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16일자 기사(두 이름의 의병장 임도봉, '130년 무명' 빛 볼까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306055&ref=A)를 읽고, 독립운동사를 전공한 역사학자로서 깜짝 놀랐다. 기사의 내용은 을미의병 때에 순국한 임도봉 의병장의 후손이 할아버지의 건국훈장 전수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국가보훈부의 포상 심사 지연으로, 여태까지 후손에게 건국훈장 전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임도봉 의병장은 1896년 유인석 의병부대에 참여한 후군 장수로서, 제천 전투시 1896년 2월 24일 독곡(獨谷, 현 충주시 산척면 영덕리)에서 일본군과 싸우다가 전사 순국하였고, 대한민국 정부가 그 공로를 인정하여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추서 당시에는 후손을 찾지 못해 훈장을 전수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후손이 나타나 훈장 전수를 요구하는데도, 전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필자가 관련 자료를 살펴본 결과, 후손에게 조속히 건국훈장 전수가 이루어져야 함을 확인하였다.
첫째로, 독립기념관이 발간한 <한국독립운동인명사전>에서 집필자 박윤정이 "임도봉(林道鳳, 미상∼1896. 2. 24)의 자는 동일(東一)이고, 이명은 임도수(林道洙)이다.라고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도봉과 임도수가 동일 인물임을 알 수 있다. 계속해서 박윤정은 "임도봉이 동학농민운동 때 일본군에 의해 아버지가 목숨을 잃은 것을 계기로, 1896년 거의한 유인석(柳麟錫) 의병부대(호좌의진)에 들어가 제천 일대에서 활동하였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둘째로, 충북 제천의병 연구의 대가인 세명대 구완회 교수가 <충북독립운동사>1(2023, 98쪽)에서, 임도봉이 임도수와 같은 인물이라고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적(필자: 일본군 지칭)은 다시 독작골(獨谷)로 밀려 왔고, 이를 가로막고 나선 후군의 채동집(蔡東集)·홍귀봉(洪貴鳳)·임도봉(林道鳳) 등 세 장수가 이곳에서 전사했다. 그 중 임도봉은 1894년 가을에 안동에서 의병을 일으켰던 청풍 선비 서상철을 따르다가 일본군에게 희생된 임우진(林禹鎭)의 아들 임도수(林道洙)와 같은 인물로 보인다. 그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고 의병에 가담했다고 한다.(구완회, 「제2장 전기의병(제천의병), <충북독립운동사>1(2023, 98쪽)

▲<충북독립운동사>1(충청북도지 편찬위원회, 2023) ⓒ 충청북도지 편찬위원회
셋째로, <예천임씨족보>에 임우진(林禹鎭)의 아들 임도수(林道洙)가 병신의병(1896)에 장수로서 충주 독작골에서 접전하다가 전사하였다고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우진(林禹鎭): 자(字) 여옥(汝玉), 임인(1842)생. 갑오년 동학란에 덕산군량관으로 계시다 왜인(倭人)에게 잡혀 장호원까지 가셔서 장엄히 세상을 뜨셨다. 9월 16일 졸(卒). 묘는 수곡리 산82번지 묘좌(卯坐). 비석이 있다. 부인은 영월신씨. 아들 임도수(林道洙): 자(字) 동일(東一), 무진(1868)생. 병신의병란에 80명 중 장수로 충주 독작골 접전에 장엄히 전사하셨다. 병신(丙申, 1896) 2월 24일 졸(卒). 묘는 수산면 적곡리 가래골 산 번지 해좌(亥坐). 부인은 달성서씨.(<예천임씨족보>)

▲<예천임씨족보>(임우진과 그의 아들 임도수의 활동 내역이 기록되어 있다.) ⓒ 진희정 기자
이상을 살펴본 결과, 임도봉과 임도수는 동일 인물이고, 자는 동일(東一)이며, 임우진(林禹鎭)의 아들임을 확인하였다. 아울러 임도봉(이명은 임도수)이 유인석(柳麟錫) 의병부대(호좌의진)의 의병장으로서, 1896년 2월 24일 충주시 산척면 영덕리 독작골(獨谷)에서 일본군과 싸우다가 전사 순국하였음을 확인하였다.
임도봉의 후손이 할아버지의 건국훈장 전수를 애타게 바라고 있으니, 독립보훈을 담당하고 있는 국가보훈부는 조속히 후손에게 건국훈장을 전수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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