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서서 하는 독서라고 하던가. 필자는 서서 하는 독서를 위해 스페인 여행길에 합류했다. 일행은 지난 7월 24일 스페인 바르셀로나 공항에 도착, 몬세라트를 거쳐 발렌시아에서 하루를 묵었다. 이번 여행에서 그 어느 곳보다 마음에 담아 둔 곳은 바로 남부 안달루시아 지역 세비야이다. 왜 필자는 세비야에 그토록 관심을 보였을까.
일행을 태운 리무진 버스는 세비야를 향해 하염없이 달린다. 창밖엔 척박해 보이는 땅에 뿌리박은 올리브 나무들이 목마른 대지에 한 방울의 비라도 내려주길 바라듯, 하늘을 향해 마냥 쳐다보고 있다. 작렬한 태양은 지칠 줄 모른다. 잎들마저 비실거린다. 애처롭다. 마음 같아선 손에 든 물, 한 모금이라도 나눠주고 싶다.
우여곡절 끝에 대지의 타는 목마름으로 세비야 도착이다. 공기 냄새도 다르다. 태양은 여전히 이글거린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지중해성 건조 기후로, 습도가 낮아 무덥지 않은 것 같다. 그늘로 들어서면 견딜 만하다.
세비야 사람들은 헤라클레스가 세비야를 세웠고, 카이사르가 성벽을 감싸 로마의 식민도시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후 세비야는 500여 년이 넘게 이슬람 종교와 문화가 꽃핀다. 1248년에 이르려 페르난도 3세는 이슬람 세력을 세비야에서 몰아내고, 이슬람 사원(모스크) 자리에 성당을 증축하여 기독교화한다.
스페인을 점령했던 이슬람 세력이 물러난 후, 이베리아반도에 남은 이슬람 장인들이 기독교 건축물에 이슬람 건축 기술과 장식 기법을 적용하면서 이슬람 문화와 기독교 문화가 자연스럽게 혼합된 무데하르(Mudejar) 양식이 세비야에 싹튼다.
스페인 광장(Plaza de espana) 벽면에 스페인 역사가 이슬람식의 기하학적 무늬와 섬세한 타일 장식으로 선명하게 새겨있어 이채롭다. 무데하르 양식이다. 이글거리는 태양이 여전히 일행들의 발목을 붙잡는다. 일행들은 포토존마다 태양을 피해 기념사진을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스페인 광장은 1929년 '이베로-아메리카 박람회' 장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분수대를 중심으로 건물 양쪽 탑 좌우 대칭의 반원을 그리는 광장 모습이 인상적이다. 일행들은 스페인 광장 회당에서 펼쳐지곤 한다는 열정적인 플라멩코(Flamenco) 춤은 보지 못했지만, 귀족이나 된 듯 백마가 끈 마차를 타고 스페인 광장을 시작으로 주변 경치를 둘러보는 호사를 누린다.
세비야는 곳곳에 이슬람과 기독교뿐만 아니라 로마인들의 혼합된 문화 흔적들이 즐비하다. 세비야 대성당(Sevilla Cathedral) 역시 마찬가지다. 연 200만 명 이상의 관광객들이 찾는다는 이 성당은 1356년 지진으로 무너져 폐허가 되었다가 1506년에 다시 중축된 성당이다.
세비야 대성당은 원래 12세기경 알 모하드 왕조 시기에 세워진 이슬람 사원(모스크)이었는데, 기독교 세력이 레콩키스타(Reconquista, 국토회복운동)를 펼쳐 세비야 지역을 되찾게 되면서 성당으로 개조되었다.
성당 외부는 고딕양식으로 성당 내부는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 등 세월을 반영한 다양한 양식 형태를 보인다. 당시 세비야 사람들은 그 어떤 다른 성당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크고 아름답게 지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졌다고 한다. 그들은 중세 고도(古都), 톨레도 대성당을 의식한 것이다.
대성당 옆 우뚝 솟은 히랄다 탑(La Giralda)이 눈에 띈다. 이 탑은 12세기 이슬람 사원의 탑이었으나 윗부분을 기독교 형태로 증축하면서 높이 97m의 웅장한 모습으로 재탄생되었다. 이 탑은 성당 내 오렌지 정원과 함께 유일하게 남은 중세에 지어진 탑이란다. 탑 꼭대기에 한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다른 한 손에 깃발을 들고 있는 '엘 히랄디요(El Giraldillo)' 여인상이 세비야 거리를 지켜보고 있다.

▲4명의 왕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1451~1506) 영면의 관을 어깨에 메고 있는 모습. ⓒ 김병모
세비야 대성당 안으로 들어서자 현지 해설사의 목소리가 더욱 커진다. 4명의 왕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1451~1506) 영면의 관을 어깨에 메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스페인은 콜럼버스가 세운 공을 인정하여 죽어서도 스페인 땅을 밟지 않겠다는 그의 유언을 받아들여 당시 스페인 4대 국왕이었던 카스티야, 레온, 나바르, 아라곤의 왕들이 그의 관을 짊어지게 한다.
흥미롭게도, 콜럼버스 대항해를 지지했던 앞쪽 두 명의 왕들은(카스티아, 레온 왕국) 고개를 들고 있고, 반대했던 뒤쪽 왕들은(나바르, 아라곤 왕국) 고개를 숙이고 있다. 특히 앞 오른쪽 왕의 창살 아래에는 석류가 창날에 꽂혀 있다. 기독교 세력이 최후의 이슬람 세력을 그라나다(석류라는 의미)에서 몰아낸 의미란다.
오른쪽 레온 왕의 발과 왼쪽 카스티야 왕의 발이 유난히 반짝인다. 이들의 발을 만지면 사랑하는 사람과 세비야에 다시 온다는 속설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이들의 발을 만질 수 없다.
세비야 과달키비르강을 건너 대서양으로 나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는 등 대항해에 성공하여 막대한 부를 스페인에 안겨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무슨 연유인지 더 이상 스페인 땅을 밟지 않겠다고 떠났다. 그러나 콜럼버스를 향한 스페인 사람들의 무한 사랑을 받으며, 지금 세비야 대성당 안에서 관이 들린 채 영원히 잠들고 있다. 돌아서기 아쉬워 그에게 묻고 싶다. 가이아의 품속(땅)에 영면하지 못하고 왜 그렇게 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