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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7.27 14:28최종 업데이트 25.07.27 14:28

사람을 견디게 하는 것

조심스레 다가온 길고양이와 나눈 일상의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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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겨울 이후로 우리집 마당에 자리 잡아 이젠 한 식구처럼 잘 지내는 길고양이와의 이야기입니다.

지난 겨울 우리 집 담벼락을 조심스레 드나드는 고양이가 있었다. 축 처진 꼬리, 앙상한 갈비뼈, 먼지 낀 눈망울. 길 위에서 몇 계절을 버텨낸 듯한 그 몸은 생기보다 두려움에 익숙해 보였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듯 낮게 몸을 낮추고, 바람결에도 움찔거렸다.

나는 급히 부엌을 뒤져 남은 닭고기를 잘게 찢어 작은 통에 담았다. 그릇을 담장 아래 살며시 두고는 한 걸음, 두 걸음 물러섰다. 고양이는 가까이 오지는 않았지만 멀찍이서 빤히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경계심 너머 어딘가, 아주 조심스러운 기대를 품고 있었다.

창문 너머로 다시 바라보았다. 고양이는 잠시 모습을 감추더니, 마침내 살금살금 다가왔다. 주변을 경계하며 숨죽인 채 숨결만 살아 있는 듯한 걸음이다. 이윽고 그릇 곁에 다가서자, 허기진 배가 잠시 모든 경계를 무장 해제시켰다.

ⓒ 주일순

고양이는 두세 번 주위를 살피더니, 허겁지겁 고기를 입에 털어넣는다. 때 묻은 털 사이로 순간 깜빡이는 눈망울이 반짝였다. 고기 한 점은 사람에게 그저 사소한 조각일 뿐이나, 그 생명에게는 하루를 버틸 수 있는 이유가 되고, 세상이 조금 덜 무서워지는 기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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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나는 마트에 들러 고양이 사료와 캔을 샀다. 아침이면 마당 안쪽, 바람이 덜 드는 구석에 밥을 놓아두었다. 길 한복판에서 불안에 떨며 먹지 않고 마음 편히 식사 하길 바랐다. 며칠째 고양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해가 질 무렵이면 그릇은 어김없이 비워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마당을 나서던 길에 고양이와 딱 마주쳤다. 고양이는 움찔 놀라 뒷걸음질 쳤다. 도망가려던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입에서 다정한 말이 튀어나왔다.

"괜찮아, 야옹아! 이리 와서 밥 먹어!'

내 목소리는 아기를 달래듯 조용하고 부드러웠다. 고양이는 가까이 오진 않았지만, 이번에는 도망가지 않았다. 살며시 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 속에는 두려움과 망설임, 그리고 아주 조심스러운 신뢰의 씨앗이 담겨 있었다.

그날을 기점으로 고양이와 나는 조금씩 가까워 져갔다. 마주치면, 인사를 건넸고 고양이는 예의 조심스럽게 나를 응시했다. 어느 날은 고양이와 좀 더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에 츄르를 들고 "야옹아! 이리와, 츄르 줄게!" 살금살금 한 걸음씩 다가갔다. 놀랍게도 고양이는 도망치지 않았다. 내 손에서 츄르를 받아먹었다. 순간, 마음이 벅차올랐다. 얼어붙은 생명이 조심스레 문을 열어주는 느낌이었다.

이제 고양이와의 인사는 내 하루의 시작이 되었다. 함께 하는 시간이 쌓이면서 고양이도, 나도 한결 마음이 가까워지고 편안해졌다. 계절은 어느덧 바뀌어 마침내 한파가 몰아쳤다. 바람은 살을 에고, 하늘은 낮게 내려앉아 모든 것을 얼려 버릴 듯했다. 이런 날 저 아이는 어디서 잠을 자고 있을까! 혹시 찬 골목 어귀에 몸을 웅크리고 있진 않을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동네 골목골목을 헤매고 다녔다. 스티로폼 박스를 주워오고, 방한 벽지와 뽁뽁이, 넓은 테이프도 사 왔다. 거실 바닥에 박스를 펼쳐놓고 하루 종일 재단하고, 붙이고, 덧대고 감쌌다. 구석구석 바람이 세지 않도록 뽁뽁이를 두 겹, 세 겹 감쌌다. 탄탄하고 따뜻한 공간 하나를 만드느라 손가락이 얼얼했지만, 마음은 포근해졌다. 마치 오래도록 기다려온 손님을 맞이하는 마음이었다.

유난히 추운 밤이면, 잠들기 전 고양이 집을 들여다보았다. 담요를 깔고 따뜻한 보온팩을 넣어주었다. 찬바람이 새어 들어가지 않도록 비닐 창문을 단단히 여며주었다. 고양이는 이제 도망치지 않는다. 내가 다가가 담요를 다독이는 손길을 기다린다. 마치 그 손길이 지나간 자리에 따뜻함이 오래 남는다는 걸 아는 듯이.

외출 후, 골목을 들어서면 내 발자국 소리를 알아듣고, 어디선가 튀어나와 반겨주는 그 융숭한 대접을 세상 어디에서 받아볼 수 있단 말인가! 야옹이를 만나면 나 역시 반가움을 넘어선 분주했던 일상의 피로가 한순간에 날아가고, 순수한 눈빛이 주는 평화로움에 젖어든다.

저를 돌봐줄 때뿐 아니라,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저를 돌아보지 않을 때에도 묵묵히 기다린다. 오직 다시 만난 순간을 기뻐할 뿐이다. 머리를 쓰다듬는 내 손끝에서 엄마품에 노니는 아기처럼 발라당 누워 애교를 부린다.

우리는 이제 서로 익숙한 존재가 되었다. 하루라도 마주치지 않으면 괜히 허전하고, 안부가 궁금한 사이. 아침이면 창밖에서 "야옹! 야옹!" 울며 나를 부른다. 나는 그 울음 소리에 창문을 열고 미소 지으며 말한다.

"알았어! 야옹아 밥 먹자!"

삶의 위로는 거창한 말이나 눈부신 사건 속에 있지 않았다. 오히려 눈 내린 아침, 작고 여린 생명이 창밖에서 건네오는 울음 한 마디, 고요한 밤 담요를 다독이는 손길속에 스며 있었다. 말이 없어도 전해지는 눈빛, 도망치던 존재가 다가와 머무는 시간, 그 조그마한 교감이 하루의 온도를 바꾸고, 얼어붙은 마음 한 켠을 천천히 녹여냈다. 사람을 견디게 하는 것은 오늘도 여전히 누군가를 향해 마음을 내어주는 이 조용한 따뜻함이었다.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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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와 읽기를 좋아하는 백발의 할머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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