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조법 2·3조 개정안 신속 통과7월 28일 오전 10시 국회 본청 계단 앞, 40도에 육박하는 폭염 속에서도 노동자들의 절박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을 비롯한 노동계가 한창민 국회의원과 함께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노조법 2·3조 개정안을 후퇴 없이 신속 통과시킬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 한국노총
7월 28일 오전 10시 국회 본청 계단 앞, 40도에 육박하는 폭염 속에서도 노동자들의 절박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을 비롯한 노동계가 한창민 국회의원과 함께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노조법 2·3조 개정안을 후퇴 없이 신속 통과시킬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이날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소위에서 해당 개정안을 심의하는 중요한 날이었다. 두 차례 윤석열 전 대통령의 거부권으로 무산된 법안의 세 번째 도전에서, 노동계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며 총력전을 선언했다. 8월 4일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계의 위기감은 더욱 절박했다.
7월 21일 고용부 설명회가 촉발한 분노
노동계 분노의 직접적 계기는 7월 21일 고용노동부의 행보였다. 고용부가 환노위 의원들에게 일방적으로 만든 노조법 2·3조 개정안을 가져와 설명하고, 이후 진보당 정혜경 의원과 양대노총에도 같은 내용을 설명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문제는 고용부가 가져온 법안이 지난해 국회를 통과했던 민주당 당론 법안보다 후퇴한 내용이었다는 점이다. 노동계는 "특수고용·하청노동자들이 20년 동안 투쟁하여 만들어온 법안을 당사자와 논의 한번 없이 후퇴시켰다"며 "민주적 절차에서 심각한 하자가 있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은 격양된 목소리로 "이제는 좌고우면할 시간이 없다"며 "정권이 바뀐 효능감을 노동자가 피부로 느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누구나 노동조합 할 수 있는 세상, 하청 노동자들이 원청과 교섭할 수 있는 현장, 손배·가압류가 노동 3권을 훼손하지 않는 사회가 최소한의 기준"이라며 "오늘 반드시 종지부를 찍자"고 외쳤다.

▲발언하는 정연실 상임부위원장한국노총 정연실 상임부위원장은 더욱 구체적으로 정부안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정부안에선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 제한 조항은 대폭 후퇴됐고, 사용자 범위 및 노동자 범위 확대는 그 의미가 퇴색되었다"며 "급기야 단체교섭 대상·방법·절차까지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할 수 있도록 위임하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고 비판했다. ⓒ 한국노총
한국노총 정연실 상임부위원장은 더욱 구체적으로 정부안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정부안에선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 제한 조항이 대폭 후퇴됐고, 사용자 범위 및 노동자 범위 확대는 그 의미가 퇴색되었다"며 "급기야 단체교섭 대상·방법·절차까지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할 수 있도록 위임하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는 노조법 개정이 아니라 노조법의 본질을 무력화시키는 퇴행적 조치"라며 "야당일 때 자신들이 통과시킨 노란봉투법의 내용을 후퇴시키는 정부안에 여당이 동의한다면, 이에 대한 노동자의 비판과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더불어민주당에 직접 경고했다.
노동당 김성봉 부대표는 과거 사례를 들어 경고했다. "2010년 1월 1일 노조법이 개정되어 타임오프와 복수노조 창구단일화가 도입됐는데, 1년 반 유예기간을 거쳐 2011년 7월 1일 시행령을 만들었다"며 "타임오프로 노동조합 활동을 위축시켰고,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로 소수 노조에게서 교섭권과 책임권을 빼앗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있으나 마나 한 법을 만든 것"이라며 "15년 동안 한 자도 못 바꿨다. 처음에 어떻게 만드는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윤석열에게 정당성과 면죄부를 주는 노조법 개정이 아니라 적어도 최소한의 권리는 보장되는 노조법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국노총은 이번 개정안 처리를 이재명 정부와의 관계를 판가름하는 시금석으로 규정했다. 정연실 상임부위원장은 "한국노총은 노조법 2·3조 처리를 이재명 정부와의 노정관계 방향과 수준을 결정하는 가늠자로 삼겠다고 수차례 밝혀왔다"며 "오늘 정부안으로 노조법 개정안이 통과한다면 우리는 이를 절대 인정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한국노총은 모든 조직과 역량을 총동원해 온전한 법 개정이 이루어지도록 끝까지 싸울 것"이라며 "노동자의 권리가 온전히 보장되는 그날까지 우리는 멈추지 않겠다"고 강경한 의지를 다졌다.
