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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이 너무 빠르다고 느껴질 때, 타샤 튜더의 정원으로 마음을 산책 시켜 보는 건 어떨까. 그녀의 하루는 계절의 속도에 따라 흘렀다.
행복한 사람, 타샤 튜더 (주)윌북 타샤 튜더가 쓴 자연주의적 삶의 모습과 리처드 브라운의 사진으로 엮어진 책.
행복한 사람, 타샤 튜더 (주)윌북타샤 튜더가 쓴 자연주의적 삶의 모습과 리처드 브라운의 사진으로 엮어진 책. ⓒ 신혜솔

오늘날 기후 위기와 환경 문제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다시 묻고 있다. 빠른 속도와 효율을 추구하며 풍요를 쫓아온 현대사회는 이제 그 대가를 치르는 중이다. 초유의 기상이변, 사라지는 계절, 예측 불가능한 자연재해가 일상이 되었다. 이러한 시점에서, 20세기를 살았던 그림책 작가이자 자연주의자인 타샤 튜더의 삶은 평범한 전원생활을 넘어 우리에게 삶의 지혜와 방향을 제시해준다.

타샤 튜더는 자연과 함께하는 자급자족의 삶을 실천했다. 그녀는 천을 짜고, 치즈와 아이스크림, 양초와 비누를 손수 만들어 생활했다. 그녀의 집과 정원은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니라, 자연과 교감하며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철학의 터전이었다. 봄이면 꽃바구니를 만들어 이웃과 나누고, 여름에는 정원에서 소박한 기쁨을 누렸다. 그녀는 '참을성 없는 요즘 사람들에게 느림의 미학을 권하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타샤의 삶은 동화속처럼 '예쁜 시골 생활'에 머무르지 않는다. 삶의 본질에 대한 치열한 사유와 실천이 깃들어 있다. 느리고 소박한 삶 속에서 노동의 가치를 존중했고, 현재를 충만하게 살아가는 법을 보여주었다. 타샤가 선택한 방식은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가장 미래지향적인 삶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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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현대사회는 지나친 소비와 개발로 지구를 위협하고 있다. 특히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는 그 심각성을 드러낸다. 코로나19 이후 배달 음식과 포장재 사용이 급증하며 플라스틱 폐기물도 함께 늘었다. 한 조사에 따르면, 가구당 일주일 평균 1만 1888개의 플라스틱 식품 포장재가 소비된다고 한다. 이처럼 과도한 소비는 지구를 병들게 하고, 특히 취약 계층의 삶에 더욱 큰 고통을 안기고 있다.

기후 위기는 환경 문제가 아니라 인권의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 그러나 제도적 대응은 여전히 미흡하다. 화석연료 기업들은 막대한 온실가스를 배출하면서도 책임 있는 변화에 미온적이다. 이런 가운데 타샤 튜더의 삶은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수십 년 전부터 자급자족과 절제, 자연과의 공존을 실천하며 지속 가능한 삶의 가능성을 보여준 그녀의 삶을 보며 우리는 무엇을 바꾸어야 할 것인가.

타샤가 말한 '느림의 미학'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다. 오히려 현재에 집중하고, 작은 것에 감사하며, 인간의 탐욕이 아닌 자연의 리듬에 따라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준다. 과도한 생산과 소비를 줄이고, 필요한 것을 직접 만들며, 계절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삶은 환경 부담을 줄이는 가장 확실한 해법이 될 수 있다.

며칠 전, 손자 로리와 함께 다큐멘터리 영화 '타샤 튜더'를 다시 보았다. 최근에 타샤의 책 <행복한 사람, 타샤 튜더>와 <타샤의 정원>을 읽고 난 뒤였다.

"할머니, 로리도 저런 집에서 살고 싶어요~"라는 말은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기억을 다시 꺼내주었다. 영화 속 타샤의 정원을 바라보며 로리는 눈을 반짝였다. 꼬꼬닭이 흙을 파는 장면에서는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나는 문득, 한때 산촌에서 텃밭을 가꾸고 꽃을 심으며 살았던 시절이 떠올랐다. 비록 오래 가지는 못했지만, 그때의 흙냄새는 아직 내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로리는 겨우 세 살이지만 나와 마음의 결이 닮았다. 영화가 끝나갈 무렵, 로리는 다시 물었다. "할머니, 저 집에 살면 나비랑 비둘기랑 강아지랑 친구 할 수 있어요?"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아이의 눈에 비친 타샤의 세계는 단지 '꽃이 많은 집'이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가능한 행복'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나 역시 영화 속 타샤를 바라보며 "늙은 타샤가 어쩌면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 아름다움은 시간의 무게를 온전히 견뎌낸 이에게만 허락되는 빛이 아닐까.

타샤 튜더는 2008년 6월, 자연의 품으로 영원히 돌아갔다. 그러나 그녀가 남긴 삶의 방식은 결코 낡은 낭만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 우리가 직면한 기후 위기 앞에서 가장 절박한 질문에 대한 해답일 수 있다. 타샤는 말했다.

"동물들은 내가 누리는 것보다 작은 세계에서 살아가지만, 사람들은 많은 것을 누리면서 더 큰 것을 원해요. 삶에 감사하는 걸 잊고, 끝없는 욕심을 부려요."

우리는 지금, 너무 많이 만들고 너무 많이 버리는 세상에 살고 있다. 타샤의 정원은 동화 속 세계가 아니다. 마음을 조금만 진실하게 돌려보면, 우리 모두가 만들 수 있는 '희망의 풍경'이 될 수 있다. 그곳에는 느림의 철학, 소박한 기쁨, 그리고 자연과의 약속이 있다. 지금 우리가 회복해야 할 미래가 그 안에 있는 것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 스토리에도 실립니다.이 기사는 브런치 스토리에도 실립니다.


#자연주의#타샤튜더#정원#느림#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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