인 안정감을 주기엔 역부족이었다.
'영끌'은 더 이상 투기라는 말로 매도할 수 없는 시대적 현상이다. 그 이면에는 생존에 대한 절박함, 자산 격차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미래에 대한 통제력 상실이 자리하고 있다. 이제는 청년에게 더 이상 '무리하지 마라'고 충고할 수 없다. 그 말은 '기회를 포기하라'는 말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 사회가 스스로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왜 청년이 대출을 끌어모아야만 삶을 시작할 수 있는가. 왜 부채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구조가 됐는가.
지금의 청년들이 처한 현실은, 단지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청년의 불안은 출산율 하락, 사회적 신뢰 저하, 경제의 역동성 저하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출발점이다. 영끌하는 청년은 사회의 경고등이다. 이 신호를 무시한다면, 그 대가는 청년에게만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제 다른 사회를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영끌하지 않아도 되는 삶, 주거가 공공의 권리로 보장되는 사회, 자산이 아닌 노동으로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사회. 청년에게 실패의 책임을 묻기 전에, 실패하지 않을 수 있는 기반부터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성숙한 사회의 역할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저자는 금융과 미래 대표. 금융시민교육 전문가로, '좋은 삶을 위한 경제'를 주제로 다양한 강의와 연구를 진행해왔습니다. 저서 <아이와 함께 자라는 경제 숲: 돈 너머 가치를 키우는 교육> 출간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