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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을 매개로 환경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며 실천 가능한 활동을 약속하는 교사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공립 유치원 교사들이 중심이 된 작은 모임 '숨비소리'를 소개하고자 한다. 해녀가 물질을 하다 숨을 고르는 그 소리처럼, 이들은 그림책을 읽으며 잠시 숨을 고르고 세상을 다시 바라본다.

한 달에 한 번, 그림책 한 권을 정독하고 질문을 만들며 토론하고, 그것을 아이들에게 전할 방법을 연구한다. 그들의 손끝에서 작은 환경 실천이 시작되고, 그 실천은 아이들의 마음속에 '지구를 사랑하는 씨앗'으로 심어진다. 이 모임의 주관은 권문정 소장(아이 생각 연구소)이다.

이달의 그림책, 정유진 작가의 <아직 봄이 오지 않았을 거야>

토론중인 <숨비소리> 회원들 권문정 소장(오른쪽 두번째)과 숨비소리 회원들이 질문을 만들어 가며 토론을 진행 중이다.
토론중인 <숨비소리> 회원들권문정 소장(오른쪽 두번째)과 숨비소리 회원들이 질문을 만들어 가며 토론을 진행 중이다. ⓒ 신혜솔

지난 주말 오후, 권문정 소장과 장학사 한 명, 공립 유치원 교사 몇 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달 그림책으로 정유진 작가의 <아직 봄이 오지 않았을 거야>를 선정하고, 이끎이 역할을 맡은 회원은 이도경(35, 평택 오성초 병설유치원) 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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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세로로 엮여 위로 넘기며 읽는 독특한 구성으로 디자인되었다. 첫 장에는 빗방울이 내리는 하늘과 꽃봉오리가 핀 나무 그림이 등장한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나무와 꽃봉오리 속에는 잘 보이지 않는 생활 쓰레기들이 그려져 있다.

뿌리 아래로 땅속 동물들에게도, 봄을 기다리는 개구리의 등 위에도, 겨울잠을 자는 곰에게도 폐타이어, 비닐, 일회용 빨대들이 그려진 섬뜩한 풍경을 보여준다. 이러한 시각적 요소는 독자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며, 자연이 아파하는 소리를 들려주는 듯하다.

"말 못 하는 동물들의 고통을 작가는 쓰레기 이미지로 표현한 거죠. 책장을 넘길 때마다 자연이 아파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이 교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림을 자세히 보니 우리 주변에서 생각 없이 내던져 쌓이는 것들이 숨은 그림처럼 들어 있는 것 같았다. 이 책을 쓰고 그린 정유진 작가의 의도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마지막 장은 특히 큰 울림을 준다. 창밖에는 쓰레기더미가 가득 쌓여 있고, 창 안의 엄마와 아이 둘은 멍하니 그것을 바라본다. 그리고 다음 문장으로 마무리된다. "그래, 아직 봄이 오지 않았을 거야." 이 문장은 독자에게 질문한다. 봄은 저절로 오는 것일까? 우리가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따뜻한 계절이 찾아올까?

교사들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눈다. 책 속에서 중요한 의미를 발견하고, 'See(보다), Think(생각하다), Wonder(궁금해하다)'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질문을 만들고 토론을 이어간다. 그리고 그 깨달음을 아이들과 나눌 교육 활동으로 구체화한다.

'익숙함'과 '감사함' 사이에서

'숨비소리' 모임의 교사들은 책을 읽으며 '익숙함'과 '감사함'이라는 키워드를 찾아냈다. 익숙함은 무감각을 낳고, 무감각은 감사함을 지운다. 소중한 것들이 사소함 속에 묻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일상에서 너무 당연하게 사용하는 것들, 예를 들면 일회용품 같은 것들이 얼마나 큰 문제를 만드는지 아이들과 꼭 이야기하고 싶어요." 교사들은 이렇게 입을 모았다. 토론의 결론은 명확했다. '익숙한 것을 바꾸는 작은 행동이 변화를 시작합니다.'

토론을 통해 얻은 결론 익숙한것을 바꾸는 작은 행동이 변화를 시작한다.
토론을 통해 얻은 결론익숙한것을 바꾸는 작은 행동이 변화를 시작한다. ⓒ 신혜솔

이 작은 약속을 실천하기 위해 교사들은 구체적인 행동 계획을 세웠다.

· 일회용 빨대 줄이기
· 배달 음식 대신 직접 포장 용기 사용하기
· 텀블러 사용하기
· 장바구니 휴대하기

정말 익숙해서 사소하게 흘려버리는 것들이다. 하지만 교사들이 먼저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아이들이 금방 따라가게 될 것이다. 아이들 앞에서 텀블러를 쓰면 '왜 종이컵은 안 써요?'라고 물을 수 있지만, 그 질문 하나가 수업보다 더 큰 가르침이 될 수 있다. 이들은 책 속 이야기를 아이들의 언어로 다시 풀어내어 환경 동화를 만들기도 한다. 그림책에서 깨달은 메시지를 생활 속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이 모임의 가장 큰 특징이다.

이도경 교사를 통해 알게 된 그림책 모임 '숨비소리'는 봄을 부르는 사람들이다. '숨비소리'는 단순히 책을 읽는 독서 모임이 아니다. 이들은 그림책이라는 매개체로 세상을 배우고, 아이들에게 전달할 가치와 행동을 함께 만들어가는 '작은 혁명가'들이다.

"봄은 기다린다고 오는 게 아니라, 우리가 함께 만들어야 해요. 아이들에게 '봄을 부르는 사람'이 되어보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도경 교사의 말은 오래 귓가에 남았다. '숨비소리' 교사들의 실천은 작지만 강하다. 그들이 뿌리는 변화의 씨앗은 아이들의 마음밭에서 싹을 틔우고, 언젠가 세상을 더 따뜻하게 물들일 것이라 믿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 스토리에도 실립니다.


#환경#그림책#정유진작가#아직봄이오지않았을거야#숨비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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