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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8.01 10:48최종 업데이트 25.08.01 10:48

죽은 자의 목소리, 그 끝에 닿은 질문

[서평]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죽은 자에게 입이 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하지만 다카노 가즈아키의 단편집 <죽은 자에게 입이 있다>(2025년 6월 출간)는 이 침묵을 정면으로 뒤집는다. 죽은 자의 목소리가 사건을 이끌고, 진실을 드러내며, 인간의 본성까지 해부한다. 여섯 편으로 구성된 이 미스터리 단편집은 초자연적 현상을 이용해 그 너머에 있는 인간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개인의 윤리적 갈등을 정조준한다.

<죽은 자에게 입이 있다> 저자: 다카노 가즈아키 / 책표지 / ⓒ김태환 '죽은자에게 입이 있다'는 다카노 가즈아키의 첫 단편집으로, 2025년 6월 한국에서 최초로 출간된 미스터리·스릴러 소설집입니다.
<죽은 자에게 입이 있다> 저자: 다카노 가즈아키 / 책표지 / ⓒ김태환'죽은자에게 입이 있다'는 다카노 가즈아키의 첫 단편집으로, 2025년 6월 한국에서 최초로 출간된 미스터리·스릴러 소설집입니다. ⓒ 김태환

한여름, 스릴러나 미스터리가 선사하는 오싹함은 단순한 오락을 넘어선다. 특히 다카노 가즈아키의 이 작품은 유령, 전생, 기억 상실 같은 비현실적 설정을 통해 오히려 현실의 진실과 마주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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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노 가즈아키는 <13계단>, <제노사이드> 등을 통해 국내에도 잘 알려진 작가다. 초등학생 때부터 영화감독을 꿈꿨던 그는 대학생 때부터 영화 각본가로 활동했으며, 1989년부터 1991년까지 2년간 미국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그가 귀국한 뒤 쓴 작품인 <6시간 후 너는 죽는다>는 드라마화 되어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남 몰래 좋은 일을 하는 이야기보다 남 몰래 사람 죽이는 이야기 같은 위험한 일에 더 반응한다" 며, "나는 그런 심리를 소설로 풀어내고, 독자들이 읽고 싶은 장르를 쓰고 있다" 고 전했다. 이 말처럼, <죽은 자에게 입이 있다>는 초자연적 현상에 시선을 빼앗기는 듯 하다가도 결국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에 도달한다.

책의 여섯 단편은 각각 독립적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마지막에 이르러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인간의 본성, 윤리와 죄의식, 기억의 파편, 초자연적 현상이라는 키워드가 유기적으로 얽혀, 독자를 인간 내면의 심연으로 끌어들인다.

표제작 '죽은 자에게 입이 있다'에서는 유령이 사건의 단서를 제공하며, '세 번째 남자'에서는 전생의 기억을 추적하며 진실을 파헤친다. 각 단편 속 초자연적 설정은 단순한 이야깃거리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현실에서는 가려지기 쉬운 진실과 죄책감을 들춰내는 장치이자, 인간 내면을 비추는 렌즈 역할을 한다.

첫 번째 단편작 '발소리'에 등장하는 한 인물이 광기에 휘말리는 장면은 강렬하다.

"너 여태껏 여자를 몇 명이나 죽인 거야?"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이미 노성인지 읍소인지 알 수 없는, 착란 상태에 빠진 포효로 바뀌었다. (p.47)

살인을 저지른 인간이 스스로의 죄책감에 잠식되어 인간성을 상실해가는 이 장면은, 단순한 범죄 묘사를 넘어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특히 마지막 이야기 '제로'는 깊은 인상을 남긴다. 기억을 잃은 인물이 "나는 누구인가"를 끊임없이 묻는 이 서사는, 오늘날 2030 세대가 지나치게 자기 자신의 내면에 몰두하는 '자아과몰입'의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인간다운 인간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거나 주기도 해... 그런 괴로운 기억을 질질 끌면서 살아가는 게 인간 아닐까?" (p.306)

이 대사에서 알 수 있듯, 책의 여섯 번째 단편작 '제로'는 완전한 자아보다는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현재를 성실히 살아가는 것의 가치를 이야기한다. 지나치게 과거를 회고하거나 미래를 불안해하는 세대에게 '지금, 여기'의 삶을 환기하는 메시지로 읽힌다.

마지막 단편의 후반부에서는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질문이 본격화된다. '제로'라는 인물은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 채 방황하며, 다음과 같은 대사를 남긴다.

"나는 오로지 인간. 인간이라는 추상적인 존재가 되고 만 것 같은 허전함을 느낀다." (p.304)

이러한 대화는 인간이란 결국 불완전한 존재임을 인정하게 만들며, 완전한 자아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나, 현재를 받아들이는 자세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런 건 몰라. 당신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몰라... 그저 현재를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고." (p.316)
"이 세계도, 현재라는 시간도 결코 쾌적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다들 살아가고 있어. 당신도 지금의 자기 자신을 받아들여, 자신이 누구냐는 답이 없는 문제에 현혹되지 말아 줘." (p.320)

다카노 가즈아키는 단지 미스터리 작가에 그치지 않는다. 그의 작품 전반에는 일본 사회의 우경화, 과거사 왜곡, 공권력의 무능함 등에 대한 비판 의식이 깔려 있다. 네 번째 단편작 '아마기 산장'에서 전범이 처벌 없이 학계로 복귀하는 장면은 그 대표적인 예다.

"포로를 산 채로 해부했던 학자들이 미국한테서 거액의 보수를 받고서 당당히 학회로 복귀했다더라."
"그럼에도 태연하게 살아나갈 수 있는 게 바로 인간이야." (p.219)
"사람의 모습을 띤 괴물들이 시대와 이름을 바꾸어 언제 다시 이 나라에 발호할지, 그걸 감시하는 것이 펜을 쥔 자의 소인." (p.236)

이 대목은 작가의 소명 의식을 드러내며, 독자에게도 그 책임을 묻는다.

<죽은 자에게 입이 있다>는 단편이라는 형식을 빌려, 인간의 내면과 사회의 민낯을 깊고도 날카롭게 파고든다. 오싹한 미스터리로 시작했지만,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우리는 과연 진실을 감당할 수 있는가?", "인간다움은 어디서 비롯되는가?"라는 질문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다.

MBTI, 자아찾기, 정신건강 같은 키워드에 민감한 오늘날의 독자라면 이 책이 던지는 물음이 결코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무더위를 날려버릴 '오싹함'을 느끼면서도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책을 읽고 싶은 사람에게 <죽은 자에게 입이 있다>를 추천하고 싶다.

죽은 자에게 입이 있다

다카노 가즈아키 (지은이), 박춘상 (옮긴이), 황금가지(2025)


#죽은자에게입이있다#미스테리#추리#소설#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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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환 (thkimcan) 내방

여행과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에디터 지망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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