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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를 이겨내는 작은 실천, '텃밭활동'의 힘

현재 전 세계는 가뭄과 폭우, 이상고온, 생물종 멸종 등 기후 변화의 심각한 징후를 겪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놀랍게도, 그 해답은 가까운 곳, 바로 텃밭에 있었다.

지난 봄, 손자 로리와 나는 작은 텃밭을 가꾸기 시작했다. 시장에서 사 온 상추 모종 몇 포기와 땅을 적셔줄 물 한 바가지는 우리의 출발이었다. 로리는 작은 손으로 흙을 만지며 모종을 심었다. "어린이 집에서도 상추를 심었어요, 할머니! 잘 키워서 맛있게 먹어요~"라고 말하며 기뻐했다. 봄비가 내리는 날이면 "우아! 우리 상추가 무럭무럭 예쁘게 잘 자라겠다~"라고 흥얼거리며 행복한 텃밭에 대한 노래를 부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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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텃밭, 그 말은 내가 오래도록 듣고 싶었던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텃밭은 우리에게 소소한 행복을 주는 곳이다. 텃밭활동을 하면서 나는 생각보다 깊은 사유의 길로 이끌렸다. 상추가 자라고, 토마토가 자라고 허브향기가 나는 텃밭에서 로리는 직접 따온 잎을 식탁에 올리며 뿌듯하게 말했다. "내가 물 주고 키운 거야, 맛있어!"

로즈마리, 애플민트, 페퍼민트, 스피아민트 등 다양한 허브를 기르며 로리는 손으로 잎을 문질러 향을 맡으며 스스로 감정을 조절했다. "할머니~ 냄새가 좋아요~ 그래서 기분이 좋아졌어요." 울음을 참을 수 없이 떼를 부리던 날도 허브 향기는 로리에게 안정과 평화를 주었다.

우리는 그 잎을 따서 말리고, 끓는 물에 우려 직접 차를 만들어 마시기도 했다. "로리야, 이건 식물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야"라고 말하면 "선물은 텃밭에서 온 거잖아"라고 대꾸하곤 했다. 그 한마디에 담긴 마음은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생명의 과정에 손을 얹는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텃밭의 허브 스피아민트를 건드려 향기를 맡고 있는 로리.
텃밭의 허브스피아민트를 건드려 향기를 맡고 있는 로리. ⓒ 신혜솔

상추 잎 사이에서 달팽이를 발견한 날, 로리는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그 생명을 감쌌다. 벌레를 만지는 일조차 하나의 놀이가 되었고, 흙 속에 숨어 있는 지렁이나 개미, 작은 생명들을 '텃밭 친구'라 불렀다. "식물이 없으면 벌도, 달팽이도, 우리도 살 수 없단다"라는 짧은 대화는 생태계에 대한 직관적이고 본질적인 깨달음의 시작이 되었다.

텃밭은 우리에게 매일 새롭고 놀라운 수업을 열어주었다. 어느 날 나는 로리에게 물었다. "왜 우리가 이런 텃밭을 가꾸는 걸까?" 아이의 대답은 망설임 없었다. "지구가 좋아하니까요." 맞다. 텃밭은 단지 채소를 기르는 장소가 아니다. 기후위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지만 강한 실천의 밭이기도 하다.

텃밭에서 자란 채소는 멀리서 비행기를 타고 오지 않는다. 포장재도 필요 없고, 냉장 유통도 줄일 수 있다. 이것만으로도 온실가스를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식물은 자라며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내뿜는다. 잎 하나, 뿌리 하나가 지구의 숨을 조금 덜 답답하게 만들어준다. 물을 아껴 쓰고, 퇴비를 만들어 흙에 돌려주면 탄소는 공기 대신 흙에 저장된다. 작은 텃밭이지만, 그 안에서 순환이 일어나고 있다.

토마토를 따고싶은 로리 아직 익지 않은 토마토를 따고 싶어서 만져보는 로리
토마토를 따고싶은 로리아직 익지 않은 토마토를 따고 싶어서 만져보는 로리 ⓒ 신혜솔

아이와의 텃밭 활동은 놀이다. 동시에 기후위기 시대의 교육이다. 자연을 존중하는 마음, 생명을 돌보는 손길, 물 한 방울의 귀함을 체감하는 과정이다. 도시 한켠의 조그만 텃밭은 그 자체로 녹색의 숨구멍이 된다. 꿀벌과 나비, 무당벌레 같은 작은 생명들이 드나들며 생태계의 조화를 회복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속에서 배운다. 음식이 어디서 오는지, 어떤 손길이 생명을 살렸는지, 지구와 우리는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 있는지를.

"지렁이는 흙을 건강하게 만들어." "달팽이도 밥이 필요하대." 이런 말들이 아이의 언어에 들어올 때, 아이는 지구와 교감하는 존재로 자라난다. 텃밭을 가꾼다는 것은 결국 '행동하는 희망'을 심는 일이다. 작은 삽 하나, 허리를 숙인 어른의 땀방울, 호기심 가득한 아이의 눈빛, 이 모든 것이 기후위기 앞에서 우리가 건넬 수 있는 진심이다.

지구는 지금도 숨을 고르고 있다. 텃밭은 그 숨결을 이어주는 따뜻한 연결고리다. "우리가 함께 가꾸는 텃밭은 지구를 위한 작은 실천이야"라는 말을 로리는 어떤 의미로 받아들였을까. 아이와 함께하는 텃밭활동은 단순한 농사 이상의 가치가 있다. 그것은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실천이자,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의 장이기 때문이다.

아이와 함께하는 텃밭활동이 기후위기 극복의 중요한 실천으로 자리 잡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 스토리에도 실립니다.


#지구#텃밭#환경교육#기후위기#생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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