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민들이 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TV 모니터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의 의료 개혁 관련 대국민담화 발표 생중계를 지켜보고 있다. ⓒ 유성호
뜬금없이 발표한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사태가 준 고통은 예상보다 컸다. 응급 환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온 국민이 위급 상황을 우려하며 1년 반의 시간을 보냈다. 입학 정원 조정은 매우 정교한 예비조사와 당위성을 확보해야 했음에도, 윤석열 정부는 이를 너무 간단하게 발표하여 온 나라 의료체계를 혼란에 빠뜨렸다.
이후 전개된 계엄 내란과 연동해 보면, 변란 주동자들은 강제력으로 전공의들을 제압할 수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의료계의 반동은 작은 소요에 머물지 않았고, 환자의 생명에 심각한 위태로움을 불러왔다.
정부가 바뀌자 이제 그들이 돌아오겠다고 한다. 의대와 병원 상황이 긴급한데 오류의 귀책 여부를 명료하게 마무리할 수 있을까. '사과 한마디' 없이 유급 논란에만 집착하는 이기적 행태가 여전히 국민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하은진 서울대 의대 교수(중환자의학·신경외과)는 지난 3월 18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기계처럼 공부해 남들보다 위에 섰던 아이들이 의대에 들어온다. 의대에선 좋은 전공과에 가려고 한 문제라도 더 맞히려 치열하게 경쟁한다. 이런 환경이 공동체 의식 없는 의사를 만든다"며 "아무리 피해자라고 해도 그들은 동시에 가해자이기도 하다. 가해자라면 '죄송하다'라고 말할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하 교수는 성적이 곧 계급이 되는 교육 구조의 결함과 공적 책무성 결핍을 꼬집었다.
의학, 윤리의 실천

▲의학은 단순히 병을 치료하는 기술의 집합이 아니다. 인간의 생명을 다루며, 죽음과 삶 사이의 균형을 지켜내는 윤리적 실천이자 철학적 응시다. ⓒ TyliJura (pixabay)
신학, 의학, 법학은 인간 존재의 본질에 관한 3대 전문 분야다. 세 분야 모두 인간의 '생명'을 다룬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신학이 '왜 살아야 하는가'를 묻고, 법학이 '함께 잘 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를 제시한다면, 의학은 '어떻게 건강하게 살 것인가'를 탐구한다. 인간 육신의 한계는 가장 실존적 고통과 현실적 문제를 담고 있다.
의학은 인간의 생물학적 리듬이 지속되도록 패턴을 유지하게 돕는다. 인간의 몸은 마치 음악처럼 리듬과 호흡의 질서를 띤다. 심장은 타악기처럼 박동하고, 폐는 취주악기처럼 호흡한다. 생명은 '리듬이 살아있는 움직임의 지속'이다. 의사는 페이스메이커로서, 이 리듬이 깨지지 않도록 지휘자가 되어 조율한다. 박자가 흐트러지면 전체 연주가 흔들리듯, 신체의 리듬이 무너지면 생명이 위태로워진다.
의학은 단순히 병을 치료하는 기술의 집합이 아니다. 인간의 생명을 다루며, 죽음과 삶 사이의 균형을 지켜내는 윤리적 실천이자 철학적 응시다. 질병은 고통을 수반하고, 고통은 인간의 실존을 직면하게 만든다. 의사는 이 실존의 경계에서 '타자의 고통'을 자신 안으로 끌어안는 존재여야 하며, 그것이야말로 의료인 윤리성의 출발점이다.
의사는 누구보다도 고도의 규범 윤리를 갖춰야 한다. 지식을 많이 알고 손기술이 뛰어난 전문가로서가 아니라, 자신이 다루는 대상이 인간의 존엄 그 자체임을 알고 있는 '책임 있는 인간'이어야 한다. 의사는 '치유하는 손'이면서 동시에 인간을 위한 '마음의 구조자'다.
오늘날 의학 교육 시스템은 오히려 이 본질에서 멀어지고 있다. 고등교육의 철학이 성적과 효율성, 순위 중심의 수단적 가치로 왜곡되면서 인간을 위한 사유는 공백으로 남고, 공공성에 대한 훈련은 부족해졌다. 의학은 생명윤리와 휴머니즘이 전제되지 않으면, 위계적이고 비인격적인 기술 지식으로 전락할 수 있다.
공동체 윤리 회복

▲의료인의 복귀는 복직을 넘어, 공공성과 신뢰를 복원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 kalhh (pixabay)
한국 사회의 교육 구조는 '공동체의 봉사자'가 아닌 '성공의 상징'으로서 의사를 길러낸다. 이는 의학을 사회적 계급의 정점으로 환원하는 왜곡된 상징체계를 고착화한다. 문제는 학생 개인의 선택 이전에 국가 교육 시스템의 구조적 오류이며, 공동체 가치가 실종된 사회적 기반의 반영이기도 하다.
의학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이며, 자격이 아니라 실존에 대한 응답이다. 사회는 이것을 다시 교육해야 한다. 의료 행위는 병을 고치는 기술을 넘어, 인간을 삶의 자리로 되돌려 놓는 존재론적 행위다. 이제는 의료계와 사회가 서로에 대한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근본적인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의료인의 복귀는 복직을 넘어, 공공성과 신뢰를 복원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의료계는 책임 있는 존재로서의 언어와 태도를 보여야 하며, 정부는 국민을 위해 책임감 있게 경영해야 한다.
우리는 생명의 무게를 다시 기억해야 한다. 생명을 함께 책임지는 사회, 공공을 중심에 둔 의료 구조와 교육 개혁, 그것은 우리가 다시 세워야 할 '공존의 리듬'이며 의학이 본디 지향하던 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