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아껴주세요."
강릉의 한 지역 라디오 방송에서 매시간 흘러나오는 이 캠페인은, 강원 동해안이 겪고 있는 물 부족 사태의 심각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올여름, 강원 동해안은 연일 계속되는 폭염과 극심한 가뭄 속에서 피서철을 맞이하고 있다. 고성, 속초, 양양, 강릉, 동해, 삼척 등 매년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대표적인 해안 도시들은 한편으로는 피서객들로 북적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저수율 하락과 텅 빈 물탱크로 불안이 커지고 있다.

▲강릉 등명해변 ⓒ 진재중
사람은 넘치고, 물은 말랐다… 동해안의 불편한 풍경
7월 말 현재, 강원 동해안 다수 지역의 저수율은 평년 대비 30% 안팎으로 급감했다. 강릉 오봉저수지에는 물이 빠지면서 댐 한가운데 섬이 드러났고, 다른 저수지들도 바닥이 갈라진 채 햇볕에 바싹 말라 있다. 지난 7월 16일 자 <오마이뉴스> "비는 왔지만... 여전히 바닥 보이는 강릉 오봉저수지" 기사에서도 이 같은 상황을 전한 바 있다(관련기사:
[사진] 비는 왔지만... 여전히 바닥 보이는 강릉 오봉저수지 https://omn.kr/2eko1).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시기 강원 동해안에는 관광객이 역대급으로 몰리고 있다. 올여름 해수욕장을 찾은 피서객은 지난 주말 200만 명을 넘겼으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만 명 증가한 수치다.
숙박시설은 대부분 만실이고, 해수욕장마다 연일 수만 명의 인파가 몰린다. 동해안은 외지인에게는 대표적인 여름 피서지이지만, 정작 지역 주민에게는 제한된 물을 두고 벌어지는 '생존 경쟁의 현장'이 되고 있다.

▲강릉 오봉댐바닦을 드러내기 시작한 저수지에서 멀리 동해안 바다와 강릉시내가 보인다. ⓒ 진재중
이렇게까지 줄여본 건 처음입니다
강릉시 사천해변가에서 거주 중인 최민숙(67)씨는 요즘 물을 쓸 때마다 신경이 곤두선다.
"화장실도 한 번에 안 내리고, 설거지도 한꺼번에 모아서 해요. 빨래도 삼일에 한 번 돌리죠. 이렇게까지 물을 아껴본 건 태어나서 처음이에요."
그러나 집 앞 해변은 연일 북적인다. 관광객들이 샤워장에서 한참 물을 틀어놓고 씻는 걸 볼 때마다, 최 씨는 참았던 한숨을 쉰다.
"관광객이 많이 와야 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이 물 사정을 전혀 모르잖아요. 우리는 지금 마실 물도 눈치 보며 사는 판이에요."
물론 관광객 유치는 지역 경제에 있어 중요한 활력소다. 민생회복지원금 지급 이후 움츠러들었던 상권이 살아나고, 숙박·식당·레저 산업이 다시 활기를 띠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조용히 고갈되어가는 자원이 있다. 바로 생존과 직결된 '물'이다.
삼척에서 민박업을 하는 이종철(55)씨는 "관광객이 많아지면 좋은 줄만 알았는데, 요즘은 물 걱정 때문에 손님 받는 게 겁난다"고 토로한다.
"샤워 오래 하는 손님, 물 펑펑 쓰는 손님 많아요. 일일이 말하기도 민망하고, 괜히 기분 상하거나 후기라도 안 좋게 달리면 더 걱정이죠. 물도 부족하고, 마음도 탑니다."
지금 동해안이 직면한 현실은 단순히 관광객 수요가 증가한 것이 아니다. 본질적인 질문은 이렇다. '이 관광 수요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관광은 분명 지역에 이익이 되지만, 그 전제는 명확하다. '지속가능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강릉, 오봉댐 ⓒ 진재중
자원 기반 무너지면, 관광도 무너진다
물 부족 문제는 단순히 샤워나 급수의 불편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는 수산업과 농업, 생태계는 물론이고 소방 안전까지 위협할 수 있는 지역 기반을 흔드는 중대한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반복되는 대책 없는 여름철 관광객 유치 경쟁은 오히려 지역을 더 취약하게 만들고 있다. 단기적 이익을 좇는 무분별한 유입은 결과적으로 주민 삶의 질과 지역의 지속 가능성을 갉아먹는 셈이다.
현재 지자체들은 물 부족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급수 차량 투입, 절수 캠페인, 민관 협의체 구성 등 다양한 조치를 마련 중이다. 하지만 이는 응급처치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릉, 속초, 양양, 고성 등 동해안 주요 해안도시들이 축제 분위기에 들떠 있는 사이, 행정당국은 눈앞의 갈증과 시스템 위기에 맞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지역이 직면한 물 위기, 이제는 '일시적 불편'이 아닌 구조적 위험으로 바라봐야 할 때다.

▲삼척, 초당저수지 ⓒ 진재중
동해안의 여름, 그 풍경 뒤엔 '지속가능성'이라는 숙제가 있다
파란 바다와 빽빽이 들어찬 파라솔, 넘치는 활기로 가득한 해변. 강원 동해안의 여름은 언제나 풍요로워 보인다. 그러나 그 화려한 풍경 이면에는 지자체의 복잡한 고민과 절박한 대응, 그리고 지역 주민들의 생활권 위기가 교차하고 있다. 올여름 동해안은 물 부족 사태와 기록적 폭염, 그리고 역대급 관광객 유입이라는 삼중고 속에서 흔들리고 있다.

▲동해안 바닷가 ⓒ 진재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