진보당 김재연 상임대표는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이주 노동자 인권 실태를 비판하고 SPC 시화 공장을 방문하는 등 노동 현안을 직접 챙기고 있다"며 "노조법 2·3조 개정에 대해서는 국민과 약속한 사안인 만큼 일정을 미루지 말자고 여러 차례 참모들에게 이야기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그는 "문제는 노조법 2·3조 개정이 국민과 약속한 내용에서 후퇴할 우려"라며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유예기간, 화물차 안전운임제의 일몰제 등의 독소 조항이 어떠한 폐해를 낳았는지 잘 알고 있다"고 경고했다.
"하청 노동자들과 진짜 사장의 교섭이 유예되는 그 시간 동안 또 어딘가에서는 죽고 다치고 탄압받는 노동자들의 고통이 계속될 것"이라며 유예기간의 위험성을 강조했다.
사회민주당 한창민 의원은 "이번 임시국회에서 반드시 이 법안을 통과시켜야 노동자의 권리가 새 시대를 여는 포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20년 피눈물의 역사, 더 이상 유령처럼 떠돌 수 없다"
기자회견문에서 노동계는 1천만 특수고용·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박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저임금과 차별 속에서 하청노동자의 삶은 파괴되고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거나 다치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며 "하청노동자는 모든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원청 사용자에게 그 어떤 책임을 강제하지 못한 노조법 때문에 일터에서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고 절규했다.
노동계는 "헌법의 노동3권이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는 보장되지 않는 부조리한 상황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며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배제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법원도 인정한 원청 책임... "고용부는 무엇을 했나"
7월 25일 한화오션과 현대제철 부당노동행위 행정소송 1심 판결이 노동계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법원은 "원청이 하청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관해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에도 단지 근로계약에 직접적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단체교섭 상대방에서 원천적으로 배제된다면 하청근로자의 단체교섭권을 사실상 무력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노동계는 "현대제철이 하청노동자의 죽음의 공장이 되었을 때 노동부가 수차례 근로감독하고 산업안전 관련 법규 위반을 지적해도 현대제철은 무시했다"며 "사실상 노동부는 원청이 하청노동자에게 불법행위를 자행해도 속수무책이었다"고 비판했다.
전국민중행동 김재하 공동대표는 "그 추운 겨울 윤석열 퇴진 운동을 했을 때는 새 정권 들어서면 이런 고생은 안 할 줄 알았는데, 거의 40도 넘는 기온에서 또 농성을 하고 있다"며 씁쓸함을 토로했다.
노동계는 고용노동부의 후퇴안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기자회견문에서 "고용노동부에 경고한다. 국민의힘과 같이 경총의 용역회사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헌법에서 보장하는 노동자의 권리가 무엇인지 똑바로 인식하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또한 "국회는 노조법 개정 논의가 다시 시작되는 시점에 경제단체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는 들으면서 정작 노동자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며 "고용노동부의 후퇴안에 대해서도 단호한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단체교섭의 본령인 교섭의 대상, 방법, 절차를 시행령으로 위임하는 것은 법률유보의 원칙을 정한 헌법 기본원리와 노사자치의 보장이라는 노동조합법 취지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라고 헌법적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했다.
핵심 요구사항 "절대 후퇴 불가"
노동계는 ▲노동자 추정조항 도입(특수고용 노동자 보호) ▲사내하청의 원청 사용자성 인정 ▲노동자 개인 손배청구 금지 조항 삽입을 핵심 요구로 제시했다. 이들은 "무분별한 손해배상 청구로 노동자의 입을 틀어막는 구조를 바꾸고, 교섭을 회피하는 진짜 사용자에게 책임을 묻고, 누구나 차별 없이 노조할 권리를 법으로 보장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헌법의 노동 3권은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되어야 하며,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배제될 수 없다"며 헌법적 당위성을 강조했다.
정의당 권영국 대표는 "이재명 정부가 국제노동기준에 맞는 개정을 추진해야 할 책임이 있다"며 "오늘 민주당이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가 노동자들과의 관계를 가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기자회견 후 민주노총은 오후 2시부터 국회 앞에서 환경노동위원회가 끝날 때까지 투쟁을 이어간다고 밝혔다. 양경수 위원장은 "40도에 육박하는 폭염보다 더 치열하고 뜨거운 투쟁의 결의로 반드시 승리를 만들어내자"고 다짐했다.
20년 동안 이어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염원이 마침내 결실을 맺을 수 있을지, 이날 국회의 결정이 주목받고 있다.

▲노조법 2·3조 개정안 신속 통과7월 28일 오전 국회 본청 계단 앞, 40도에 육박하는 폭염 속에서도 노동자들의 절박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을 비롯한 노동계가 한창민 국회의원과 함께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노조법 2·3조 개정안을 후퇴 없이 신속 통과시킬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 한국노총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피아'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