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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은 2025년 최저임금 결정을 앞두고, '최저임금이 왜 필요한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자 합니다. ‘임금 노동자’라는 이름조차 빼앗긴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 법의 보호 바깥에 놓인 5인 미만 사업장의 청년 알바 노동자, 그리고 최저임금 인상의 반대편에 세워진 듯한 영세상공인들. 민주노총은 서로 다른 이름의 을(乙)들이 목소리를 통해, "최저임금은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메시지를 여러분에게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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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splash Image ⓒ priscilladupreez on Unsplash

밤 11시 50분. 띠리링~ 문자 소리에 나는 또 눈을 번쩍 뜬다.

"엄마 나 오늘 공부 좀 더 하려고. 먼저 자!"

아들은 타지 자취방에서 임용고시를 준비했다. 이 시간이 이를 테면 둘 만의 점호 시간인 셈이다. 나는 그 문자 한 줄로 아들의 하루를 상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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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수선하지만 나름의 질서가 있다는 아들의 책상 위, 펼쳐진 책들과 요점 정리한 포스트잇, 형광펜은 군데군데 수명을 다했고, 시계는 이미 자정을 넘겼다.

아들은 다음날도 편의점 알바를 해야 한다. 아침 6시 30분까지 출근. 후드티에 운동화, 그리고 충전해둔 교통카드! 무장이라 하기엔 조금 얌전하고, 출근이라 하기엔 조금 짠한 복장이지만, 어쨌든 그는 매일 새벽 편의점으로 향한다.

시간이 참 야속하다. 공부하랴, 알바하랴, 잠은 언제 자는 걸까 싶지만, 이 녀석은 또 버틴다.

"엄마, 나 오늘도 택시 탔어. 버스 놓쳐서 늦을 뻔했거든."

아들은 시간에 쫓겨 강제로(?) 시급 9620원(2023년)을 받기 위해 가끔 1만2000원짜리 택시를 탔다.

"또 택시? 시급보다 비싼 교통비라니, 너 돈 벌러 가는 거야, 돈 쓰러 가는 거야? ㅋㅋ"

나도 모르게 뼈있는 농담을 던지면, 아들도 멋쩍게 웃는다.

"알바의 품격이지. 지각은 프로답지 않잖아."

프로...라기 보단, 나는 아들을 '책임감의 화신'이라 부르고 싶다. 택시비로 시급을 태운 겸연쩍음을 농으로 눙치면서 책임감으로 아침을 시작하고, 책임감으로 하루를 끝낸다. 이 녀석, 책임감으로 뼈를 깎고 있구나...

"그래도 사장님이 시간 칼같이 지킨다고 엄청 칭찬하셔."

이 말을 할 때 아들의 목소리는 꽤 당당하다. 나는 그게 기특하면서도 조금 안쓰럽다. 기껏해야 편의점 알바인데, 마치 독립투사라도 된 듯한 책임감이라니. 경제학적으로 따지면 적자 인생인데, 도덕적으로 보면 대체불가의 그야말로 근면성실 노동자다.

매일 새벽, 아들은 '수면부채'와 '현금부채'를 동시에 짊어지고, 달디단 꿈이 켜켜히 수놓인 이불을 힘겹게 끌어 내리고 일어난다. 그렇게 벌어들이는 돈은, 한 달 치 생활비의 반의 반쯤. 남은 건 "최선을 다했다"는 말 한마디와, 피로가 깃든 눈 밑 그늘.

어느 날, 아들이 말했다.

"엄마, 최저임금밖에 못 버는 것도, 잠 못 자는 것도 괜찮은데… 나는 그냥, 아무 걱정 없이 잠자리에 들었으면 좋겠어."

그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최저임금보다, 수면 부족보다 더 뼈아픈 건, 끝이 보이지 않는 일상이구나… 내일이 오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오늘이 무사히 끝나기만을 바라는 청춘이라니...

최저임금의 문 겨우 통과했더니, 또 다른 장벽이

 어쩐지 이 나라의 청년들은 '책임감'이라는 단어를 의무처럼 짊어진 채, 인생의 다음 단계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어쩐지 이 나라의 청년들은 '책임감'이라는 단어를 의무처럼 짊어진 채, 인생의 다음 단계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 __matthoffman__ on Unsplash

그러던 중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들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

"엄마! 나 이제 선생님이야! 나 임용 붙었어!!"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 아이가 드디어, 출근길에 헐레벌떡 택시를 잡아타는 대신 가벼운 발걸음으로 교통수단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버스 타고도 넉넉히 도착하는 오전 8시 출근, 아니 가끔 택시를 타더라도 겸연쩍거나 민망하지 않은 사회인. 이제는 더 이상 '시간'이 아들의 적이 아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초임 교사의 월급명세서를 보고 나는 또 한 번 적잖은 충격에 빠졌다. 물론, 시급 9860원은 아니었다. 하지만 서울 방세 내고, 학자금 일부 갚고, 교재 몇 권 사고, 밥 몇 번 사 먹다 보니… 월급도 금세'퇴근'해 버렸다.

"그래도 엄마, 이젠 강제로(?) 타는 택시는 아니잖아. 이게 바로 사회인의 여유지."

이렇게 말하며, 아들은 컵라면을 사 먹는다. 하하하… 응, 그래. 여유지.

최저임금의 문을 겨우 통과했더니, 초임의 장벽이 기다리고 있었다. 알바를 벗어나 사회인이 되어도, 청년들의 삶은 여전히 저쪽 구석, 숨 쉴 틈 없는 어딘가에 있다.

별 이득 없는 책임감 하나로 버틴 시기. 그걸 지나면 좀 나아질 줄 알았는데, 어쩐지 이 나라의 청년들은 '책임감'이라는 단어를 의무처럼 짊어진 채, 인생의 다음 단계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수없이 떠오르는 질문들. 최저임금은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가? 청년 초임은 왜 아직도 그렇게 야박한가? 왜 우리는 계산기 속 숫자만 떠올리고 있는가? 사람의 삶을 끌어올리고는 있는가?

이제 아들은 어엿한 선생님이 되었다. 책가방 든 아이들을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고, 출석을 부르며 하루를 연다.

나는 기도한다. 그가 지켜온 성실이, 그를 지켜주는 세상이 되기를... 또한 언젠가, 그 책임감 위에 조금 더 넉넉한 삶이 얹히기를... 그리고 우리 모두가, 숫자가 아니라 사람을 중심으로 계산되는 세상에서 살 수 있기를...

#최저임금#청년#민주노총#알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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