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미 무역협상이 타결된 7월 31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 지수 등이 표시되고 있다. 이날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9.03포인트(0.28%) 내린 3,245.44에, 코스닥은 1.57포인트(0.20%) 오른 805.24에 장을 마감했다. ⓒ 연합뉴스
"요즘 주식 안 하면 바보죠."
몇 해 전,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20대 후반 직장인이 쓴 글이 화제가 됐다. 그는 급여의 절반 이상을 테마주에 몰아넣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노력해서는 절대 내 집 못 사요. 그냥 주식이 마지막 희망 같아요."
이 말이 과장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오늘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청년, 중산층, 은퇴 직전의 세대까지, 그 누구에게도 낯설지 않은 말이기도 하다. 단군 이래 최고의 투자 열풍이자 자산 폭등의 시대를 지나오면서 주식은 어느새 투자가 아니라 생존의 수단이 되었다.
과거엔 투자는 여유 있는 사람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투자하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은 불안, 가만히 있으면 잃는다는 두려움이 사람들을 시장으로 내몬다. 돈을 벌기 위한 욕망 이전에, 안정적인 삶을 유지하기 위한 절박함이 먼저였다.
투자라는 이름의 생존 전략
사람들은 말한다. "주식은 공부해서 하면 괜찮다"라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 '공부'가 정규 교육도, 공적 지원도 없이 개인의 노력에만 의존하게 된 현실이 문제다. 대한민국에는 자본시장에 대한 체계적인 시민 교육이 없다. 대부분의 사람은 유튜브나 SNS, 주변의 '카더라'를 통해 투자 지식을 습득한다.
그렇다 보니 많은 이들이 종목 선정, 기업 분석, 포트폴리오 다변화 같은 기본도 없이 유행을 좇는다. 누가 어디서 수익을 냈다는 소문에 휘둘리고, 전문가인 듯 말하는 유튜버의 추천에 '영끌' 투자를 감행한다. 결국 주식 시장은 투자자가 아니라 투기자가 넘쳐나는 구조로 흘러가게 된다.
더 심각한 건, 이 위험이 오롯이 개인에게 전가된다는 점이다. 수익은 자본이 가져가고, 손실은 개인이 짊어진다. 금융 소비자의 권리는 빈약하고, 제도는 시장 활성화 중심으로 움직인다. 실패의 사회적 책임은 부재하고, 오롯이 개인의 무능으로 낙인찍히는 구조다.
제도와 구조가 만드는 불안의 감정
주식 열풍을 단지 개인의 탐욕이나 투기심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우리가 사는 이 사회의 불안정한 구조가 이 열풍을 키워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주주 양도소득세 과세 기준이다. 일정 금액 이상 주식을 보유한 사람만 과세 대상으로 삼는 이 제도는, 연말이 되면 세금을 피하기 위한 매도 행렬을 촉발시킨다. 이로 인해 시장에 불필요한 변동성과 불안을 낳고, 장기 보유 투자자조차 연말에는 흔들릴 수밖에 없는 구조가 형성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연금은 불안하고, 집값은 천정부지며, 금리는 오르고, 일자리는 불안정하다. 청년이든, 중년이든, 노후 준비를 고민하는 사람이든 모두가 "뭔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압박에 시달린다. 그 '뭔가'가 주식인 것이다.
주식 시장은 그런 심리적 갈증을 빠르게 해소해 준다. 1시간 만에 수익이 나기도 하고, '성공한 누군가'의 이야기를 쉽게 접할 수 있다. 반면 현실은 너무 느리고, 불확실하다. 불안을 달래주는 가장 손쉬운 수단이 주식 시장이 되어버린 사회, 그게 지금 우리가 사는 곳이다.
안정적인 삶 가능한 사회는 무엇인가
사람들이 주식을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그건 단지 자산 소득을 보장해 주는 사회가 아니다. 일이 불안정해도 생존이 가능한 구조, 삶의 기본이 위협받지 않는 토대, 이것이 필요하다.
괜찮은 일자리, 믿을 수 있는 국민연금, 실효성 있는 금융소비자 보호제도, 투명한 시장 질서, 그리고 무엇보다 공정한 기회와 결과의 균형. 이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아무리 금융 교육을 해도 사람들은 투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건 자산을 불려야만 안심할 수 있는 사회를 넘어서는 상상력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재테크'라는 말로 위로받아 왔다. 하지만 자산 증식 말고도 사람이 기댈 수 있는 울타리는 필요하다. 노동의 안정성, 주거의 예측 가능성, 공동체의 지지, 공공의 품질, 이런 것들이 모두 사회적 배당이 되어야 한다.
불안을 넘어, 함께 사는 사회로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할 때다.
'어떻게 투자할까'보다 '어떻게 살고 싶은가?'
'어디에 돈을 넣을까'보다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가?'
지금의 주식 열풍은 한국 사회가 보내는 구조적 신호다. 불안을 개인의 문제로 돌릴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로 인식해야 한다. 주식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지여야 한다. 재테크 안 해도 괜찮은 사회, 그것은 이상이 아니라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현실적인 목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금융과 미래에도 실립니다.한영섭, 금융과 미래 대표. 금융시민교육 전문가. '좋은 삶을 위한 경제'를 주제로 다양한 강의와 연구를 진행해왔다. 저서 『아이와 함께 자라는 경제 숲: 돈 너머 가치를 키우는 교육』 출간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