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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별가 주인 하성주 씨. 그는 이 곳에서 살아가는 재미를 추구하겠다고 전했다. ⓒ 남해시대
요즘 남해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사람이 있다. 이동면 석평마을 입구(이동면 석평로 58번길 8)에 황톳집 '하별가'를 짓고 즐겁게 살아가고 있는 하성주씨가 주인공이다. 포털사이트와 페이스북으로 검색하면 '우리말 살림지기' '지역통화 성남누리 공동대표' '성남의료생활협동조합 초대이사장' '메트로약국 대표약사'라고 나오는 그는 지난 3일 저녁 8시 '첼리스트 이혜린과 함께 하는 한여름밤의 마당음악회'를 집 마당에서 열었다. 또 17일에도 '관옥 이현주 목사님이 들려주는 노자이야기' 마당을 열었다.
어떤 사람일까 궁금한 마음에 지난 10일 전화로 만남을 요청했다. '지금은 외부에 있다. 수요일에 남해에 온다'는 말에 서면으로 인터뷰를 했다.
-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합니다.
"저는 이동면 석평리에서 태어나 이동초, 이동중, 남해고를 다녔습니다. 여느 친구들처럼 소를 몰고 나무를 하고 농사일을 거들며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약국을 운영했고,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성남의료생활협동조합, 지역통화 성남누리, 참여연대 등에서 시민사회운동에 참여해 왔습니다. 또한 동서양의 고전과 경전을 읽는 인문학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요즘은 우리말 '한글'에 담긴 뜻풀이와 말놀이에 흥미를 느끼며 탐구하고 있습니다. 2025년 7월 초, 남해로 전입해 이제는 정식으로 남해군민이 되었습니다.
- 사진으로 석평마을 황톳집을 봤습니다. 어떻게 지었는지와 집 이름 '하별가'가 무슨 뜻을 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1960년에 아버지께서 지으신 고택을 올해 초 조금 손봐 살고 있습니다. 아래에 있던 빈집을 사서 헐고 정원과 텃밭을 만들었고, 틈틈이 집 뒤 청룡산을 가꾸었습니다. 대나무를 베어 내자 스카이라인이 열리고, 고목들과 바위가 드러나 집이 운치 있게 변모했습니다. 몇 해 전부터는 고향집을 지인들과 공유하며 도시생활에 지친 이들이 몸과 마음을 쉬어갈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과거 보부상들을 재워주고 먹여주던 어머니의 따뜻함을 제가 많이 닮았나 봅니다.
하별가는 '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집'이라는 뜻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별이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저희 할아버지가 하동에서 남해로 입도해 살면서 '하동집'이라 불리기도 했고, 석평마을에 사는 하씨 성의 별난 사람의 집이란 의미도 있습니다."

▲이동 석평마을 입구에 있는 하성주 씨의 집 '하별가'. 하별가는 '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집'이란 뜻과 '하씨 성의 별난 사람의 집'이란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한다. ⓒ 남해시대
- 지난 3일 첼리스트 이혜린씨를 초청해 한여름밤의 마당음악회를, 지인들끼리 각자 음식을 준비해 함께 나누며 즐기는 '포트락 파티'로 연 것으로 압니다. 당시 분위기를 전한다면.
"첼리스트 이혜린 선생은 청소년의 올바른 성장을 돕는 '씨드(SEED)'라는 교육 플랫폼의 대표이자, 차이콥스키를 배출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 출신의 정통 첼리스트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설악산 정상이나 비닐 천막 안 또는 거리에서도 첼로를 연주하며 대중화에 힘쓰고 계십니다.
행사에는 25명이 함께 모여 흥겨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와인, 막걸리, 맥주, 과일, 단호박, 빵 등 모두가 각자 먹을 것만 챙겨온 것이 아니라 더 많이 가져와 함께 나누었고, 음식은 많이 남았습니다. 연주는 '광화문 연가', '얼굴', '백만 송이 장미', '찐이야' 등 총 7곡이었고, 2부에서는 초양마을 이창언 님의 색소폰 반주에 맞춘 노래자랑이 이어졌습니다. 가을에도 마당음악회를 열 예정이니 많은 분들의 참석을 바랍니다."
- 17일 이현주 목사님을 모시고 노자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이현주 목사님과의 인연도 궁금합니다.
"이현주 목사님은 동화작가이자 번역가로서, 동서양의 고전과 경전, 그리고 영성에 관한 여러 저서를 집필하신 분입니다. 참살이와 영성에 관한 어떠한 질문에도 곧바로 답을 주시는 살아 있는 현자, 영성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저는 그분의 새 책 출간 독자 모임을 통해 만나 뵙게 되었고, 그분은 목사직 은퇴 이후에는 경기도 광주 '지금여기교회'에 평신도로 함께 출석하고 있습니다."

▲하별가에서는 17일 저녁 8시 '이현주 목사님의 들려주는 노자이야기' 마당이 열린다. ⓒ 남해시대
- 즐거움이 가득한 하별가 황토집 마당의 풀과 집 뒤 바위가 부럽습니다. 앞으로 어떤 즐거운 마당을 펼칠 것인지도 기대됩니다.
"계절마다 음악회를 열고 싶습니다. 연주자나 보컬을 초대하기도 하고, 함께 노래를 부르며 즐거운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 춤판도 벌이고 싶습니다. 춤 세라피스트를 초청해 굳어 있는 몸을 풀어 모두가 빛으로 타올랐다가 먼지로 하나 되는 체험을 나누고 싶습니다. 인문학 토크마당도 열고 싶습니다.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고, 명사를 초청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도 만들고 싶습니다. 바둑을 두는 사람들이 모여 바둑을 두며 수담을 나누는 공간도 꿈꿉니다."
- 인터뷰를 하다 보니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많이 느껴집니다.
"저의 어머니 박정업 권사는 1917년생으로, 22세에 용소리에서 산 넘어 시집오셨습니다. 시집살이가 워낙 고되어, 저를 임신하고 있던 중 논에서 농약으로 생을 마감하려 하셨다고 합니다. 그 순간 하늘에서 밝은 빛이 비추며 정신을 잃고 쓰러지셨고, 농약병은 논바닥에 떨어졌습니다.
그때 '너는 곡식에 제비요, 꽃에 나비다'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는 면소재지에 있는 이동교회로 곧장 달려가셨다고 합니다. 당시 김석진 목사님이 보시고는, 태어날 아이의 이름에 '거룩할 성'을 넣어 하성주라는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어머니는 집을 찾아온 나그네와 보부상들을 재워주고 먹여주곤 하셨습니다. 44세에 저를 낳으셨는데 제가 농으로 "나이 많은 할매가 어떻게 아를 낳았습니까?"라고 물으면 "하나님이 준께 낳았제"라며 웃으셨습니다.
어머니는 86세에 곡기를 끊고 하늘로 환원하셨습니다. 형과 제가 눈물로 음식을 권해도 "하나님 만나러 가는데 음식에 욕심 없다"며 거절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곡기를 끊은 지 40일 만에 평안히 떠나셨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땅을 파서 만들었던 우물을 복원했습니다. 그 터에 '너는 곡식에 제비요, 꽃에 나비다'는 어머니의 사연이 담긴 말씀을 나무판에 새겨 남기려고 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남해시대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